“사람 중심의 레지던시(residency)가 돼야 합니다. 입주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군산에서 미술 레지던시를 기획·진행하는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의 이상훈 대표(45)는 문화예술가와 지역, 작가간 가교 역할을 자처한다. 올해도 전북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에서 최고액인 9500만 원을 지원받아 사업을 지속한다.
이 대표는 “예술가에게 최소한의 창작 기반으로 작업실과 거주공간을 마련하고 그들의 역량을 올리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하는 게 레지던시다”며 “여인숙의 참여 작가는 10개월간 회의, 지역 연구, 전시 등을 버거워 하지만 큐레이터가 상주하며 적정한 선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국 60여곳에서 레지던시가 실시돼 예술가가 철새처럼 움직이며 상주하는 상황에서 각 지역성을 드러내는 식으로 차별화를 도모한다”고 덧붙였다.
창작문화공간 여인숙은 일제 잔재가 남아있는 옛 도심에서 일본식 절인 동국사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지난 2007년까지 실제 여인숙으로 영업하던 장소를 2010년부터 미술 작가의 창작활동을 뒷받침하는 공간으로 바꿨다. 매년 10대1의 입주 경쟁률을 보이며 3명의 작가를 선정한다.
이 대표가 수행한 레지던시 사업을 거쳐간 작가만 해도 100여명. 그가 예술가를 불러모으기 시작한 때는 2007년 개복동에서부터다. 상처가 많은 도시를 상징하는 그곳에서 문화예술로 희생자를 부각하고 예술가의 창작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개복동은 그가 태어난 행정구역기도 했다.
그는 “2002년 독일에 있을 때 개복동 화재가 뉴스로 나온 순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며 “현지 친구들이 미개한 사건이라고 평하는데 차마 고향이라고 말을 못했다”고 회상했다.
독일 드레스덴 미술대학에서 석사와 박사과정(뉴미디어)을 졸업하고 2006년 귀국한 그는 문화공동체 감을 만들어 개복동에 예술가가 정착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이 대표는 “200m 거리에 예술가 30여명이 원활히 입주하도록 그들에게 좀더 싼 임대비의 건물을 소개하는 복덕방 역할을 했다”며 “초창기 모인 예술가는 지역 활성화보다는 작업공간의 확보가 우선이었다”고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개복동의 실험이 자신에게는 실패라고 결론지었다.
이 대표는 “주민과 예술가의 관심이 고조되고 개발 예산의 투입이 결정된 뒤 지역 활성화를 원하는 주민과의 갈등이 커졌고, 결국 소통의 단절이 주요인이었다”며 “당시에는 많이 움직이고 밀어붙였는데 문화는 긴 호흡이 아니면 소화 불량에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거울삼아 주민과의 교류사업에 힘쓴다. 2010년부터 레지던시 입주 작가, 지역작가, 주민과 함께 동국사 가는 길의 정비사업으로 간판을 바꾸는 등 공간 환경을 개선해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입주 작가에게 군산의 특징을 살린 창작활동을 촉진할 계획이다.
그는 “일본 작가와의 교류를 통해 식민지 수탈의 최전선이었던 군산의 역사적 경험과 문제를 미술이라는 매개로 공유·해소하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전북도는 지난 9일 올 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의 9건을 심의한 결과 4건을 선정했다. 군산 창작 레지던시 여인숙을 비롯해 익산문화재단 7000만 원, 부안 휘목미술관 5500만 원, 무주 무이미술관 4000만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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