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최근 전북지방우정청 근무로 서울에서 익산까지 KTX로 주말통근을 하고 있다. 과거 서울-익산은 서대전을 거쳐서 2시간이 소요되었다. 새벽길 서대전까지 1시간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이후 익산까지는 좀 여유있는 속도로 주위 풍경이 주는 자극과 영감에 감각과 생각의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제 오송을 통해 오는 KTX는 서울에서 겨우 1시간 남짓으로 광속에 버금간다. 속도의 편리함이야 말할 나위가 없다. 허나 그 빠른 속도속에서 잃는 것은 없는지 늘 의문해 본다. 수백킬로를 달리지만 출발역과 도착역의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고 하면 과언일까? 이 점에서 최근 서울대 공대가 한국산업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펴낸 책, <축적의 시간> 은 시사적이다. 산업의 가치를 지배하는 리더십은 ‘개념설계’ 역량에서 나오고, 이를 위해 빠른 벤치마킹을 넘어 오랜시간 숙성된 경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생각의 속도가 아닌 생각의 폭과 깊이를 심화하는 문화에 대한 강조는 지나침이 없다. 축적의>
우체국의 상징인 우편 또는 편지매체는 디지털 SNS에 비하면 대단히 느린 매체라 하겠다. 그런 까닭에 우체국은 전 세계적으로 그 정체성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고민이 깊다. 통신매체로서의 우편, 우체국은 이제 수명을 다한 것이라는 주장부터, 인간이 변화하지 않는 한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영역이 있다라는 주장까지 말이다. 하지만 다양성이 생존·공존에 최고의 덕목이라는 것을 진화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통신에 있어서도 디지털 SNS만이 아니라 우편, 편지 등 다양한 감각의 매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이 높은 수준의 과학과 문화창조를 이끈다는 생각이다. 이에 속도위주 디지털 시대에 오히려 느림을 갖고 승부를 거는 분야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급함 없이 느림, 되새김, 축적의 시간을 갖고 오히려 달팽이 걸음을 하는 것 말이다. 요즘 대세라는 융합도 그런 걸음에서 진짜가 나오지 않나 싶다.
우체국은 다시 살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북우정청은 질감, 친밀, 믿음, 여유, 진정성 등 아날로그적 가치를 기반으로 우체국이 사회의 소통과 경제, 복지의 플랫폼이 되자는 ‘살아있는 우체국 LIVE POST’운동을 추진하고자 한다. 우체국 밖의 세상을 우체국 안으로 끌어들여 우체국을 혁신하고, 우체국의 가치로 세상을 혁신해 나가자는 뜻이 되겠다. 전북우체국과 지역사회가 파트너로서 어떤 새롭고 뜻 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민이다. 불연 듯 우체국만의 고민이 아니라, 생명개념 위주의 ‘천년의 새빛’을 꿈꾸는 전북지역사회의 고민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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