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지방분권’논의의 시계추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쟁점은 분권의 궁극적 목표인 ‘지역균형발전’ 보다 분권방식 자체에 방점이 찍힌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지역경제 균형발전 담론이 빠진 분권추진은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입을 모은다. 각 지역의 특성과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지방분권은 오히려 광역시 집중화와 지역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산업화시절 소외돼 재정자립도와 대기업이 부족한 전북은 타 지자체와 공정한 경쟁을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 분권 논의에서 전북지역 경제 발전을 꼭 포함시켜야 될 내용을 짚어본다.
△지역균형 안전장치 없는 분권논의 안돼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초안을 바탕으로 이달 21일 헌법 개정안 발의를 예고했지만, 여야 의석구조 상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일고 있다.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국회 재적의원(293명) 3분의 2이상(196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자유한국당(116명)이 반대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문위 개헌안이 지방자치와 분권을 대폭 강화한다는 선언적 규정만 있을 뿐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등 지방분권 핵심 쟁점사항은 법률에 위임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실질적인 분권논의가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방분권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도권과 일부지역에 쏠림현상을 완화시켜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것이지만, 분권 그 자체에만 논의가 집중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은 지방, 돈은 중앙이 쥐는 문제 해결해야
우리나라 거버넌스 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하청 구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일은 지방이 하고 돈과 결정권한은 철저하게 중앙기관이 통제하고 있어 지역발전을 더디게 하고 있다. 지역 경제기관은 중앙기관의 명령을 수행할 뿐 자체적인 결정권한이나 예산집행은 꿈도 꿀 수 없다. 특히 전북혁신도시 기관마저 상위부처가 예산과 평가권한 등을 독점하고 있어 지역상생을 가로막고 있다. 지역에 제공하는 정보마저도 상위부처를 통과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혁신도시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농촌진흥청과 같은 외청급 이상 기관은 그래도 많은 독립성이 부여돼 지역상생을 위한 활동을 수립하는 것이 자유로운 편이지만, 나머지 ‘원’급 기관은 상위기관의 결제없이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안전장치 마련 없는 분권, 지역 불균형 심화
정부와 광역시를 가지고 있는 지자체의 로드맵대로 간다면 오히려 지역균형이 아닌 지역 재정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광역지자체가 전무한 전북은 재정분권과 함께 국가적인 지원과 연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더욱 낙후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안전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분권개헌은 도시 간 빈익빈 부익부가 더욱 심화돼 오히려 갈등만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지자체간 재정불균형 완화를 위한 지방교부세 법정률 인상이 필요하다. 지난 2015년 기준 지방소비세는 70%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어 지방소비세 광역별 안배기준인 소비지출 가중치 100%(서울·경기·인천), 200%(광역시), 300%(기타 도)를 각각 100%, 300%, 500%로 조정하는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분권 선진국인 독일의 경우 헌법에 지자체 간 연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소위 부자주(州)가 가난한 주를 도와주는 책임을 헌법에 명시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독일처럼 지방분권 체제에서 재정수입이 많은 지자체가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를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균형발전 혁신도시 시즌2 혁신도시 공공기관 독립성과 공공기관 추가 이전을
정부가 지역이 강한 나라를 천명하며, 국가균형발전 계획의 핵심으로 선포한 혁신도시 시즌2의 완성과 제대로 된 지방분권 토대의 완성을 위해서는 수도권에 남아있는 공공기관의 추가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가 최근“수도권 소재 공공기관의 추가 이전 관련해서 현재까지 검토한 바가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지역의 실망감은 더하고 있다.
균형 잡힌 대한민국은 커녕 가장 현실성이 높은 대안마저 저버린 것이다. 전북지역을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공공기관 추가이전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말로만 지방분권 강화가 아닌 실질적인 추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수도권에 남아있는 공공기관을 다시 각 지역 혁신도시 등에 분산배치시키는 것은 혁신도시 시즌2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현행 ‘국가균형발전특별법’ 18조에는 “정부는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중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관을 단계적으로 지방으로 이전하기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시책을 추진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별도의 법 개정 없이 지역에 가장 빠르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안에 공공기관 추가이전이 거론되는 이유다.
△지역 간 갈등 줄이는 지역특화경제 산업
각 지역 강점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역주도 전략산업 육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된 정책 법안 구상과 통과도 지역분권 시대에 꼭 필요한 것으로 지목된다. 그러나 산업별로 지역에 규제를 완화시키는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지방에겐 하나의 해법으로 인식됐으나. 국정농단과 맞물리면서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다.
이에 새 정부에 맞춰 신성장산업 기반 마련과 지역 경제분권을 위한 법안과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 전문가들 조언
"중앙·지방의 협력·상생전략 필요"
32년 간 전북대에 몸담으며 더 나은 지방자치분권을 모색해온 신기현 교수는 “지금의 지역균형발전 담론이 사라진 단순한 지방분권 논의는 공허한 것”이라며 “어떻게 중앙권력을 고르게 분산시키고, 낙후된 지역의 미래를 보장할 지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지방분권의 가장 큰 목적은 인구의 수도권 쏠림을 완화시켜 다시 각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분권이 섣불리 추진될 경우 분권을 이유로 중앙정부가 지역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경제학박사인 김경수 전북대 석좌교수(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는 공직시절 지역경제정책관과 균형발전정책담당관을 역임한 경험을 토대로 지방분권시대에 전북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진단했다.
김 교수는“자칫 경제균형과 안전장치가 부족한 자치분권이 이뤄질 경우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라고 우려했다. 중앙과 지방 간 권한과 책임의 명확화, 중앙과 지방의 역할 조정과 지원, 협력과 상생의 자치 실현, 지방정부 구조 및 기능 정상화 등을 통해 자치발전 방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산업 육성에 대한 지역 간 경쟁이 심해지는 상황이다”고 설명하며“전북에 가장 특화 된 농생명은 물론 향후 경제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빠르게 파악해 폭 넓은 경제 플랫폼을 갖추고 민간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