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여름. 40대 초반의 한승헌 변호사(83)는 서울 서대문구치소(현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다. 3년 전 썼던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이 뒤늦게 문제가 돼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그때 한 변호사는 옆방에 들어온 한 청년에게 마음이 쓰였다. 반독재 시위를 하다 구속된 대학생이었다.
그해 봄 한 변호사는 ‘민청학련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학생 한 명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도 구속됐고, 변호를 맡았던 학생을 포함한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그 학생을 지키지 못해서였을까. 한 변호사는 교도관을 통해 옆방에 수감된 학생에게 러닝셔츠와 팬티를 보냈다.
그 학생은 훗날 쓴 책에 “(한승헌 변호사가 준) 속옷이 큰 도움이 됐다. 나중에 대우조선 사건으로 공동변호인이 됐을 때 말씀드리니 기억하셨다”고 적었다. 그 책 이름은 ‘운명’, 그 학생은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대우조선(거제 옥포조선소) 사건은 1987년 이곳 근로자 이석규 씨가 경찰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다. ‘한 변’과 ‘문 변’은 공동으로 이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43년이 지난 2018년 9월 13일. 그 학생은 대통령이 돼 ‘메리야스’의 고마움을 한 변호사에게 전했다.
한 변호사는 지난 13일 대법원 본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행사’에서 1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문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받았다.
시국사건 제1호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는 진안 출신으로 우리나라 법조계의 큰 어른이다. 그런 그가 지난 18일 전북대 70주년 건지광장과 건지대로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북대학교를 찾았다.
전화통화에서 “인터뷰는 무슨 인터뷰냐”며 손사래치던 한 변호사는 “그럼 잠깐 이야기나 하자”며 준공식에 앞서 대기하던 대접견실로 기자를 불렀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다른 매체에서는 인터뷰도 안했는데…. 부끄럽습니다. 의외였고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과거 여러 가지 변화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사건에서 변호를 통해 민주화에 기여를 했다면서 훈장을 주신 것 같아요. 변호사라면 핍박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하는 것이 직분(職分)입니다. 그런데도 훈장을 받아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은 영광스러우면서도 과분합니다. 특히 제가 변호한 효과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고 변호했던 사람이 사형수로 사형을 집행당한 적도 있는데, 훈장이라는 것이 민망할 노릇입니다. 변호를 해놓고도 사형 집행까지 당했는데, 제가 훈장을 받은 것은 그에게 죄를 짓는 마음까지 듭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시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으시고 문재인 대통령에 와서는 훈장을 받게 되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그분들과 연도 깊지 않습니까.
“어려웠던 한 시대에 고통을 함께 나눴다는 점에서, 또 연배의 차이를 불문하고 동지적인 정을 서로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친불친의 차원의 아니죠. 세 사람 모두 한시대에서 우리 법조인에게 부여한 역할을 성실히 수행 하다보니까 당연히 그런 인간관계가 형성된 것 같습니다.”(그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변호하기도 했다.)
-호가 산민(山民)이십니다. 여러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산민 그러면 전주의 서예 대가 산민 선생이 계시죠. 나는 가짜라고 자처하는데, 원래는 서예가로 유명하신 검여 유희강 선생(1911~1976)의 서실을 좀 다닐 때 유 선생이 ‘당신은 어려운 사람들, 서민, 민중과 함께 있을 지어다’라는 글을 휘호로 ‘근재산민(近在山民)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아호를 평생 쓰게 됐는데…. 지금도 쓰고 있지요. 평생 부담이 되고 벗어날 수 없는 큰 책임을 씌워주신 것 같아 부담입니다. 그 아호를 주신 분의 뜻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 호는 큰 채찍이자 스승이 됩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건강은 어떠냐고 묻는 분들이 왕왕 있습니다. 아주 건강한 것도 아니고 환자도 아니고 그래요. 그래서 모범답안을 하나 생각해놨습니다. 제 답은 ‘나이만큼 건강합니다’라고 말씀드릴수 있겠네요. 건강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환자는 아니니까. 묘한 표현이지요. 요즘은 집에서 옛날 자료 정리하면서 자료를 밑천으로 해서 글쓰는 것이 일과입니다. 제가 그동안 쓴 책이 40여 권 되는데, 아마 올해 안에 한 권 더 낼 생각입니다.”
-자료를 정리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변호한 사건을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사건을 꼽으실 수 있나요.
“가장 대표적인게 민청학련사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면서 활동했던 이들이 반공법으로 처벌받던 사례, 군부장기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일신의 위험을 생각하지 않고 나섰던 민주 투사들, 그런 분들 변론에 열의를 다했죠. 제가 법률문제, 재판문제를 중심으로 여러 책을 썼는데, 많은 사건을 변호했고 법치주의, 정치범의 문제 등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죠. 무릇 변호인은 법정 안에서 변호만 해서는 안되고 정말 법원이 정의를 밝혀내는 지 여부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세상에 알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는 변호할 의무도 있지만, 그 결과가 정의에 반할 때는 세상에 알리고 그 도구로 책을 써야 됩니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대법원 사법농단 사태가 화두입니다. 원로 법조인으로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언성을 높이며)사법부가 스스로 독립을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반대로 사법적 문제를 갖고 권력자와 거래를 한 것이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습니다.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것은 외풍에 대한 대응이죠. 외풍을 맞닥뜨렸을때 거기에 맞서 무시하거나 싸워서 이기느냐 이건데, 이건 외풍이 아닌 내풍의 문제입니다. 외풍은 소신을 살려 묵살하면 되죠. 그러나 양 아무개 전 대법원장의 소행은 사법적인 문제를 가지고 행정부와 상의를 해서 사법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현재 대법원장도 미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밝혀내고자 하는 검찰의 노력에 대해 협조가 덜한 모양새이죠. 그 점에 대해서는 현 사법부 수뇌도 뼈아픈 반성을 해야 될 겁니다.
사법부 독립을 잘 지킨 사례로 가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을 거론하는데, 그 분이 계셨으면 땅을 치고 꾸짖을 일입니다. 가인은 절대 권력자인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정면으로 당당하게 맞섰고 사법 초창기에 기념비적인 훈적을 남겼는데, 그 뒤 대법원장들은 용기나 패기가 없고, 법관으로서의 신념이 약한 모습입니다. 사법부가 강건한 모습으로 권력의 간섭에 대응함은 별 문제가 없는데, 사법부가 약체화 돼서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면 사법권 독립이라 한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부조리와 아픔을 파헤쳐 면역체를 만들어 놔야 이 다음에 이런 일이 없을 것이고요, 안일한 생각으로 나간다면 사법부는 일찍이 없는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후배 법조인들이나 법조인을 꿈꾸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법조인이 된다는 것을 개인의 입신양명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생각 자체는 책망할 생각이 없지만, 입신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이 세상과 사회를 위해 헌신할 책무가 있습니다. 이를 저버린 채 입신양명만을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겁니다. 가령, 법조인으로써 신념과 난관을 이겨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영달을 구하는 방법으로 법조인이 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로스쿨 입학식 때 한 말이 있습니다. ‘입신을 하게 되거든 헌신을 하십시오. 헌신은 자기 고통과 희생, 고뇌가 따릅니다. 그것을 피한다면 법조인의 소임을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승헌 변호사는
진안 출신으로 전주고와 전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1957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8회)했다. 군법무관을 거쳐 법무부 검찰국 검사와 서울중앙지검·부산지검 검사로 잠시 재직하다 196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한국기자협회 법률고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 국제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전무이사, 한겨레신문 창간위원장,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이사장, 감사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와 서울시 시정고문단 대표를 맡고 있다.
중앙언론문화상(1994), 청조근정훈장(1999), 인제인성대상(1999), 임창순 학술상(2007), 단재상(2007), 국민훈장 무궁화장(2018)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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