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9년, 내 나이 21세(만 20세)에 나는 캐나다의 토론토라는 도시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어학원에서 나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프랑스, 스페인, 멕시코, 일본 등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Hugo, 휴고'라는 한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독자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다'라는 말을 믿는가? 나는 휴고 덕분인지, 때문인지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2019년 3월에 도착해 이미 적응을 마쳐 학교생활을 즐기는 상황이었고, 휴고는 4월인 나보다 한 달 늦게 토론토 생활을 시작하였다. 새로운 한 주 그리고 달을 시작할 때마다 우리 어학원은 정들었던 어학생들과 이별의 시간을 갖기도 하기도 하고 또한 새로운 학생들을 환영할 시간을 갖기도 한다. 반에서 휴고를 처음 마주했을 때 나는 별생각 없이 '옷을 참 형형색색으로 입는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휴고의 생각은 달랐나 보다. 우리 반은 ㄱ자 모양으로 학생들이 앉았었는데, 휴고와 나는 항상 다른 줄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구조였다. 당시에 휴고와 나는 아이 콘택트를 자주 했었는데 나는 당연히 자리 때문에 자꾸 눈이 마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지만 휴고가 반에 들어온 지 1-2주 정도 지났었던 때 같다. 여느 때와 같이 나를 포함한 우리 반 학생들은 활발하게 소통도 하고 선생님에 집중하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갑자기 반대편에 있던 휴고가 나에게 손짓하더니 아니 글쎄, 냅다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설렐 틈도 없이 나는 '쟤가 미쳤나?'라는 생각과 함께 손을 당장 내리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내가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첫 번째, 선생님이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여 모두가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두 번째, 얘는 나에게 냅다 하트를 날릴 만큼 나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할뿐더러 나조차도 휴고에 대해 이름과 국적을 제외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아주 미묘하게 나는 휴고의 시선이 나에게, 그리고 그가 나의 행동반경에 머무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쩌다 교양수업에서 휴고와 둘이 팀이 짜져 팀 프로젝트를 해야 하는 날이었다. 나는 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고자 선생님에게 질문도 하고 열심히 자료도 찾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휴고도 최선을 다한 듯 보였다. 물론 팀 프로젝트가 아니라 '나를 알아보기' 프로젝트를 말이다. 프로젝트에 하나도 집중하지 않고 나랑 놀기 위해 어떻게든 장난을 치려는 모습에 당시에 나는 화가 났다. 그 이후로도 휴고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보다 되려 그가 부담스럽던 스물하나의 나는 휴고와 친해져서 그 애를 알아보기보다 스리슬쩍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반에서도 휴고 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했고 수업이 없을 때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만 하고 지나갔다. 그 부분이 서운했을까, 어느 날 계단으로 내려오던 나의 어깨를 부여잡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로 뭐라고 한두 마디 말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아직까지도 이 말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고 알고 싶다. 그 이후로 휴고와 나는 점점 멀어져 갔다.
기회가 있다면 휴고에게 허심탄회하게 '내가 너무 어려서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몰랐다'라며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또한 지금의 내가 스물하나의 나에게 가서 휴고와 대화를 많이 해보라고, 너의 마음을 정확하게 전달하되 그런 방식으로 상처 주지는 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가끔은 생각난다. 잘 살고 있을까, 나한테 말했던 그 한마디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미안해.
/유세현 간호사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