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나는 매년 나만의 의례처럼 한 해의 키워드를 뽑아본다. 매해 그해가 가장 다사다난하고 심란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라도 한해를 정리하면서 내년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잡아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올 한해 내가 가장 많이 접한 키워드는 무엇일까. 폭염과 산불, 장마와 한파로 이제 피부로 와 닿은 기후위기, 챗GPT와 인공지능의 눈부신 활약상도 익히 겪었다. 하지만 내가 일상과 일터에서 가장 절실하게 느꼈던 키워드를 꼽아보라고 하자면 아무래도 인구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인 것 같다. 사업 현장을 가면 갈수록,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에는 뉴욕타임스에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칼럼이 실렸다는 소리도 들렸다. 해당 칼럼에서는 14세기 흑사병이 창궐했던 유럽보다 한국의 인구가 더 빨리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쯤 되면 정말 궁금하다. 정말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최악의 상황일까? 하지만 한편으로 설혹 그것이 최악의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미래라는 생각이 든다. 필연적으로 인구는 감소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얘기다. 물론, 이게 이상적이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정부는 매해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다. 지역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어떤 지자체장들은 해당 시군의 인구가 한 주마다, 한 달마다, 일 년마다 얼마나 줄고 늘었는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뾰족한 수가 없는 상태로 담당 공무원들만 머리가 아프고 애가 타들어간다. 그렇게 ‘인구’는 시시각각 떨어지는 숫자이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앙의 시작처럼 여겨진다. 게다가 고령화까지 진행되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도 없을 것 같다. 실무자로서도 어쩔 수 없이 ‘관계인구’, ‘생활인구’라는 측정이 모호한 개념들을 만들어내면서라도 인구감소의 낙인만큼은 피해가고 싶다. 그렇다면 정말 지역에는, 한국에는 희망이 없는 걸까?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의 활력이 떨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인구감소’에 대해 알고 있는 사회적 통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관점을 좀 달리해서 이런 질문도 해보고 싶다. 우리는 대체 얼마만큼 우리 경제가 성장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GDP가 매년 몇 퍼센트씩 상승해야만 하나? 사회가 가진 활력은 대체 어떤 기준으로 바라봐야 할까? 사업화시대의 부흥기? 아니면 IMF 이후의 재도약기? 성장에만 맞춰진 프레임으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어쩌면 그동안 성장을 위해, 대의라는 명분으로 등한시 해왔던 노동환경 개선, 노동에 대한 차별과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수도 있다. 학령인구는 감소할 수 있지만 오히려 공교육 서비스의 질을 높일수도 있고, 너무 많은 인구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오염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가진 그 동안의 성장패러다임에서 벗어나 탈성장 시대, 고령화시대, 인구감소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맞게 사회적 구조와 정책을 재편해야 한다. 확실하게 인구는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꼭 재앙은 아닐 수 있다. 준비만 한다면 말이다.
/오민정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 공생문화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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