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시립대학교 정석 교수가 지난해 여러 지역에서 보낸 한 달살이 경험을 얘기로 쓴 <로컬@행복>을 출간한 바 있다. 책은 ‘지역에서 더 행복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기록한 여행기’라며 ‘오늘날 대한민국 수도권에서 살아가며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처방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서울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뼈아픈 한마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저기서 지방소멸이 얘기되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부상하는 것은 지역이다. 내가 아는 서진영 작가도 <로컬씨, 어디에 사세요>를 출간해 주목을 받은 바 있고, <골목길 자본론>의 모종린 교수도 지역 브랜딩에 성공한 지역을 살피는 <로컬 브랜드 리뷰>를 2022년부터 발간해 오고 있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다. 중기청은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문체부는 ‘로컬 100’이란 이름으로 지역의 명소, 명인,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편에서 보면 지역소멸에 대한 대응이라 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지역에 대한 새로운 희망,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로컬이 부상한데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문화의 변화가 있다. 급속한 고령화는 더 이상 거대 도시에서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젊은 시절이야 패기로 맞섰지만 이젠 아니다. 이미 많은 베이비 부머는 지역으로 떠났다.
행복을 중시한 세계관 또한 지역으로 발길을 이끈다. 우리보다 일찍 지역소멸을 마주했던 일본은 청년 이주를 통해 지역소멸을 해결하고자 했는데 이를 관찰한 일본의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는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 말한다. 청년들이 지역으로 이주한 이유는 대도시에서 느낀 고립감과 획일화된 노동, 기회의 불평등 등 전반적 불신 때문인데 유사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도시의 민낯을 경험한 청년들이 지역으로 ‘망명’한 만큼, 새로운 형태의 노동과 기회를 제공해야만 ‘로컬로의 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대도시의 삶에 지쳐 많은 사람이 지역을 찾는다.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도 있고, 한 달살이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지역을 경험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지난해 춘천과 제주에서 한 달살이를 하며 새로운 삶을 경험했고, 지금도 그 지역과 관계하며 살아간다. 관계인구라고 하나?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김난도 교수가 말한 것처럼 앞으로 지역은 정주인구보다 관계인구로 지역소멸에 대응하는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 유동하는 도시)이 될지 모른다.
로컬의 시대를 살려면 지역은 도시와는 다른 문화를 형성해야 한다. 도시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경쟁이다. 생존을 두고 경쟁하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도시의 문화다. 지역의 문화는 이와 달라야 한다. 경쟁이 아닌, 서로 챙겨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새로운 경험과 즐거움을 누리며, 누구나 들어와 생활할 수 있는 개방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여러 혁신가가 들어와 도전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지지하고 안아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는 일종의 환경과 같은 것이다. 정체감이자 분위기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결정한다. 우리 지역이 다양한 사람과 이벤트로 유동할지는 문화가 결정한다. 우리 지역이 과연 어떤 문화를 갖고 있는지, 다가올 ‘로컬의 시대’를 살아가며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화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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