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띄워 올리는 일은 그 행위만으로도 낭만적이다. 타이완 시골 마을 지우펀의 풍등처럼-. 띄우는 이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풍등이 저물어가는 금빛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오를 때 우리는 환호작약한다. 거기 쓰인 글귀가 ‘선영아 사랑해’든, ‘엄마 아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요’든 그걸 띄워 올리는 마음들이 두루 간절하고 아름답기에 나랑 별 관련 없는 풍등에도 같이 손뼉 치며 기뻐한다. 이래저래 풍선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맨몸으로는 지상에서 오 미터도 못 떠오르는 인간의 유한함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낭만적 소품임에 틀림이 없다. 반면에 이런 풍선은 어떤가?
오늘도 어김없이 재난 문자가 온다. “00시 00분경 00지역 상공에서 북한에서 날려보낸 오물 풍선이 포착되었습니다. 야외활동 간 적재물 낙하에 유의하시고 발견 시 내용물은 열어보지 마시고 가까운 군부대나 경찰관서에 신고하시고-.” 말 그대로 재난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풍선을 들고 나라와 나라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희한한 일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한쪽은 위대한 공화국 이름으로 한쪽은 풍요의 상징 자유대한의 이름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아름다운 한반도의 밤하늘을 향해 밤도깨비 두상처럼 괴이한 풍선을 날려 보내며 그들끼리 박수를 친다. 선진국 문턱에 다 왔다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도대체 이 유치하고 졸렬하기 그지없는 풍선질을 얼마나 더 지켜봐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대체 낭만적이지도, 랑만적이지도 않다. 전략으로도 전술로도 그다지 효과적일 리 없다. 그저 네가 하니 나도 한다는 단순한 발상, 네가 먼저 멈추기 전엔 언제까지나 계속한다는 억지 떼쓰기에 다름 아닌 짓이다. 저쪽이 담아 보내는 건 오물에 양말짝에 담배꽁초요, 이쪽이 보내는 것은 상대방 vip의 포르노 합성사진, 드라마, 가요가 담긴 유에스비란다. 이런 일로 상대방 접경지역의 주민들 사이에 자기 정권에 대한 저항정신이 싹트고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심이 사무치게 치밀어 오른다면야 반쯤은 효과가 있다 할까? 문제는 하늘이 무너져도 그럴 리 없다는 사실 아닐까? 그렇게 자유대한을 동경하게 하고 싶으면 전면적인 개방정책을 펼쳐서 남한의 드라마며 가요가 북한 주민의 일상을 헤집게 할 궁리를 하는 게 훨씬 빠른 길 아닐까? 적개심과 조급함에 사로잡힌 몇몇 탈북자들이 이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은 그저 불장난이거나 아니면 소동을 만들어 주목받으려는 작란(作亂)에 지나지 않는다. 장난이거나 작란이거나 그것이 총질로 이어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들어가고 마는 것을 숱한 전쟁사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끔찍한 일인가?
“조카는 폐결핵으로 죽어가는데, 이래 가지구 약이나 제대로 들어가갔네? 내레 다시 묻갔어. 도대체 이거이 누구를 위해서 보내는 거이가?” 얼마 전 막을 내린 어떤 연극에서 한 탈북자가 풍선 날리기를 막으며 애타게 호소하는 대목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풍선이란 말인가?
제발 멈추자. 이제 먹고 살 만한 나라, 체면과 자존심도 좀 챙길 때가 된 나라가 한발 양보하고 먼저 멈추자. 그게 그리 어려운가? 영 멈출 수 없다면, 그 안에 몇 안 남은 이산가족들의 편지라도 넣어보면 어떨까? 빛바랜 가족사진이라도, 눈물 젖은 손수건이라도 넣어 보내면 어떨까? 꿈인 듯 생시인 듯 답장이 오지는 않을까? 유치한 장난에 하도 지친 끝에 해보는 공허한 상상이다.
/곽병창 극작가∙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곽병창 교수는 창작극회 창작소극장 대표·전주시립극단 무대감독·전북도립국악원 공연기획실장·전주세계소리축제 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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