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면 그곳에 가고 싶다. 산들바람 따라 상큼한 솔향과 감 익어가는 그곳은 어머니 품과 같다. 무더위 지나니 들판이 제법 누렇다. '남원산성 올라가 이화문전 바라보니, 수진이 날 진이 해동청 보라매...' 노랫가락에 발걸음도 가볍다. 누구는 남한산성 아니냐고 말한다. 남원성 너머 교룡산에 천년을 머금은 천혜의 요새 교룡산성이 남원산성이다. 그 옛날 남원에 용이 승천하기 전 교룡(蛟龍)이 살았다. 백제시대 518m 높이의 교룡산에 성곽을 3.12km 쌓았다. 성 안에 우물이 99개와 계곡마다 수문이 3개나 있던 철옹성이다.
교룡산성 동쪽 홍예문에 옹성이 있어 지금 보아도 튼실하다. 과연 누가 성을 쌓았을까? 홍예문 지나 비석들도 오랜 흔적을 보여준다. 별장과 장군의 이름이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즐비하다. 계곡 따라 오르면 선국사 대웅전 아래 보제루가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다. 동학농민혁명군 김개남 장군이 머물던 곳이다. 그는 전봉준 장군과 뜻을 같이했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철학이 약간 달랐다. 누구의 영향이었을까. 동학의 시작을 알린 수운 최제우가 머물며 '동경대전'을 쓰고, '칼노래'를 부르며, 검무를 추었다고 한다.
남원은 그냥 남원이 아니다. 춘향이가 살던 광한루, 이도령과 만난 오작교, 여뀌꽃 피는 요천(蓼川)이 흐르는 남원은 사랑을 간직한 도시이자 천년 역사를 품은 도시다. 남원은 천년 전에도 남원(南原)으로 불리었다. 통일신라 5소경 중 남원경처럼 옛 이름을 간직한 곳은 남원이 유일하다. 백제의 문화도시, 신라의 역사도시에 남원성과 교룡산성 옆에 선원사와 만복사가 있다. 고려 사찰과 탑들이 지리산과 섬진강변에 많다. 고려 말 왜구 침입에 이성계 장군과 포은 정몽주 그리고 만육 최양 종사관이 황산대첩을 이룬 곳도 남원이다.
남원 운봉과 인월에 가면 역사 속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 태조 이성계는 피바위와 인풍리에서 황산대첩 후 남원성 옆 만복사가 있는 왕정동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남원성 안 용성관에서 미래를 기획한다. 그 후 황희 정승이 남원에 귀양 와 광한루를 짓고, 정인지가 오작교와 삼신산에 정자도 꾸민다. 또한 매월당 김시습은 최초의 한문소설 '만복사 저포기(萬福寺樗蒲記)'를 남원성 서문 옆 만복사에서 구상한다. 삶과 죽음에 얽힌 사랑 이야기가 음악과 함께 내려온다.
남원은 춘향가와 흥보가 판소리가 있지만, 더 깊은 역사 속 정유재란 만인의총 이야기가 남아 있다. 가을에 꼭 한번 가야할 도시가 남원이다. 지리산 오르기 전 섬진강 따라 뱃놀이 하기 전 남원성 옆 만복사지에 꼭 가보자. 만복사지에 가면 눈에 보이는 보물이 많다. 만복사 규모를 알려주는 만복사지 당간지주, 오층석탑과 석조대좌 그리고 석조여래입상이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다. 만복사 석인상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에 나오는 양생처럼 살포시 웃는다.
남원역에서 5분 거리에 만복사지가 있다. 광한루까지 걸어서 10분이면 족하다. 남원성 북쪽 만인의총도 걸어가보자. 427년 전 정유재란 때 스러져간 우리의 조상도 만날 수 있다. 그날의 함성을 들었다면 술 한잔 올린 후 교룡산성으로 가자. 성안 보제루에 앉으면 지리산과 요천이 보인다. 가을에 남원은 언제나 엄니 품과 같다. 남원에 가면 따뜻한 온기를 꼭 담아 오자. 가을이 주는 힐링 도시, 남원~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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