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갔습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경원동 책방엘 갔습니다. 썰렁했습니다, 종이 냄새에 잉크 냄새만 상큼했습니다. 깨끗이 빨아 빨랫줄에 널어 햇볕과 바람에 말려 개켜 놓은 옷가지인 듯, 새물내가 아니 새 책 내가 내내 코끝에 맴돌았습니다. 현대인들은 눈코 뜰 새 없습니다. ‘빨리빨리’, 재촉하며 건너온 산업화시대 관성 때문입니다. 차분히 앉아있을 틈이라곤 없습니다. 도통 책 한 장 넘길 겨를이 없습니다. 세상이, 세월이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인 우리는 너나없이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있습니다.
길고 재미없는 것들은, 숙제처럼 읽어야 할 것들은 컴퓨터가 척척 요약해 줍니다. 그러니 밤새워 톨스토이와 백석을 읽을 일이 없는 것이겠지요. 세상 듣기 좋은 소리 셋은, 내 새끼 책 읽는 소리요, 빈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요, 마른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라 했습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 두보(杜甫)의 시구던가요? 조선 선비 장혼(張混)은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속 심장 안에 간직해 둘 수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아! 그런데 저물도록 책방 구석에 쪼그려 앉아 만화책을 훔쳐 읽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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