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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나누고 비우고 채우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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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사장님, 저건 뭐예요?”

예약실 안쪽 벽을 가리키며 손님이 물었다. ‘송광백련 나비채 음악회’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 놓았던 것이다. 종종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마다 가까운 절을 찾던 인연에 소식을 접하고 음악회를 여는 취지에 공감하며 나서 걸어놓은 것이었다. 폭염에 시달리던 긴 여름 끝, 풍요로운 가을을 고대하며 호젓한 산사에서 음악을 즐긴다는 것이 퍽 낭만스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현수막을 걸어놓은 이후 여러 손님들이 비슷한 즈음에 자신들과 관련된 행사도 열린다며 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특히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열린 ‘가을날의 뜨락음악회’는 ‘송광백련 나비채 음악회’와 일시가 겹쳐 행복한 고민에 빠지게 했다. 

나비채 음악회가 열리던 날,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본행사뿐 아니라 준비하는 모습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송광사 입구에서부터 당황했다.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고 인근 도로가에도 차가 즐비했다. 경내로 들어서며 깜짝 놀랐다. 평소 고즈넉했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만큼 관객들과 손님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경내를 둘러보며 반가운 얼굴들을 여럿 만났다. 인사를 주고받으며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몇 번쯤 비슷한 느낌을 받아 의아하던 차에 이유를 알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방금 인사 나눈 분은 신부님, 조금 전 뵌 분은 목사님, 또 수녀님. 종교의 경계를 넘어선 어울림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오신 스님들 또한, 아침에 가게에서 국밥을 드셨다는 이유로 반갑게 아는 체 해주셨다. 무대에 서지 못해 아쉽다던 판소리 명창, 다음 해 나비채 음악회에는 꼭 출연할 거라는 국악 연주자,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나비처럼 걷던 무용가도 음악회 전의 흥겨움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이날만큼은 부처님께 고요히 기도하는 도량이 아니라 멋진 공연장이 된 듯했다. 

국내 유일이라는 십자형 전각이 신비로워 구경하다가 뜻밖의 손에 이끌려 공양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행사 두 시간 전인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공양밥 먹는 즐거움을 포기할까 잠깐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공양간은 물론이고 곳곳에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고 웃으며 봉사하는 분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떤 행사든, 관객보다 준비하는 이들이 첫 번째 손님이지 않을까 싶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봉사자들의 손을 잡은 어르신들이 경내로 들어섰다. 이어 장애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인근 지역의 사회적 약자들과 부녀회장님들이야말로 제일 먼저 모시고 싶은 이날의 VIP라던 주지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종교가 기도와 말씀뿐 아니라 문화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웃과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거름부터 밤까지 이어진 산사음악회는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에 위로와 휴식이 되었다. 팔작지붕을 타고 흐르는 오케스트라의 선율은 선선한 가을바람처럼, 바리톤의 목소리는 촉촉한 단비처럼 느껴졌다. 기회가 닿는다면 국밥집에만 갇혀있지 말고 음악회나 전시회 등 문화예술 현장에도 자주 찾아가야겠다 싶었다. 생업에만 매여 사느라 그간 이런 감동을 몰랐던 자신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여러 손님들이 연휴기간 펼쳐지는 행사 소식을 전해주었다. 경기전과 전라감영, 한옥마을, 국립전주박물관 등에서 무료로 열리는 공연과 체험행사가 많다. 추석에는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온 손님들이 반가운 얼굴을 비추며 국밥집 아주머니를 찾기에 자리를 비우기 쉽지 않지만,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행사 한두 개쯤은 좀 욕심을 내어보아도 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또 어떤 인연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을지 기대된다. 

/유대성 전주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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