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도 멀지도 않은 길은 놓칠 염려 없었습니다. 어쩌다 좀 멀리 나갔을 땐 누군가에게 길을 물었지요. 갈수록 길은 빠르고 멀어집니다. 세상에는 사람이 넘치고요. 그러나 앞뒤로 빵 빵 자동차뿐, 길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붙들고 길을 물을 수 없습니다. “이 길을 곧장 가다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오른편으로 꺾고, 담배 한 대 참…”, 제 길처럼 일러주던 이들 길 따라 세월 따라 흔적도 없습니다.
안경을 쓰고도 자주 길을 놓칩니다.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도 자주 길을 헤맵니다. 바로 가면 강진 지나 임실 지나 진안 장수 대구로 이어지는 30번 국도랍니다. 오른쪽으로 빠지면 지금 활활 불이 붙었을 내장산이고요. 반대쪽은 산외를 지나, 전주로 가는 27번 국도와 만나는 49번 지방도랍니다. 행여 해찰하다가 길도 세월도 사람도 놓친 이들은 빙글 로터리 돌아 처음으로 다시 가면 될 것입니다.
누구는 저 길을 따라 도시로 나갔겠지요. 넓고 빠르고 먼 길만 쫓다 지쳐 이정표를 보았겠지요. 또 누구는 저 길을 따라 돌아와 가쁜 숨을 고르겠지요. “길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H. D. 소로우가 말했지만 아마도 길을 잃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겁니다. 놓치고 잘 못 든 길은 이정표로 찾아가겠지만, 되돌리고 싶은 인생길은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요? 길이 있기에 인간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면, 인생의 이정표는 책이요, 학교요, 어른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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