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은 얼마나 낡았을까요?
어느 해 가을 어스름 녘, 뒷집 영임이 누님이 담 너머 넘보고 있었습니다. 타작하며 시금자가 튀었겠지요. 내 앞에서만 그랬을까요? 언제나 주근깨 박힌 얼굴을 수그렸습니다.
마당귀에 걸린 양은솥에 불을 넣었지요. 바싹 말려 탈탈 털어낸 깻대는 불땀이 좋았지요. 뿌글뿌글 호박죽이 끓었던가요? 어머니는 도둑, 아니 요술쟁이였습니다.
“노각이나 두엇 찾아봐라”, 밭두렁 샅샅이 뒤져도 우리 넝쿨엔 분명 아무것도 없었는데, 동글 납작 늙은 호박은 툇마루에 앉혔다가 굴풋한 한겨울에나 죽 쑤었는데.
아버지와 할머니는 안방에서 겸상하셨지요. 마루에 노란 쟁반상 받친 양푼 속 깨소금 내는 퍼내도 퍼내도 굻지 않았고요. 누렁이도 제 밥사발 오래 핥았고요.
배불러 잠 못 들었지요. 식식 배는 안 꺼지고, 휘영청 달빛 아래 보니 큼큼 냄새를 맡던 영임이 누님은 담벼락에 기댄 해바라기였지요. 촘촘한 주근깨 이듬해 다시 꽃피었지요.
옛날은 가고 없습니다. 그날 어머니가 서둘러 지웠던 호박 달만 낡지도 않아, 오늘 밤 다시 또 둥실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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