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온다. 날이 추워질수록 자연스럽게 지나온 계절을 돌아본다. 내년이 되면 완주에 온 지 7년차가 된다. 3년차부터 사투리가 덜어지는 것 같더니 이젠 제법 완주 사람 같아보이나보다. 고향을 알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많지는 않다. 7년을 앞두고 있지만 연차가 쌓인다고 완주살이가 쉬워지진 않는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귀촌한 친구들 중 대부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얼마 전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귀촌 동기 친구와 만났다. 오랜만에 서로의 근황과 완주살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 하는 일은 달랐지만 제법 비슷한 궤적 안에 살아가고 있었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시간 자체가 위로가 됐다. 몇 없는 귀촌 동지가 있다는 동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소진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완주는 산업단지가 있어 젊은 사람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지역 활동을 하는 청년들의 수가 적은 편일 뿐 인구수로는 계속 증가추세다. 그러다 보니 직업으로 인해 이주한 친구들과 귀촌을 결심하고 이주한 친구들은 목적이 다르고 서로를 만날 접점이 없다. 요즘은 지자체별로 한달살이 등 귀촌을 장려하는 사업과 지원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귀촌은 여전히 보편적이진 않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이주한 친구들은 자기만의 색깔과 기준이 확실한 경향성이 보인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정도 깜냥은 있어야 자기 주도권을 가지고 낯선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기도 하다.
나는 후자의 이유로 완주로 왔지만, 성향은 전자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자기다움과 각자의 개성이 있는 공동체에서 묘하게 삐걱거리는 나를 발견했다. 함께 하며 배우기도 하고 즐거움을 느꼈지만 정작 그 안에서 나는 나다운 나, 온전한 내 모습이기 어려웠다. 각지에서 서로 다른 문화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당연하게 겪는 과정일 수도 있다. 서로에게 소중했고 많은 일을 함께 해온 공동체였던만큼 저마다의 노력을 들이부었지만 균열이 난 유리볼이 깨지는 것을 막을 순 없었다.
그제야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유리볼을 만들기 위해 쏟아붓는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작은 구슬 같은 관계망이 지역 안팎으로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추구하는 바와 지향점에 따라 함께 할 때 함께하고, 각자일 때는 각자로 서로의 선을 지키는 것이 서로다움을 존중하며 오래갈 수 있는 공동체라는 걸, 깨져보고 알게 됐다. 정답은 없다. 너에게 맞는 게, 나에게 맞는 것이 아니니. 그렇지만 ‘이럴수도 있구나’를 아는 건 도움이 된다. 인적 자본을 0에서 시작해야하는 귀촌 살이는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지역과 서로의 상황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동기가 있다는 건 존재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고 나면 무게추는 다시 0에 맞춰진다.
친구에게 ‘우리 지치더라도 다시 끌어올리자’고. ‘이제 소진되며 나를 갉아먹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자’고. ‘7년, 10년 그 후로도 지속가능한 지역살이를 하자고 함께 하자’고 이 지면을 빌려 말하고 싶다. 내 스스로에게 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조아란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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