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지도로 만드는 것은 대개 좋은 일이다. 세상의 구석구석에 햇빛을 비추는 일이니까.”
데니스 우드, <모든 것은 노래한다>(2011, 프로파간다)
지역재생의 활동으로 자주 거론되는 단어는 ‘아카이빙’ 또는 ‘매핑(mapping)’이다. 도시와 동네를 함께 걸거나 공간에 대한 지역민의 미시사를 이야기 나누고 그것을 기록하며 의미화한다. 아카이빙이라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것에 애정을 가지며 그것의 현재를 기록함에 목적이 있지만 어찌 보면 그 대상이 변화하거나 사라질 때 의미를 가지는 아이러니함도 있다. 변화가 당연한 시대 속에서 아카이빙과 매핑은 도시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앞서 인용한 데니스 우드는 기존 지도의 객관성을 믿지 않고 누군가의 주관적 시선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했다. 하여 그는 ‘짖는 개’, ‘나무의 나이’, ‘건물 자국’, ‘일광의 리듬’ 등의 여러 요소를 통해 공간을 탐구하고 기록했고, “서정적이며 개인적인 임무(아이라 글래스)”로 책을 ‘지도’를 완성해 냈다. 그의 방식은 내가 군산에 정착하며 단순히 경제적 활동을 해내고 주거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인식한 과정과 유사하다.
군산의 첫인상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틈’이다. 깨진 벽 사이에서 자라는 나무들, 동네 골목에서 쉽게 발견되는 버려진 욕조를 대용화분으로 쓰며 키우는 식물들,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는 낮고 고른 건물의 선들. 천천히 자신만의 시선으로 발견할 때 도시는 내 것이 된다. 모든 애정은 관찰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딘가 부족해도 사랑하게 되는 공간들. 그냥 지나치면 스쳐 지나가면 그저 풍경으로 끝나버리는 동네의 모습을 ‘아, 이곳에 이런 게 있었네.’, ‘이 시간엔 늘 저 고양이가 있네.’라는 생각으로 산책하고 걷고 관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와 지역에 애정이 생긴다. 그렇게 자신만의 동네 지도가 완성된다.
수저가 깨끗한지 확인하며 놓고, 테이블이 끈적여서 친구와 대화하는 내내 식탁을 닦아야 할지라도 어딘가 편안하고 그곳에서만큼은 진실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술집처럼. 자신만의 동네 지도가 완성되면, 나의 마음과 상태에 따라 발길을 편안하게 닿는 나만의 아지트가 생기는 것이다.
오래된 간판의 디자인이 남아있는 구도심, 곳곳에 놓인 화분과 의자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주택가의 골목, 노을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아름다운 빛을 만들어내는 동네, 마음이 번잡할 때 훌쩍 달려가 복잡함을 털어놓고 올 수 있는 해변. 군산에서 숨 쉬며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나의 군산 풍경들이다.
다시 돌아온, 기후 위기의 무서운 경고장인 지난한 여름도 이번 주면 끝이라는 일기예보가 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엔 동네를 걸어보며 내가 발 딛고 있는 풍경을 관찰하는 건 어떨까. 겨울에 두릅나물을 먹고, 초봄에 냉이가 들어간 된장을 먹으며 식탁에 내려앉은 계절을 느끼는 것처럼, 지금 이 시기에만 내려앉는 햇볕과 지금 존재하는 건물과 사람들 그리고 동네의 여러 새와 동물을 보다 보면 매년 같이 느껴지는 시간과 공간, 계절과 일상이 조금은 특별해질 것이다.
애정 하는 우만의 동료(김다희)가 과거 『우만플러그, 군산』(2021, 우만컴퍼니)의 마지막에 쓴 글을 마지막으로 글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역’이란 게 사람이 아닌데 그에겐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현재를 생동하며 살고 있는 것까지. 어쩌면 생명체인 나보다 살아있는 존재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그 움직이는 것 안에 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며 살게 되는 게 아닐까?”
/김나은 여성주의 문화 기획사·출판사 우만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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