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양옥집(구, 도지사관사)에 간만에 지역 어르신 두 분을 모셨다. 바로 무형유산 색지장 김혜미자 선생님과 소목장 소병진 선생님. 전주 한옥마을 관람객이 가장 많은 가을의 시작 즈음, 전북도가 주최한 한인 비즈니스 행사와 맞물려 기획된 전시 <손끝의 결>에서 두 분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25일간 열린 이 전시는 8,000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두 장인의 작품은 지역을 대표하는 유산으로 이미 여러 차례 전시된 바 있지만, 색지와 나무라는 전혀 다른 재료로 동일한 가구를 만드는 이들의 작품을 나란히 선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전통이라는 한 분야에서 30년 이상을 지켜온 두 분의 희노애락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민들과 함께 듣는 시간이 이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김혜미자 선생님은 한지가 주는 섬세함과 따뜻함을 이야기하며 자연 재료가 지닌 본질적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소병진 선생님 역시 나무가 주는 단단한 구조와 그 안에 담긴 시간의 무게를 설명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 온 나무가 지닌 내적 힘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의 작업은 단지 전통 공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지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살아있는 예술'이었다.
김혜미자 선생님은 한지를, 소병진 선생님은 나무를 다루며 오직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그저 손끝의 기술이 아니다. 기술과 손재주를 넘어 전통을 지키겠다는 신념이자 재료의 본질을 이해하는 통찰이 깃들인 정신의 산물이다. 또한 이 두분을 통해 전통이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의 유물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사실도 새삼 상기하게 되었다.
유홍준 교수는 전통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전통은 그저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이어가는 것이며, 그 안에 미래를 여는 길이 있다." 고.
하지만 우리는 흔히 전통을 ‘옛것’으로만 여기곤 한다. 그러나 전통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고 그의 말처럼 단절된 과거의 흔적도 아니다. 전통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우리 삶에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더해주는 힘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전통을 고수하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켜야하는 이유는 그 안에 시간이 켜켜이 쌓인 인간의 기쁨과 슬픔이 응축돼 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인간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로 자리하고 있기에 우리는 전통을 그냥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전통'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전통을 단순히 박제화하지 않고,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자연스레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전통이 살아있는 유산으로 우리와 함께 성장하고 시대를 아우르는 힘을 가지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다.
임진아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 문화예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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