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은 명산이자 영산(靈山)이다. 변산반도의 여름바다, 내장산의 가을단풍, 백양사의 설경과 더불어 호남 4경으로 꼽힐 만큼 봄 경치가 빼어나다. 산자락 곳곳에 미륵신앙의 흔적이 남아있고 계룡산 신도안과 함께 민간신앙의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는 곳이다.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다.
지난 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모악산(793m)은 전주 김제 완주지역 사람들의 당일 산행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멀리서 오는 등산객과 탐방객들도 부지기수다. 험하지도 않고, 만만하지도 않은 산세에다 하루 산행하기에 적당한 위치에 있는 게 모악산의 커다란 장점이다. 등산로 역시 1시간 거리에서부터 5시간대까지 시간대별로 다양하게 개발돼 있어 그때그때 골라가는 선택의 맛도 쏠쏠하다.
하루 2000여명, 휴일엔 1만여명이 산에 오른다고 하니 모악산 만큼 대중성을 갖고 있는 산도 드물다고 하겠다. 모악산이 없었다면 병을 고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만병통치의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으니 효자산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명산이자 영산인 모악산은 한편으로는 괴물이다. 정상 주변엔 철조망이 빙 둘러 쳐 있고, 꼭대기에는 철탑이 박혀있다.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요새같다. 모악산이 괴물인 까닭이다.
일제는 민족정기를 흐트러뜨리기 위해 백두대간에 철심을 박아놓았다. 우리는 이런 철심을 빼내는 운동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산 정상에 박힌 철탑을 30년째 방치해 두고 있으니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모악산 정상의 송신탑은 1977년 KBS가 TV방송 전파를 송출하기 위해 토지소유주인 금산사와 무상으로 토지임대차 계약을 통해 설치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KBS와 한국통신· SK텔레콤·군부대의 전파 및 통신시설로 쓰이고 있다.
지난 96년엔 ‘송신소 이전과 정상 원상복구’를 주요 내용으로 금산사측과 KBS가 재계약을 체결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정상 20m 아래(현 J-TV 송신탑)에 청사를 재건축한뒤 기존 방송시설을 2001년말까지 이설하고 정상을 2002년까지 원상복구시키로 했지만 KBS측의 의지 부족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연간 1조 수천억의 예산을 주무르는 KBS가 200억 드는 이전계획을 나몰라라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
모악산을 살리자는 운동이 연중 계속되고 있다. '휴식년제'도 좋고 '흙 나르기 운동'도 좋지만 모악산살리기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정상의 철탑과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일이다. 철조망을 풀고 모악산 정상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KBS가 공영방송 답게 송신소 이전계획을 스스로 밝히고 실천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광주시처럼 '통신시설 통합추진위'를 구성해 무등산 일대에 난립돼 있는 송신탑을 철거하고 정상 복원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정상에 오르면 통쾌함과 시원함을 맛보아야 한다. 그런데 철탑과 콘크리트가 머리를 짓누르고 있으니 숨이 턱턱 막히고 갑갑하다. 마치 사람의 정수리에 철심을 박아놓은 것처럼 말이다. 산을 타는 사람에겐 정수리에 철심 박힌 심정이 들 것이다. 우리의 명산 모악산이 왜 괴물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경재(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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