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의 거상(巨商) 임상옥은 최초로 조·중(朝·中) 국경지대에서 인삼무역권을 독점한 인물이다. 그는 천재적인 사업수완을 발휘해 엄청난 돈을 벌어 들였고 그 돈을 굶주리는 백성구제에 사용했다. 그래서 최인호는 소설 ‘상도(商道)’에서 그를 성상(聖商)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그도 한때 아찔한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북경(北京)상인들이 담합해 불매동맹을 맺은 것이다. 그는 아무리 고민해도 이를 타개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북경에 함께 왔던 추사 김정희를 찾았다. “지금 백척간두에 올라서 꼼짝없이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살 수 있습니까?” 그러자 추사는 붓을 들어 “百尺竿頭進一步(혹은 須進步)/ 十方世界現全身(100척의 장대 끝에서 한걸음 더 나가라.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다)”이라 썼다.
이 글을 보고 크게 깨달은 임상옥은 조선에서 가져 온 인삼을 불태우게 했다. 이를 본 중국 상인들은 깜짝 놀라 잘못을 빌었다. 덕분에 그는 인삼을 원가의 수십배에 팔 수 있었다. 백척간두는 원래 1200년전 중국 장사경잠(長沙景岑) 선사의 게송이다.
장황하게 이 일화를 소개한 것은 지방대학의 현실이 백척간두를 방불해서다. 지금 지방대학은 신입생 부족과 취업난, 재정난 등 3-4중고에 처해 있다. 도내 대학들은 한술 더 뜬다. 인구 180만명에 4년제와 2년제 대학이 20개를 넘는다. 지난해 대입 응시자수가 대학정원의 65%에 불과했다. 질적인 면은 더 한심하다. 학생수준, 교수의 연구력, 특성화 등 모든 면에서 바닥을 헤맨다. 여기에는 국립대의 책임이 크다. 지역인재 양성과 지역혁신을 선도할 책무가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도내 국립대 통합은 진작 서둘렀어야 했다. 이미 전남대와 여수대, 부산대와 밀양대, 강원대와 삼척대 등 12개 국립대가 통합에 성공,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전북은 이번에야 전북대와 익산대가 통합에 합의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3월 약속대로 군산대와의 통합에 바로 나서야 한다.
물론 통합만이 능사냐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또 작지만 강한 대학도 없지 않다. 일리있는 얘기다. 한국정보통신대학이나 포스텍 등은 작지만 우수한 대학이다. 또 미국의 리틀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대학들도 있다. 이들 대학은 특정분야에 특화되었거나 기업인 또는 종교재단의 기부로 세워진 대학들이다.
결국 한국적 현실에서 지방국립대는 통합과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권역별로 서울대와 겨룰 수 있는 대학을 육성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고착화된 대학서열화를 깨고 지방대학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지금 통합에서 소외된 군산대는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을 것이다. 반면 전북대와 익산대는 당분간 교수동결, 학생감축 등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또 전북대와 군산대는 협상과정에서 불신과 감정의 골이 깊어져 쉽게 통합작업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두 대학 구성원들은 큰 틀에서 생각해 주기 바란다. 도민의 대학으로서, 희생과 양보를 통해 거듭나야 한다. 백척간두에서 한발짝을 더 딛는 용기를 내라는 말이다.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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