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몇 차례 단편영화를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예산? 자장면 먹고 자가용으로 움직이고 늦으면 집에서 재웠다. 조용한 공간 헌팅과 조연들 섭외해서 시간을 칼같이 운영해주면 저예산 영화가 아니라 거의 무예산으로도 찍을 수 있었다. 독협에서 카메라 빌리고 편집도 여기서 했다. 상금 타면 다른 영화를 또 찍을 수 있었고. 문제는 학생들의 시나리오 쓰는 능력과 기획력. 다행히 한 번 작품을 만들어보면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조금씩 생겼다.
10월 23일부터 메가박스 전주에서 전북독립영화제가 열린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올해는 예심을 맡게 되었다. 40편이 넘어왔는데 시민영화제가 막을 내린 후 1년 6개월의 공백치고는 출품 편수가 적은 편. 400분 동안 단점보다 장점을 보고자 애를 썼다.
20대가 선호하는 대중가요들은 대개 사랑타령이지만 젊은 감독들의 화두는 방황하는 젊음이었다. 물론 '수상 전략'의 소산으로 내면이나 타자와의 관계를 그리겠지만 이런 기획일수록 연기력과 연출력이 중요한 부분이다. 마음 가는 대로 찍다보면 블록버스터가 되기 십상인데, 촬영이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작은 동선을 추구하는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듯.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삶의 단면을 예리하게 잘라내는 것이 독립 단편의 장점이란 것을 모르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나열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등학생들은 영화 찍는 그 자체를 즐긴다는 느낌. 대학생들의 작품은 상업적 동기를 갖는 영화 흉내를 많이 내는 만큼 조명이나 사운드 등 완성도가 높았다. 이들이 애써 만든 영화가 상영되고 다른 영화제에서 피드백 되면 좋은데, 사실 안 되면, 잘 안되니까 지친다. 영화 찍고 빚지고, 갚고 또 빚내서 찍고, 그러면서 이들은 빛나는 한 철을 보내고 있다. 이들에게 구태여 충고를 하자면, 영화 찍는 스킬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시나리오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 영화가 어찌 카메라를 비롯한 기계의 영역일까. 인문학을 둘러싼 독서와 타 장르와의 교감이 없으니, 자의식의 폭이 좁은데, 나올 게 있겠는가.
영화제를 준비하는 독협을 살펴보니, 선한 사판승들이 많았다. 염불을 해봐야 잿밥도 없는데 그들은 교육과 상영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독협은 작품을 생산하는 곳이어야 한다. 하여 오늘 영화를 만드는 젊은이들이 좌절하지 않고 끝내 이기어 이 동네서 만든 첫 장편 독립영화 상영이 되는 전북독립영화제를 기대해 본다.
/신귀백·문화전문 객원기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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