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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서기 639년 창건 밝혀져

사리장엄 발견은 백제문화 최대 고고학적 성과

19일 미륵사지 현장에서 배병선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사업단장이 사리장엄이 발견된 사리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봉주([email protected])

익산 미륵사가 백제 제30대 무왕(武王, 600∼641년) 시절인 서기 639년(무왕 재위 40년)에 그 왕후가 창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무왕과 그 왕비인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가 같이 사찰을 중건했다는 기존 설화와 달리, 왕비가 백제 최고 관직인 좌평(佐平)의 딸이라는 기록이 발견돼 주목을 모으고 있다.

 

이로써 그동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 내려온 미륵사의 창건 시기와 내력은 확인이 됐지만, 백제 서동왕자와 신라 선화공주로 대표됐던 백제와 신라간 문화교류설은 흔들리게 됐다는 분석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미륵사지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조사 과정에서 지난 14일 백제 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한 사리장엄을 발견했다"고 19일 밝혔다.

 

이는 미륵사 창건 배경 및 발원자, 석탑 건립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유물로 무령왕릉 발굴과 능산리 금동대향로 조사 이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백제 사리장엄구로서는 2007년 부여 왕흥사지 목탑터에서 출토된 창왕 시대(577년) 제작품에 이어 두번째 발견. 백제문화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심주(心柱) 윗면 중앙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사리를 담은 금제사리호(金製舍利壺)와 석탑 조성 내력을 적은 금판인 금제사리봉안기(金製舍利奉安記), 백제 특유의 머리꽂이 장식인 은제관식(銀製冠飾) 등 유물 500여점. 특히 금제사리봉안기는 미륵사 석탑과 미륵사 사찰 창건 내력을 증언하는 가장 중요한 유물로,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금석문 자료인 동시에 백제시대 서체 연구에도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cm, 세로 10.5cm 크기의 금판에 음각하고 주칠해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했다. 아직 판독과 해석이 완전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백제 무왕의 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김봉건 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미륵사 창건에 관한 역사적 배경, 백제석탑의 사리봉안 기법과 의례를 새롭게 밝힐 수 있게 됐으며, 매납(埋納)된 유물의 절대연대 확정을 통해 동시기 유물의 편년(編年)이 가능해졌다"며 "향후 수습된 유물을 보존처리한 후 심층조사하고 그 결과를 연구자와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기상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다양한 종류가 일괄 출토됐고 가공수법도 정교하고 세련돼 국보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국보급 유물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유물 보존처리와 연구가 충분히 진행된 후에는 국보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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