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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철승과 정동영 - 조상진

조상진(본지 논설위원)

꽤 오래전 소석(素石) 이철승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울 동대문경철서 맞은 편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4시간 가량 마주했다. 당시 소석은 항일운동과 해방이후 벌어졌던 반탁(反託)운동부터 김대중 정부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한국정치사를 흥미있게 들려줬다. 고비고비 자신의 역할과 생각을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풀어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당돌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함께'40대 기수론'을 주장했던 김대중 김영삼 등 두 김(金)씨에 대해 물어봤다. "두 김씨는 대통령을 했는데 선생님은 왜 못하셨습니까?" 이 물음에 그는 한참 생각하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팔자 소관이지"라고 답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철승이 누구인가. 아마 50대 후반을 넘긴 사람들은 그를 정치 거목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전주에서 일곱번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엄혹한 시절 야당대표를 지냈다. 며칠전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해 태어난 그는 정계은퇴후 보수·우익 성향의 발언으로 눈총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오랫동안 두 김씨를 능가하는 카리스마로 야당의 맏형노릇을 톡톡히 해낸 분이다.

 

그런 그도 대통령이 될 운(運)은 타고나지 못한듯 하다. 5·16 쿠데타로 인해 7년간 정치정화법에 묶여 해외를 떠돌아야 했다. 또 1976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된 후'중도통합론'을 주장, 사쿠라 논쟁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독재에 맞서 선명성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화답하지 못한 것이다.

 

반면 두 김씨는 끝까지 민주화에 매진했다. 감옥에 갇히거나 망명, 단식 등 자기 희생을 통해 국민들에게 민주화에 대한 희망을 불어 넣었다. 그러한 차이가 이철승을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닐까.

 

그러면 정동영 전 민주당 의장은 어떤가. 그는 지난 대선에서 비록 530만표 차로 떨어지긴 했으나 전북출신으로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간 인물이다. 뜨뜻 미지근한 전북인의 성향에 비춰 진취적 기상이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아직 더 단련의 시기를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좋은 본보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의 공과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줬기 때문이다. 그는 경남 출신임에도 3당 합당시 민자당으로 가지 않았다. 또 1998년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2000년 16대 총선에선 서울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출마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세운 것이다. 그나마 새천년민주당 옷을 입고 도전했으니 백전백패할 게 뻔했다. 역시 패배의 쓴잔을 마셨고'바보 노무현'이라 불렸다. 그런 결과물이 축적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면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동영 의장은 지금 어떤 상황인가. 대선과 총선에서 잇달아 낙마한 후 미국으로 떠났다. 그를 도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흩어지거나 숨을 죽이고 있다. 억울하고 분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4·29 재선거에 전주 덕진으로 출마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 기껏 몇달간 미국에 있다 돌아와 국민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이철승과 두 김씨, 그리고 노무현의 예는 반면교사일 수 있다.

 

/조상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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