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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몽골기병의 굴욕 - 이경재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4.29재선거를 앞두고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이 어제 미국에서 돌아왔다. 많은 지인들이 공항에 나가 그를 맞이했다. 뼈를 묻겠다며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 낙선하고 도미한지 8개월만이다.

 

정 전 장관이 트랩을 내리면서 느낀 감회는 어떤 것이었까. 지지율 15%대의 침체에 빠진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전주 덕진 재선거 출마를 선언한 그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전략공천'이라는 당의 가혹한 결정이었다. 아예 후보신청도 받지 않고 당 지도부가 직권으로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나를 배제하겠다고? 내가 누군데…" 정 전 장관은 분노를 삭이며 여러 경우의 수를 머리 속에 그리며 트랩을 내렸을 것이다. 정세균 대표와 회동해도 기대할 건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1라운드에서 감정 섞인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기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이 오늘날 기로에 처한 현실을 놓고 보면 새삼 정치무상이 느껴진다. 그는 1996년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DJ) 총재에 의해 영입돼 정치에 입문했다. 평생의 라이벌인 김영삼에게 무너지고 정계를 은퇴한 뒤 처음 치러지는 15대 총선은 DJ에게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차기 야당 대권 후보로 나갈 수 있는 가늠자였다.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던 정동영을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였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그를 수도권에 내보내려 했다. 그러나 정동영은 수도권 출마를 강행하지 않았다. 그는 안전한 지역, 그것도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전주 덕진을 택했다. 15·16대에 전국 최다득표를 이끌어내면서 화려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양김처럼 '신 40대기수론'을 주창, 개혁의 전도사로 부상했고 속도전과 기동전을 벌이며 승승장구했던 몽골기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폭발적인 이미지 정치를 펼치면서 정치입문 6년만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당내 후보경선에 참여했고 지난 17대 대선에선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돼 한나라당의 이명박후보와 싸웠다. 540만표 차이로 낙선했지만.

 

이런 그가 오늘날 후보신청 조차 받아주지 않겠다는 냉대를 받고 있다. 대문도 열어주지 않는 굴욕을 당에서 받고 있는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측근들에 의한 출마촉구 → 출마선언 → 전주덕진 입성의 소프트랜딩 프로그램이 일그러진 것은 어디에서 잘못된 것일까.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정세균대표를 너무 물렁하게 본 데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정동영의 귀환은 당내 계파간 역학 및 향후 18대 대선 구도와 맞물려 있고 호남 맹주와도 관련된 메가톤급 현안이다. 정세균 대표는 온화한 합리주의자이지만 그 이면에는 얼음장 처럼 차가운 이성을 깔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에게 '정동영문제'는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는 현안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2라운드가 시작된다. 2라운드는 기(氣) 싸움이다. 미래의 문제가 걸린 기 싸움에서 정동영은 독자생존할 수 있을까. 지금 칼자루는 정세균 대표가 쥐고 있고 정 전 장관은 칼날 위에 서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트랩을 내릴 때 이미 반전카드를 준비했을 수도 있다. 수 읽기에 한번 삐끗하면 깊은 수렁에 빠지는 한판의 바둑을 보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전북인만 아니라면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텐데….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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