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말을 들으니) 내가 지금도 독재의 주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너무 통제돼 정치권에 휘둘린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40여 명의 평검사들이 참석, 도전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심지어 "검찰에 왜 청탁전화를 넣느냐"는 추궁까지 나왔다. 그러자 대통령은"그렇지 않다"고 반박하면서 "이쯤되면 막 하자는 거지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월이 흘러 6년후인 올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이미 권력에서 물러난 노 전대통령에 대해 사정의 칼날을 들이댔다. 소위'박연차 게이트’에서 비롯된 '죽은 권력 손보기’는 측근은 말할 것 없고 형과 부인 자녀까지 불러들여 먼지털이식으로 진행됐다. 마지막 목표는 물론 노 전 대통령이었다.'포괄적 뇌물죄’로 옭아 넣기 위해서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수사 내용을 언론에 낱낱이 공개하며 자신들의 의견까지 덧붙이는'친절함’을 보였다. 나아가 노 전 대통령측의 해명까지 유출하며 파렴치범으로 몰아갔다. 대통령과 박 회장과의 대질신문 계획을 공식적으로 흘리고, 김해에서 서울까지 그를 자발적으로 압송(?)하는 이벤트까지 마련했다.
이를 언론은 신나게 받아 적었다. 아니, 더 부풀리고 상상력까지 발휘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조·중·동뿐 아니라 방송과 한겨레·경향까지 장단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 끝은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중하게 모시라"고 지시했다. 낯빛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이어 7일간의 국민장 드라마는 조문객 500만 명이 모이는 초유의 애도속에 치러졌다.
국민장이 끝나자 검찰수사를 총지휘했던 임채진 검찰총장이 물러났다. 퇴임식에 앞서 임 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재직동안 이쪽 저쪽에서 수없이 흔들었다"며 "조중동 광고불매운동사건 등에서도 법무부의 수사지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노 전 대통령 수사에 청와대와 법무부가 개입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그는 참으로 비겁한 사람이다. 인간적으로 불사이군(不事二君)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직책에 충실하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정권교체기의 총장으로서 고뇌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줏대없이 흔들려 외풍막이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전직 국가원수에 대한 수사를 끝내고도 3주간 좌고우면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검찰이'정권의 시녀’라는 비판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다.
여기에 이상한 일이 또 있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정도에 어긋나는 편파·표적수사 논란이 제기되는데도 소장 검사들의 목소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문제로 전국의 소장 판사들이 대대적인 자기 정화 노력을 하는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6년전 대통령앞에서 보여주었던 높은 기개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물론 검사동일체의 원칙이라는 조직의 특수성과 인사상 불이익 등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검찰개혁의 계기는 마련되었다. 야당이나 시민사회, 한나라당내 쇄신특위까지 나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제도개혁은 중요하다. 인적 쇄신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검사 개개인의 투철한 정의감이 아닐까 싶다.
/조상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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