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미디어법 통과를 둘러싸고 난장판이 벌어졌을때 나는 오랜만에 거실 소파에 앉아 실컷 웃었다. 아니 모처럼 진짜 TV 코미디 프로그램 한 편을 보는듯한 흐뭇함(?) 마저 느꼈다. 공중제비도 그 정도로 날기는 힘겨울텐데 한 야당의원은 잘도 날았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의장석을 둘러싼 국회 경위들의 방어벽은 너무 완강했다. 욕설과 고함, 삿대질이 난무하는 가운데 그는 속절없이 단하로 추락하고 말았다.
주방에서 달그락거리던 아내가 내 웃음 소리에 놀라 거실로 나오며 물었다. "텔레비에 뭐가 나오기에 그렇게 요란스럽게 웃어?" "응, 지금 국회의사당에서 코미디쇼를 하는 중이야" "국회에서 무슨 코미디쇼를 다 해?" 바로 그 때 흰 두루마기 차림의 강기갑의원이 의장석으로 돌진하다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붙잡혀 바닥에 패대기 쳐졌다. 그는 엎어지자마자 옆에 있던 의원의 두 다리를 잡아 메다 꽂았다. 레슬링 경기의 상대방 파고들기 기술 그대로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가 넘어뜨린 의원은 민노당 한편이었던 것이다. 일어나서는 서로 어깨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며 나와 아내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아하 국민을 위해 무한봉사를 다짐하는 국회의원들은 이런 웃음도 다 선사하는구나 고마워 하면서. 미디어법을 둘러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한 판 승부는 볼썽 사나운 육탄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대의정치의 요체를 다수결이라고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당당한(?) 승리였다. 대화와 타협을 그토록 갈망해온 민주당은 골리앗 여당앞에 허망하게 무너진 가여운 다윗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실컷 웃으며 보고 난 코미디의 뒤끝에 참을수 없이 스며드는 페이소스라니….
이번 국회의사당 폭력사태를 보는 세계언론의 눈이 곱지 않은 모양이다. '집단으로 싸우는 한국 정치인들' '레슬링 경기장이 된 한국 국회'등 조롱섞인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그들 눈에 그렇게 보인것은 당연할 것이다.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니니 창피운운 하기도 지친다. 문제는 보수언론의 보도태도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민주당의 책임이라고 나무랐다. 본회의장에 입장한 의원이 투표하는 것 조차 방해 받았다고 했다. 그런 일을 벌이고도 법을 따져 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니 소가 웃을 일이라고도 했다. 이건 의사당 코미디 이상의 언론코미디다. 그 신문은 색안경을 끼고 현장을 봤는지 몰라도 TV를 시청한 국민들은 적어도 시시비비를 가릴정도의 판단력은 가지고 있다. 세상에 한손바닥 만으로 소리나는 경우(孤掌難鳴)를 본 일이 있는가?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이번 사태는 협상력 없이 청와대 눈치만 보다가 극한적 선택을 한 여당측에 책임이 크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참 의장석을 점거하면 어느쪽이건 불이익을 주겠다던 이번 코미디 연출가 국회의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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