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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철학과 출신도 뽑아라" - 이경재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철학을 하면 밥 굶기 십상이다"는 근거 없는 명제를 보기 좋게 뉘어버린 철학자는 '만물의 근원은 물'로 유명한 그리이스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BC 640∼550)였다.

 

청년기에 탈레스를 곤란하게 했던 것은 "학문이 스스로를 궁핍한 생활에서 구제해 주지 못한다면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이 뇌리에 박혀있던 그는 마침내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천체 관측을 하던중 그 해에 곡물이 많이 산출될 것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는데, 수확하기 훨씬 전에 자신이 살던 밀레토스 근교 전체의 올리브 열매를 독점, 계약을 맺었다. 실제로 올리브 수확량이 급증해서 거대한 매출을 올렸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재물에는 관심이 없었던 탈레스는 상인들을 불러모아 거둬들인 이익금을 나누어 주었다.

 

이를 두고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재미있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이리하여 철학자는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철학자의 마음은 이보다 더 높은 것을 지향한다." 철학을 하면 '만학의 왕' 답게 모든 걸 알 수 있고, 또 할 수 있다는 사례로 인용되는 예화다.

 

60년대 어느 해에는 철학과 지망생이 서울대 전체 수석합격을 차지한 일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이변 중의 이변이지만 당시엔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순수 학문에 대한 열정이 컸고 인문학을 중시하던 전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철학과 출신들의 경우 대학시절에 논리적 사고력과 함께 분석력과 비판력, 종합력 등을 연마하기 때문에 사회 진출 이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판치고 돈과 물질이 선(善)이 되는 오늘날 철학은 뒷켠에 물러나 외롭게 분투하고 있다. 철학 뿐 아니다. 이른바 문·사·철(文·史·哲)로 대변되는 인문학이 모두 그렇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지도 오래다. 지망학생도 줄어들고 취업의 문도 좁아 천덕꾸러기 학문이 돼 버렸다.

 

'인간다움'을 뜻하는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 유래한 것처럼 인문학은 다양성의 사회에 필요한 교양인, 바람직한 사회인이 되기 위한 인프라를 길러주는 학문이다. 학생들은 인문학 교육을 통해 자기성찰과 통합적 사유능력, 세계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균형 잡힌 비판정신을 기른다.

 

그런데 얼마전 이런 인문학의 가치를 인재선발에 반영하라는 그룹 최고경영자의 메시지가 주목을 끌었다. 구본무 LG회장이 대졸 신입사원을 뽑을 때 "철학과 출신도 뽑아라"고 말해 화제가 된 게 그것이다.

 

경제학·경영학과, 공과대 출신뿐만 아니라 철학· 심리학 같은 인문 사회과학 전공자도 많이 선발해야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고객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이러한 인재경영방침은 결국 '고객가치 경영'의 중요성과도 일맥상통한다. 구 회장은 지난 연말에도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 어렵다고 사람 안 뽑으면 안 된다"며 '사람 중시'의 경영철학을 밝혀 주목받기도 했다. 다른 기업이 하지 못한 시도다.

 

사람 중요한 줄 모르고 돈만 아는 CEO와는 대조적이어서 보기에 좋다. 이런 경영철학이 뚜렷한 CEO를 모시고 있는 LG맨들은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사람 중요한 걸 아는 사람이야 말로 조직을 경영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이 역시 철학의 문제다.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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