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제 우리 곁을 떠났다. 어제 영결식을 끝으로 '화해와 용서'라는 큰 화두를 남기고 가는 길을 달리했다. 한 달 넘게 이어온 '문병· 조문정국'이 모처럼 화합과 통합으로 가는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비쳐지는 이러한 모습은 반대자들과의 성숙한 공존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여전히 갈등의 물결이 굽이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갈등상황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이건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들의 갈등관계가 근원적으로 풀어지지 않은 채 상당한 부분은 협동으로 수렴되어 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론 갈등현상이 중첩, 심화되어 간다는 데에 있다. 계층· 지역· 이념· 정파적 갈등 외에도 무시로 찾아오는 이런저런 갈등이 만연해 있다. 우리는 여기에 지쳐 있다.
현실적으로 선거구제와 행정구역에 따른 지역주의 폐해 뿐 아니라 70여일간 계속된 쌍용차 분쟁, 그리고 미디어법 논쟁 등 악에 받치도록 싸우고 또 싸우는 사태를 목격해 왔다. 서로 상처를 들쑤시는 사회의 갈등 구조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물론 우리 지역이라고 해서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리란 법은 없다.
알다시피 2003년 7월 부안군이 산업자원부에 방폐장(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유치 신청서를 접수하고 그 이듬해 9월 정부가 부지선정 절차를 포기한다는 발표가 있기 까지 정부와 부안 주민, 찬반 주민 간 갈등이 1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민과 정부, 찬성주민과 반대주민 간의 갈등으로 지역사회의 분열은 말할 것도 없었다. 새만금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정부와 NGO, 찬성주민과 반대주민의 갈등도 이 지역에 엄청난 피해의식과 반목을 남겨 놓았다. 착공부터 2006년 3월 대법원의 새만금소송 확정 판결에 이르기 까지 물경 약 15년에 걸쳐 극심한 대립의 각을 세워 왔던 것이다.
이들 현장은 다 같이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이나 경직 등 결함으로 빚어진 상충하는 프레임의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사업추진에 따른 경제효과를 줄기차게 강조하는 프레임을 주장한 반면에 환경운동단체나 반대주민들은 시설우려와 환경훼손을 절대 반대하는 프레임을 끈질기게 고착함으로써 상대편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갈등전선이 해결되지 못했다.
갈등이 당사자들의 목표가 양립 불가능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해결에 방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갈등을 조정하는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느냐가 그 사회의 경쟁력을 가르는 요인이다. 갈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갈등해결의 방식도 달라진다. 큰 기침으로 지역의 어려움을 풀어줄 수 있는 '큰 어른'이 없다는 사실 또한 새삼 아쉬운 실정이다.
미국인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휴가를 앞두고 읽었다는 자신의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갈등관리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는 아무리 구성원들이 착해져도 사회적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그는 갈등이 사라진 사회를 만들려고 하기보단 집단 간 갈등이 정의롭게 조율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지금 전북은 새만금 매립지의 행정구역 설정을 둘러싸고 군산과 김제, 부안 간 갈등이 벌써부터 심상찮다. 니버의 대안에 귀 기울일 만하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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