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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통합논의, 방폐장 사태 될라 - 이경재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전국적으로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10곳중 5곳에서 통합신청을 하고 그 중에서 2곳 정도가 통합하면 성공한 것으로 본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행정구역 개편은 어렵고 힘든 작업이다.

 

지역에 따라, 사람에 따라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또 통합의 효율성만으로는 커버할 수 없는 역사성이나, 이성만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정서적인 측면도 있다.

 

전주-완주 통합도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런데 민간추진협의회 발족을 계기로 통합논의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과거의 논의가 정치인 집단에서 주로 제기되고 의제로 설정되었던 데 비해 이젠 주민들 속으로 그 무대가 옮겨졌다.

 

벌써부터 찬반 입장이 엇갈리면서 왁자지껄하다. 술자리에서는 침 튀기는 설전(舌戰)도 오간다. 성명과 입장 발표는 선전포고나 다름 없다. 머리띠, 어깨띠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수 틀리면 더 강경한 수단도 동원될 터이다.

 

하지만 내용은 뻔하다. 찬-반 모두 고착화되고 유연성이 결여된 자기입장의 나열이다. 당위성으로 포장된 이기적 자기논리이다.

 

전주-완주 통합논의에 대한 핏발 선 찬-반논의를 보면서 부안 방폐장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방폐장 사태는 본질은 오간데 없이 찬-반만 남겼다. 그 결과는 갈등과 반목이었고 가장 큰 희생자는 주민들이었다. 주민간, 지역간에 서로 손가락질하는 세태를 만들어냈다. 침전된 앙금이 가시지 않아 지금도 등 돌리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실추된 지역의 이미지는 또 어떻고.

 

행정구역 개편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자치단체장의 자리와 맞물려 있고 인사· 예산정책과 교육환경의 변화를 몰고 오게 된다. 지역 유지들, 이른바 기득권 세력의 재편도 예상된다.

 

때문에 기득권 세력의 전방위적 밥그릇 지키기가 통합논의의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라고 보면 틀림 없을 것이다. 그 밥그릇 지키기가 머리띠와 어깨띠로 나타나고 찬-반 대립의 정치활동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오는 10월말까지는 주민들이 이전투구의 장으로 내몰릴 개연성이 크다. 액션의 주인공은 주민들이지만 연출은 대개 정치권 몫이다. 머리띠를 두른 주민들은 자칫 홍위병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찬-반 세력 모두 마찬가지이다.

 

마침내 시민단체가 이런 위험성을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는 "통합논의가 주민들의 진정한 의견이 무시된 채 진행되고 있다"며 "정치권과 일부 사회단체의 여론몰이식 통합논의는 오히려 지역사회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민들을 앞세워 충돌시키는 통합 찬-반논의는 유치한 수단이다. 그 폐해도 너무 크다. 통합이 되던지, 그렇지 않던지 상처는 깊게 패이고 방폐장 사태 처럼 지역간 갈등과 주민간 반목만 남을 수도 있다. 당시 불을 질렀던 정치인들은 뒤로 쏙 빠지고 주민들만 이전투구의 장으로 내몰린 것처럼.

 

행정구역 개편 만큼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벤트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해당 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침묵하고 있다. 주민들은 머리띠를 매고 충돌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통합을 해야 한다는 건지, 말아야 한다는 건지 입장 표명이 없다.

 

끼어들어 득 될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비겁한 정치인이고, 지역의 현안에 무관심하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이라면 주민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생산적인 통합논의가 될 수 있도록 향도 역할을 해야 한다.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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