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사범대학을 나왔다. 장차 좋은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 잘 가르치고 주위로 부터도 신망받는 젊은이가 되기 바랬다. 둘째 아이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하면 어디든 쉽게 일자리를 찾아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수월하게 꿰리라 기대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보통가정의 평균 소망을 크게 벗어난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결과는? 그리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에 차는것도 아니다.
한 때 사범대를 졸업하면 곧바로 교직 발령을 받은 때가 있었다. 꿈같은 얘기다. 지금은 교사 자격증을 받아도 선생님이 되려면 고시보다 어렵다는 임용고사가 턱 기다리고 있다. 이 벽을 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고시방에 틀어박혀 몇년씩 문제집과 씨름하는 예비교사들이 다발로 있다. 그렇다고 사립학교에라도 직행하려면 이번에는 연줄·빽줄에 뭉터기 돈이 필요하다. 기부금 명목으로 최소 5천만원 이상은 재단에 바쳐야 한다는건 알려진 비밀이다. 그러니 사범대 졸업생이 정상적으로 교사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려운게 현실이다. 큰 아이는 임용고사 덫에 걸려있긴 해도 고교 기간제 교사도 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체육강사 자리라도 꿰차고 있으니 그런대로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자위하고 있긴 하다.
몇년전 대학 졸업후 단 돈 5만원을 손에 쥐고 상경했던 작은 아이는 어떤가? 지금 제법 탄탄한 건설사의 대리직을 맡고 있다. 학창시절 아이콘답게 활동적이고 능력도 인정받아 작은 아파트 한 채 마련하고 결혼해서 계집아이도 하나 뒀다. 그 어렵다는 취업전선을 단독돌파한 무용담이 아비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 준다.
추석 연휴를 맞아 작은 아이가 내려 왔다. 귀성길 고생담이며 직장 분위기, 가정 잡사로 한창 얘기가 무르익을 즈음 아직 미혼인 큰 아이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아비의 장가들기 성화를 방어 하는데 동생 식구들과의 동석은 부담스러울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모 모시고 살며 말수가 적어 졌지만 속이 꽉 찬 장남이다. 나중에 두 아이는 집 앞 대포집에서 따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다고 한다. 연로해 가는 부모님 모시기 걱정, 직장생활의 고달픔,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 세상사 등 30대 젊은이들의 일상적 화두가 술잔속에 녹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연휴 3일, 집안에는 두살 배기 손녀이 재롱속에 웃음꽃이 활짝피었다. 마치 한가위 보름달이 조상의 은덕을 한묶음 쏟아 붓듯 화기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그러나 연휴 첫날밤, 아비는 술에 곪아 떨어져 잠든 작은 아이 보다는 밤새 불이 켜지지 않는 큰 아이 방을 보면서 아린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큰 아이는 그날밤 끝내 외박을 한 것이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에게 두통을 안겨 준다. 그러나 성장해서 청년이 되면 이번에는 심통(心痛)을 안겨 준다'.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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