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인년(庚寅年)은 호랑이의 해다. 호랑이는 우리 민족에게 두 얼굴을 가졌다. 하나는 현실세계의 호랑이요, 또 하나는 상상속의 호랑이다.
현실세계의 호랑이는 무서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다. 실제 호랑이는 날래고 힘이 센 위험한 맹수로, 사람을 많이 해쳤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호환(虎患)관련 기록이 끊이지 않는다.
반면 상상속의 호랑이는 신령스럽거나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각종 민화에서 산신과 함께 등장하거나 담뱃대를 문 호랑이 그림 등이 그것이다. 현실세계의 두려움을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세계나 익살로 승화시킨 것이다.
각설하고, 풍수지리에서는 우리나라 지형을 흔히 호랑이에 비유한다. 한반도의 형세가 중원(중국)을 향해 포효하는 한 마리 커다란 호랑이 모습이라는 것이다. 백두산이 호랑이의 머리이고 장백정간은 쳐들은 앞다리, 평안도는 또 다른 앞다리다. 백두대간은 호랑이의 척추이고 동해안의 호미곶이 호랑이의 꼬리에 해당한다. 그렇게 보면 호남과 충청, 영남 일부는 호랑이의 복부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덕유-지리산권은 척추를 떠받치는 끝부분이요, 오장육부를 감싸는 곳이다. 남한의 지붕이요, 국가의 정원(garden)인 이곳을 우리는 너무 소홀히 대접해 온 감이 없지 않다.
이와 관련, 지난 달 무주에서 '광역경제권 발전정책과 덕유-지리산권 연계 개발전략'세미나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한국공공정책연구원이 주최한 이날 세미나에서 덕유-지리산권을 정부의 초광역개발권중 내륙특화벨트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이후 우리 국토를 5+2 광역경제권과 163개 시군 단위의 기초생활권으로 나눠 육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동·서·남해안권과 접경지역 등 4개 벨트를 대외개방형 초광역권으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그리고 4개 벨트를 종횡으로 연계하는 내륙특화벨트 선정을 과제로 남겨두었다. 내륙벨트는 지난해 10월 자치단체간 협의를 거쳐 5개의 공동개발구상안이 제출되었고 정부는 올 3월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것이 덕유-지리산권이다. 현재 덕유-지리산권은 강원 충북 충남 대전 전북이 공동 추진하는 내륙첨단산업벨트나, 대구 경북 전북이 추진하는 동서연계내륙녹색벨트에서 제외된 상태다. 또한 강원 충북 경북이 추진하는 백두대간벨트에도 속하지 않는다. 결국 덕유-지리산권은 특성상 백두대간벨트에 들어가든지, 아니면 가야산권과 함께 독자권역을 설정해야 할 처지다.
덕유산권은 전북 충북 경북 경남 등 4개도 6개 시군에, 지리산권은 전북 전남 경남 등 3개도 7개 시군에 걸쳐 있다. 이들 지역은 남한내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되고 소외된 지역으로 주민들의 소득 또한 가장 낮다.
그러나 원시림을 비롯해 자연환경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셈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종착역으로 역사와 문화,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최근 역사만 보더라도 일제의 수탈과 남북대결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등이 그것을 증거한다.
이곳 주민들의 소득창출을 지원하고 고속도로 철도 등 접근성을 높인다면 저탄소 녹색성장의 거점으로서 이만한 적지기 있을까.
백호(白虎)의 해에, 한반도 지도를 펴놓고 해보는 생각이다.
/조상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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