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엄중한 것이고 그것을 다루는 법관은 어딘가 위압적이고 근엄한 상대라는데 일반인들의 보편적 정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판, 또는 판사, 법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딱딱하게 굳은 두려운 이미지를 머릿속에 담기 마련이다. 법의 집행이나 운용을 두고도 세속적인 평가는 여러 갈래다.
'법은 만인앞에 평등하다'는 일상적 진리는 굴절돼 보이고 '법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냉혹함만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돈이 있으면 (有錢) 무죄요 돈이 없으면(無錢) 유죄'라는 냉소적인 시각은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물신(物神)풍조의 부정적 단면중 하나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와 '오직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심판한'법관의 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 일이다. 한 소녀가장이 임대료를 내지 못해 살던 아파트를 비워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명도소송을 담당한 판사는 판결을 내리는데 주저했다. 고심끝에 그는 원고측 대리인을 판사실로 불렀다. "내가 판결해 나이 어린 소녀가장을 집에서 쫓겨나게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내가 체납금을 낼테니 소송을 취하하라"고 설득했다 한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이웃 주민들의 도움으로 소녀가장은 곤경을 면할 수 있게 됐고 물론 명도소송은 취하됐다. 이런 사실은 원고측 소송 대리인이 대법원 홈페이지에 사연을 올려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냉철한 법리(法理)가 지배하는 법원에서 이런 인간적 감동을 주는 판사를 만나다는 것은 황무지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을 보는 것 같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소녀가장을 도운 판사의 이야기는 법에도 눈물이 있음을 보여준 감동의 스토리이다. 반면 작금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에 대한 무죄판결은 국민의 법 감정에 혼란을 주고 법리의 냉혹함에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다. 본인도 이미 국회의사당에서의 부적절한 처신을 사과한 마당이다. 검찰이 이럴 경우 폭행이나 재물손괴 업무방해 행위를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느냐고 강력히 항의하는게 당연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대로 법과 양심에 따라 내린 법관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는 법정신도 당연히 옳다. 오히려 판사의 정치적 성향을 들먹이며 사법부 불신사태 운운하는 보수 언론의 시각이 그릇된게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 않은가. 형사소송법은 3심제다. 1심 판결에 불목하면 항소하면 된다. 그리고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을 받으면 비로소 유무죄는 결판난다. 그러 절차를 무시한채 국민의 법 감정을 교묘히 부추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하다. 법관의 양심을 측정할 장치는 세상에 없다. 오로지 신(神)과 본인만의 영역이다. '눈물이 있는 법'과 '양심이 살아있는 판결'만이 세상을 공정하게 떠받치는 기둥이다.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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