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군단위 학교 교감이 근무평정을 앞두고 "잘 좀 봐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지역교육장 한테 돈을 놓고 갔다. 그런데 찾아가라는 연락이 왔다. 동료들과 상의했더니 "액수가 적다는 뜻"이라는 풀이가 나왔다. 얼마를 더 보태 교육장을 찾아가 다시 건넸다. 그 뒤 아무 말이 없었다. 이 교감은 근평에서 '수'를 받았다. 당시 교육장은 지금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당시 조언했던 동료가 털어놓은 이야기이다.
4지(知)라는 게 있다. 중국 형주 지방의 자사(刺史)라는 직책에 앉아있던 양진이라는 사람이 왕밀을 승진시켜 주었는데, 왕밀이 승진댓가로 밤중에 황금 열근을 품고 가 바치며 "밤이 깊어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했다. 그러자 양진이 말하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느냐"고 일갈하자 부끄러워 물러갔다. 이 고사에서 비롯된 게 4지(知)다. 은밀히 건네지는 뇌물이지만 비밀은 없다. 이런 무서운 이치가 있는데도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교육계 비리가 도마에 올라 있다. 근평과 관련한 이런 비리는 새발의 피다. 교감 교장 승진인사, 공모제 교장, 장학사 선발, 교육장 인사, 물 좋은 지역 전보인사, 방과후 학교 업체선정, 학교 공사 등이 비리 사각지대다. 최근의 서울시교육청 비리사례는 이 모든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리가 서울지역의 일로만 치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사들의 판단이 이를 반증한다. 전교조가 지난 9·10일 이틀간 교사 598명을 대상으로 비리 정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장학사시험 등 승진비리가 64.1%로 가장 높게 나왔다. 시설공사 및 기자재 납품비리 61%, 근평 관련 57% 순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전 교육문제를 직접 챙기겠다고 했지만 이미 올 상반기 수사의 초점을 '교육 비리'에 맞추겠다고 선언한 게 검찰이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신년사에서 "사정의 사각지대에 가려 있던 '숨은 비리'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밝혔는데 이 '숨은 비리'가 바로 교육비리다.
정도의 차이만 있지 행정과 경찰도 '숨은 비리'는 있다. 임실에서는 사무관 승진 댓가로 2천만원을 주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전부다 그런 건 아니지만 총경 승진 5천만원 설도 있다. 부하 직원 승진시켜 주는 댓가로 돈 받아먹는 풍토는 꼭 없어져야 한다.
방법이 하나 있긴 있다. 승진 대상자와 인사책임 라인에 있는 공직자들의 계좌 추적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기간은 인사 전후 한달 정도로 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래도 탈 없이 돈 먹는 방법을 창안해 낸다면 아이디어 발굴상을 주어야 할 일이다.
전북교육청이 '교육 부조리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강도 높은 처방도 있고 전시성 대책도 있다. '숨은 비리'는 대책이 없어서 발생하는 게 아니다. 내부고발과 투명성이 요체다. 모든 걸 공개해 햇볕을 쪼이면 곰팡이가 슬지않는 이치나 마찬가지다.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정책과 구호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책선거야 맞는 말이지만 시민들 한테 그 많은 공약들이 귀에 들어올리 만무하다. 그 보다는 상징성 짙은 간결한 슬로건 하나면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돈 안받겠습니다"
어깨띠에 이 구호를 새기고 곳곳을 누빈다면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다. 금세 뜰 것도 같다. 부하 직원 한테 돈 먹고 인사해 주는 것 만큼 찌질하고 부도덕한 건 없다.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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