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작곡가 박춘석씨가 세상을 떠났다. 트로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요계 거목의 타계 소식은 그의 곡을 들으며 자란 중년 이상의 세대에겐 생각이 잠시나마 과거로 되돌아갔을 것 같다. 시대를 넘어 사상 개인 최다인 2,700여곡을 작곡해 국내 대중가요의 새 지평을 열어온 업적을 볼 때 우리사회의 큰 상실이다.
이런 대중가요는 꺾고 휘어지는 창법에 부르는 이들의 추억과 함께 한다. 그 궁핍하던 시절 어렵게 살아가던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트로트 가락은 쉽게 잊을 수는 없다. 애환이라고 부르는 삶의 여러 기억들, 노래는 그 갈피갈피마다에서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을 되살린다. 당대인들의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을 담아냄으로써 뒷날 그때를 반추할 수 있게 하는 대중가요. 그래서 한 시대를 써내려간 '시대의 증언자' 반열에 자리매김 될 수 있었다.
물론 대중가요에는 찬반이 있다. 비판자들은 대중음악은 바람과 같다고 한다. 한때의 열병처럼 그저 스쳐 지나간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인 정서를 반영한 노래는 살아남고 그러지 못하면 사라지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허나 가요는 정치· 사회적 상황과 관계없는 개인사에서도 종종 중요한 소도구 역할을 한다. 가요를 들으면 그 노래가 나왔을 무렵의 사회나 자신의 처했던 개인적 사정이 불현듯 떠오르게 마련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서, 사라호 태풍이 그해 추석까지 쓸어갔던 195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 50대는 아직 기억이 생생하다. 교련반대 데모와 위수령 발동, 유신헌법 공포와 7.4남북공동성명, 긴급조치 1~9호 발동, 장발족 일제 단속, 부마사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과 12.12 쿠데타 등등.
보릿고개 마지막 세대이자 주산의 마지막 세대이며, '컴퓨터 문맹 1세대'인 50대는 대변혁의 물살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지나 않을지 모른다. 감당하기 힘든 격동의 시절 대중가요가 없었더라면 그 세월을 헤쳐 나오지 못했을지 모르고, 지금에 와서도 영롱한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 노래의 굽이굽이마다 부조리한 시대에 항거했던 함성과 번뇌, 벗들에 대한 사랑 따위가 고스란히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산간오지 초등학교를 다녔던 나는 동요대신 대중가요를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즐겨 불러댔다. 풍금이 없어 음악시간이면 선생님 부름 받고 '흘러간 노래'를 부르는 철없던 소년이었다. 고백하건대 당시 나의 '노래 선생님'은 학교가 아닌 직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들을 수 있었던 라디오였다. 집 마루구석에 걸린 큼지막한 밧데리를 묶어 쓰던 트랜지스터. 그래선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랫말로 엮어진 요즘 댄스뮤직 장르는 영 익숙하지 않다.
그 시절 꿀꿀이죽, 그리고 옥수수죽 급식이 같은 기억 속에서 즉각 튀어나온다. 잊을래야 그리 잊혀지지도 않은 편린들, 께복젱이 시절 40년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또렷하다. 그런 걸 감안하면 정부의 교육정책은 특히 무척 중요하다. 올 6월 지방선거에서 학교 무상급식문제가 핵심이슈다. 급식문제가 정치적 입장이나 이념적 갈등으로 이리저리 내둘러지고 있다. 지금 어린 학생들이 훗날 50대에 무상급식을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 앞설 뿐이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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