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판에 싯누런 붉덩물이 흘렀다. 수마로 할퀸 자국이 있지만 깨끗하고 맑은 느낌이 있어 상쾌하기도 하다. 감상적 이야기로 꺼내자면 이번 지방선거는 흥행에선 성공한 셈이다. 그 효과도 국정운영 방식과 죽기 살기로 싸우는 정치공학에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 국민이 엄준한 경고음을 보낸 것으로 보여진다.
돌이켜보면 이번 선거를 보는 시선은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이러니했다. 세종시 논란으로 정작 분권과 자치를 다루는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정치적 무관심이 확산돼 온 같아 안타깝다는 분위기도 역력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호랑이'같은 무서운 민심이었다. 투표율은 우뚝 올라섰고, 민심은 집권여당의 독선·독주로 비쳐지는 국정운영방식에 변화의 필요성을 읽어냈다. 문제는 지방자치가 제법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방선거가 갖는 의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 지역주의 선거와 정당의 전략에 문제가 있다. 전북의 경우 민주당 공천이 당선을 보장하는 지역주의 선거가 주민의 삶에 대한 생산적 경쟁을 원천적으로 제한했다. 정당공천제의 도입은 지역일꾼을 뽑아야 할 지방선거가 중앙정당의 대리전으로 왜곡되어 후보자의 정책과 공약이 아닌 정당을 보고 선택하는 모습이 재연됐다. 시민단체들과 선관위, 언론 등에서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을 전개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했다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둘째, 대선과 총선이 정기적으로 교차하지 않는 정치일정상 지방선거는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선거에선 으레 국정안정론과 정권심판론이 기본 대결구도를 이루며 인물과 정책은 이 구도에 구속을 받게 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다만 천안함 사건의 초대형 이슈 앞에 지방자치 공약들은 실종됐다. 전북만 하더라도 새만금사업과, 쌀 문제, 기업유치 등 지역주민의 '삶의 정치(life politics)'는 부차적 이슈로 밀려나 있었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비전과 정책대안을 비교하고 선택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정치적 득실로 계산되는 현실 앞에서 지역의 정책적 이슈들에 대한 충분한 토론 및 검토 없이 치러졌다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주민과 유리되는 선거가 치러지는 한 따로 할 이유가 있는가. 물론 지방선거라고 해서 지방선거와 자치만의 본래 의미를 돌아보는 단편적인 주장을 강조하는 게 아니다. 중앙정치와 연관된 일종의 균형감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요즘 전주 삼천둔치에 가면 음악벤치에 빨간 우체통이 있다. 중년 연주인 모임 '강한 라이브 친구들'(http://cafe.daum.net/klbp)이 3년째 주말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지만, 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소통기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소통의 문제가 남아 있다.
선거는 소통의 중심도구이다. 바람직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당선자와 주민간의 생산적 소통이 일차적 조건이다. 재선에 성공한 김완주 지사가 소통을 강조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세차에 '우체통'을 싣고 다녔던 것은 그러한 의미일터다. 유권자들의 눈은 점점 높아지고 더 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제 출발은 소통이다. 당선자는 이 변화의 새 물결 위에 배를 띄워야 한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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