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주 지사는 작년 7월 이명박 대통령한테 '큰 절 감사편지'를 보냈다가 비난을 샀다. 민주당한테는 당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도민들한테는 비굴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가난한 집 가장으로서 정부 지원에 고맙다는 뜻을 순수하게 표시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 당선 인터뷰에서도 "전북발전을 위해서라면 한나라당과 공조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은 은행에서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보험회사에서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겠다고 나서는 시대다. 액체처럼 뒤섞이는 것은 조직이나 비즈니스 영역뿐만이 아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도민 이익과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색깔이 다르더라도 공조(共助)할 수 있어야 한다.
전북은 지금 새만금 인프라 구축, 토지주택공사(LH) 본사 유치, 새만금개발청 신설, 익산 왕궁축산단지 이전, 신재생에너지·식품클러스터·무주 태권도공원 조성 등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다. 의욕만 갖고 될 일도 아니다. 한나라당 정권에서 민주당 단체장의 한계는 생각보다 더 클 수 있다. 중앙정부와의 소통과 교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사·예산정책 모두가 마찬가지다.
이러한 때에 정운천 전 장관이 '쌍발통시대를 열겠다'고 나섰다. 6.2 지방선거에서 얻은 득표율 18.2%는 전북도와 중앙정부, 여당과 야당 간 쌍발통 시대를 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각계 전문가로 '추진위원회'를 구성, LH 일괄 유치 등 자신의 공약을 이행하겠다고 천명했다. 낙선했을 망정 지역 일에 힘을 보태겠다니 반길 일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 이젠 김완주 지사가 화답해야 한다. 서로 다른 공약을 했더라도 지역의 이익에 부합된다면 손을 맞잡고 나아가야 한다. 이를테면 LH 일괄이전의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본사가 분산되지 않고 전북에 일괄 이전해 온다면 조직의 효율성이나 전북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정 전 장관이 그렇게 하겠다면 믿고 지원해야 할 일이지 배타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자신의 저서 '액체 근대'(Liqid Modernity)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액체 근대', 즉 '액체 사회'라고 규정했다. 세상은 경계가 없이 액체처럼 이리저리 뒤섞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한 콘크리트 처럼 굳어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면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다 사멸되는 종(種)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낙후 전북의 키를 쥔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새겨야 할 키워드다.
당선자와 낙선자, 야당과 여당 소속의 정치인이 지역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중앙 부처를 누비며 일하는 모습, 상상만 해도 아름답다. 이것이 공조다. 그리고 변혁적 리더십이다.
김완주 지사는 정운천 전 장관을 내세워 지역의 현안이 관철됐을 때 그 공(功)이 정 전 장관한테 돌아가는 걸 염려하는 건 아닐까? 그런 쪼잔한 김 지사는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중앙 부처를 함께 방문하면서 현안을 타개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은 둘의 몫이지 어느 한사람의 것은 아니다. '큰 절 감사편지'를 쓸 필요도 없어진다.
이런 공조체제가 유지된다면 이명박 대통령과 중앙정부도 전북의 현안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고착된 지역구도를 깨고 전북발전의 기틀이 마련되는 엄청난 계기를 몰고올 지도 모른다. 승자인 김 지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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