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빚을 지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전북의 여러 사업들이 치명상을 입고 있다. 아직 착수되지 않은 사업들은 사그리 보류되거나 백지화될 전망이고 진행중인 사업도 계속성을 담보할 수가 없다.
법원 검찰이 들어설 전주 만성지구와 사유권을 침해 받고 있는 전주 효천지구, 부안 변산관광개발사업이 그런 사업들이다. 군산 신 역세권과 완주 삼봉지구는 보상만 해놓고 내부개발은 언제 이뤄질 지 종잡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각 시군에 이런 유형의 사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신시가지나 역세권, 주택 및 택지, 산업단지 등의 지역개발사업은 돈만 많다면 자치단체가 추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 지역의 자치단체들은 그럴만한 여력이 없다. 돈도 없고 인적 자원도 별 볼일 없는 전북이 지역개발의 물꼬를 트기 위해 기댈 곳은 LH가 거의 유일하다.
LH는 사업성이 있어야 사업을 하는 공기업이지만 사업성을 커버할 정도로 당위성이 있다면 사업을 검토할 수도 있고 지역의 열정이 동인(動因)이 돼 사업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전주 신역 앞 도로개설도 그런 사례다. 1980년 전국체전을 앞두고 전주 신역 앞 도로를 확장 개설할 필요성이 커졌다. 궁리 끝에 전주시장이 토지공사 사장을 여러 차례 찾아가 동전주 택지개발사업을 관철시켰다. 전북 처음인 이곳 택지개발은 이런 연유가 동기가 됐다.
수원시 사례도 있다. 수원의 낙후된 서부생활권 그리고 지역내 균형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 호매실 택지개발이었다. 이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당시 수원시장은 국장 2명을 교대로 토지공사 본사에 상주시키면서 결심을 받을 때까지 내려오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일화다. 이 사업은 4년전 실시계획 승인을 받아 2012년 말 완공 예정으로 추진중이다. 94만3000평 규모에 2조5600억원이 투자되고 있다.
단체장한테 악바리 근성이 있다면 주민 세금 안들이고 얼마든지 지역개발을 앞당길 수 있다. 한데, 지금 우리지역 단체장들한테는 이런 악바리 근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무슨 거물인 것처럼 아쉬운 소릴 하지 않으려 하고 공기업 정도는 방문하려고도 않는다. 그러니 지역은 낙후되고 LH처럼 위기상황이 오면 벼락을 맞을 수 밖에 없다.
전주 만성지구나 효천지구, 변산 관광개발사업은 해당 지역 단체장들이 악바리 근성만 있었다면 지금쯤 착수될 수도 있었던 사업이다. 세월아 내월아 허송세월한 뒤 이제와서 LH 탓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단체장의 판단 잘못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다. '명품'을 장담할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잘 나갔던 전주 혁신도시가 오늘날 지리멸렬한 꼴을 보이고 있는 건 단체장의 잘못된 리더십 탓이 크다. 공공기관 배치장소를 놓고 완주와 전주가 싸웠지만 전북도는 자치단체 눈치를 보면서 조정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1년이나 늦어져 버렸다. 선도적 혁신도시에 주어진 수십억원에 이르는 인센티브 자금도 김천과 제주에 돌아갔다.
단체장들은 지금 무얼 고민하는가. 논공행상? 전시행정 하면서 행사장이나 찾는 단체장은 필요 없다. 주민 삶의 질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악바리처럼 일할 단체장이 필요하다.
'악바리 악돌이 악쓴다'는 말은 남에게 굴하지 않고 신념을 끈질기게 관철시킨다는 속담인데 우리 전북한테는 악쓸 악돌이가 많아야 한다.
/이경재(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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