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지사업에 진출한 한국합판은 안종렬 공장장을 중심으로 하는 현장 기술진에 대해 깊은 신임과 기대를 갖고 있었다.
고려제지가 힘 없이 무너진 것은 기술 부족이나 불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김원전 사장의 무리한 사업 확장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안 공장장을 비롯한 핵심간부들이 종업원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었을 뿐 아니라 상호 이해와 협조를 통해 모든 과제를 차질없이 수행함으로써 인화를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는 한국합판으로서는 여간 믿음직스러웠다.
특히 자체 기술진에 의해 제3호 초지기가 조립 완공됐고 이어 국내 최초로 도입된 최신설비인 N-1호 초지기도 무난히 준공시킴으로써 안 공장장에 대한 신망은 더욱 두터웠다.
그러나 그는 잇따른 공장 화재로 인해 실로 어처구니 없이 세대제지를 떠나게 됐다.
세대제지 군산공장은 1980년 11월 불의의 화재가 발생, 1억6000여만원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은 화재를 낸 용접공이 실화혐의로 입건 되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1982년 1월 또 다시 현장 종업원들의 실수로 화재가 발생해 34억원의 피해가 나면서 기술진 개편이란 후폭풍을 맞았다.
회사측에서는 잇따른 화재가 종업원들의 근무기강 해이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우선 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1982년 3월 기술담당 상무이사인 안종렬씨를 공장장직에서 해임하고 한국합판 상무이사로 전보발령하는 한편 관리담당 상무이사도 서울사무소 판매담당 상무이사로 좌천시켰다.
하지만 이 인사에 대해 종업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이번 화재가 관리담당 상무이사의 소관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기술담당 상무이사인 안 공장장까지 문책한 것은 회사측이 현장 기술자들의 권익을 지나치게 내세우던 안 공장장을 쫓아내기 위해 화제를 빌미로 의도적인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또 이듬해인 1983년 8월에는 고려제지 출신인 생산부장마저 공장을 그만 두면서 세대제지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주역들이 모두 세대제지를 떠나면서 기술직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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