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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순수한 기도

유강희 시인, '일하는 아이들' 서평

 

첫 동시집을 내게 되면서 동시에 대한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그 와중에 읽은 시집이 바로 '일하는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시집이다. 이 시집은 교사이자, 우리말 연구가이며, 아동문학가인 이오덕이 생전에 엮은 시집이다. 자신이 몸 담았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쓴 시를 모은 것인데, 여기에는 글뿐만이 아니라 어린이 그림도 함께 실려 있어서 읽는 재미가 한층 쏠쏠하다.

 

또 거기에 덧붙여 사투리에 대한 풀이가 곁들여 있고, 간혹 아이들의 집안 사정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있어 시를 이해하고 감상하는데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그런 것들조차 거추장스러울 만큼 이 어린이 시집은 너무 맑고 투명하고 아프다. 손끝이 시리도록 맑은 도랑물 같다. 어떤 시인은 우리나라 시인을 둘로 나눈다면,'일하는 아이들'을 읽어본 시인과 그렇지 않은 시인으로 나눌 수 있겠다고까지 말한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씌여진 연대는 1950년부터 1970년대까지 걸쳐 있으나, 1960년대의 어린이 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까 우리 60년대 가난한 농촌 아이들의 생활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셈이다. 이 책 앞표지에도 '농촌 어린이 시집'이라고 적혀 있다. 책 제목 아래 오윤의 판화 '고무신을 신고 지게를 짊어진 가족'의 모습이 그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줌이 누고 싶어서 / 변소에 갔더니 / 해바라기가 /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 나는 안 비에 줬다.'('내 자지'전문)

 

이 시는 당시 안동 대곡분교 3학년이던 이재흠 군이 쓴 시이다. 다음의 시 역시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인 백석현 군이 쓴 시이다.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 뒷다리 두 개를 펴고 발발 떨었다 /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 나는 죄 될까 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청개구리').

 

이 두 시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동심이 무엇인지 확연히 보여준다. 이 동심이야말로 하늘에 닿아 있는 마음일 것이다.

 

이 시집 속에는 또 고추밭 매기, 담배 심기, 인동꽃 따기, 나물 씻기, 조밭 매기, 콩밭 매기, 비료 지기 등 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순박하고 꾸밈없이 그려져 있다. 이밖에도 아기를 업고 다니다가 방바닥에 내려놓았을 때의 느낌을 '(…) 그래서 나는 아기를 / 방에 재워놓고 나니까 / 등때기가 없는 것 같다.' ('아기 업기'일부) 고 하거나, 공부를 못해서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나는 공부를 못 해서 걱정이다 / 집에 가마 맞기마 한다 / 내 속에는 죽는 생각만 난다.' ('공부를 못 해서'전문)고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다. 이뿐만 아니라 때로는 빨래 거품에서 무지개를 건져 올리고 구정물 속에서 별을 발견하기도 한다.

 

요즘 여기저기 난무하고 있는 성적 비관, 왕따, 자살, 학원 폭력, 스펙, 이런 말들 속에서 이 어린이 시집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우리 어른들에게 많은 것을 묻는다. '참되고 아름다운 시의 세계를 지닌 아이들'을 그 지옥의 세계로 내몰고 간 어른들의 책임을 이 시집은 조용히 묻고 있다.

 

'청개구리'란 시를 쓴 백석현 군도 성장한 뒤 부산 지역으로 떠났다가 좌절 끝에 결국 자살하고 만다. 깊은 산속에 들어가 버섯을 따 생긴 돈으로 한문 배우던 선생님에게 소주를 사가지고 가던 아이였다. 그와 관련된 글을 읽고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이 시집의 초판 머리말에서 이오덕은 '순진한 어린이의 말과 행동, 느낌과 생각은 그것이 그대로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어린이는 시인임을 나는 믿는다.'라고 적고 있다. 나는 고침판'일하는 아이들'(2002)을 다시 읽으며 내가 어른인 게 한없이 부끄럽다.

 

 

△ 유강희 시인은 1968년 완주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어머니의 겨울'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불태운 시집','오리막', 동시집'오리발에 불났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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