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대한 이해가 선행되거나 같이 읽어야 『그리스인 조르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말한다. 온전한 이해도 좋지만, 좀 부족한 이해, 오독의 즐거움도 없진 않을 것이다. 또 몇 구절만으로도 그 책이 가지는 향취에 흠뻑 젖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가 떠올랐다. 주인공은 처형대에서 죽음을 앞두고 목청껏 외친다. "프리덤!" 전혀 다른 장르, 다른 내용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 조르바』와 〈『브레이브 하트』를 연결시켜준 것은 바로 이 '자유'라는 단어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게 숨을 쉰다는 것만큼이나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 '자유'! 미국의 독립운동가 패트릭 핸리는 외친다. "하느님, 우리에게 자유를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죽음의 잔을 들게 하소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주소서." 자유를 부르짖는 맥락은 다르지만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가치로운 덕목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서른다섯의 젊은 서술자, 이 소설의 '나'는 부처의 가르침을 탐구한다. 그가 고용한 '조르바'는 가족도 명예도 세속적인 부도 아무것도 없다. 예순 살이 넘은 몸밖엔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지식인인 서술자 '나'를 흠뻑 매료시킨다. 조르바의 모든 말과 행동 속에서 '나'가 탐구하고 있는 붓다를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붓다가 이룬 열반의 세계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걸림이 없는 세계이다. 육체와 영혼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무장무애의 자유의 경지 아니겠는가?
조르바는 오입쟁이이며 여자를 성욕을 충족시킬 대상으로만 바라본다는 비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르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 이 말은 가정과 사회의 온갖 편견과 제도와 종교의 고정관념 속에 묶여있는 여자가 아닌, 속박되지 않은 본능과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의 등가물, 인간으로서 여자를 보고자 하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었다.
조르바는 현재를 산다. 그가 과거에 오입쟁이였건 이국의 전장에 날뛰던 용병이었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는 현재의 시간 속으로 계속하여 다시 태어난다. 조르바는 과거에 살지 않고 현재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더구나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히지도 않고 미래 따위는 믿지 않는다. 문득 금강경의 한 구절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 떠오른다.
어디에고 얽매지지 않는 대자유인, 궁극의 자유, 열반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술자 '나'가 추구하는 바가 붓다의 세계라면 나의 해석도 크게 오독은 아닐 것 같다.
"「두목 저게 무엇이오?」그가 놀라도 크게 놀라면서 물었다. 「...... 두목 저 건너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당신은 저 기적을 무엇이라 부르지요? 바다? 바다? 꽃으로 된 초록빛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것은? 대지라고 그러오?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두목, 내 맹세코 말하지만, 내가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오.」" 조르바는 미쳤다. 만날 보는 바다와 대지를 두고 맹세코 처음 본단다. 60을 넘긴 조르바는 늘 아기의 눈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나'는 조르바로 하여 자유를 발견한다. 조르바가 광산의 석탄을 효과적으로 나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케이블 고가선을 설치하려다가 그게 왕창 무너져 버렸을 때, 필생의 사업일 수도 있는 사업의 그 완전한 실패 앞에서 '나'가 한 말을 상기한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고 말 한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조르바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자유 없이는 살 수 없다.
지난여름 니코스카잔차키스의 혼이 서려있을 지중해를 따라 여행하면서 틈틈이 이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정치적인 의미와는 다른, 종교적인 의미와는 또 다른, 그러나 다르면서 같은, 내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자유와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복효근 시인은 1991년'시와시학'으로 등단했다. 현재 남원 금지중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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