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길목이다. 몸이 가을바람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구름에 달 가듯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가을바람이 나보다 먼저 길을 나선다. 가을을 핑계 삼아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하고 싶다. 이런 나의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갈 곳을 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행가 가사처럼 '정처 없는 구름 나그네'와 같이 길을 나서기는 쉽지 않다.
요즘 나의 여행에 동반하는 책은『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그리스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 tzakis)의 책들이다. 그가 여행을 하면서 쓴 책들은 나의 여행에 영혼의 깊이를 더해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그의 책이 나의 여행 가방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나는 그의 책들 중에서 『영혼의 자서전 1, 2』(안정효 역, 열린책들)를 들고 여행에 나서곤 한다.
아마도 나도 그처럼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 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고운체로 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208쪽).
크레타 섬 출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목놓아 동경한 첫 번째 여행지는 그리스 본토의 아테네였다. 그가 그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이유는 아테네에서 만날 "그리스의 공기는 정말로 신성하고, 자유는 틀림없이 여기서 탄생했으리라"(631쪽)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 섬 출신으로서 뭍에 대한 불타는 유목의 욕망과, 거기에 성장기 아버지로부터의 심한 매질 당함에서 탈출하고 싶은 해방구를 갈구했을 것이다.
나의 어릴 적 꿈은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호남평야의 끝자락에서 나고 자라면서 집 앞의 모악산에서 미륵산까지 펼쳐져 있는 산맥 너머를 동경하였다. 그 너머는 테라 인코니타, 즉 미지의 세계였고 나의 성장의 장벽이자 희망이었다. 살아온 곳을 박차고 그곳으로의 나감은 나의 삶의 존재 이유가 되었다. 나를 미지의 세계로 나갈 수 없게 만든 장벽은 성장의 콤플렉스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을 주어서 또 다른 세상으로 안내해주기도 했다.
가을로 가는 길목, 지금 나의 오감을 타고 낯선 곳의 풍경들이 몰려와 나를 자극한다. 그래서 카잔차키스처럼 "조급하고 탐욕스럽게 나는 지도를 훑어보았다. 어디로 깔까? 어느 대륙, 어느 바다부터 먼저 볼까? 모든 나라들이 나를 손짓해 불렀다."(209쪽). 그리고 나는 "모든 나라를 보고 즐길 시간을 넉넉히 소유"(209쪽)하고 있다. 지금 나는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나를 바라보게 한다. 삶의 궤적들을 돌아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여행 중 고독함을 통하여 나의 삶에 강한 애정을 발견한다. 아마도 여행이 아름다운 것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일 게다. 오늘도 여행의 욕망을 채우려 돌아올 수 있는 만큼까지 길을 나서고 싶다. 내 몸 안의 역마살을 다스리며 만나는 여행지가 주는 '가혹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맛보고 싶다. 지금 길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삶의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1, 2』를 권하고 싶다.
※이경한 전주교육대학교 교수는 한국지리환경교육학회 편집위원장·전북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전북혁신학교운영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골목에서 마주치다''다문화사회와 다문화교육''일상에서 지리를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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