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을 대표하는 멋 중의 하나가 풍류다. 풍류에서 술이 빠질 수 없다. 전북에는 이강주, 송순주, 과하주, 송죽오곡주 등 전통 명주들이 즐비하다. 명주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를 지켜온 명인들의 숨은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죽력고’가 오늘날 전북의 대표 명주로 각광받는 데는 송명섭 명인(58)이 있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이며, 전북도 무형문화재인 송 명인은 30연년간 전통주를 빚어온 장인이다. 죽력고(竹瀝膏) 빚는 법을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문화’로써 체득한 그는 죽력고가 개인의 것이 아닌 한국의 고유문화라고 강조했다.
-가문에서 언제부터 죽력고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기자님들이 공통적인 질문을 합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했느냐’. 저는 ‘아 이거 언제부터 한 게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전 무형문화재 입니다. 문화란 저 혼자 갖고 있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게 문화입니다.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은 기술이죠. ‘우리 집 대대로 내려왔다’ 이건 기술입니다. 전 인간문화재이기를 바라지, 기술자이고 싶진 않습니다. 문화는 제 것이 아니며, 저라는 매개체는 문화를 후세에 전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 집안에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대에 걸쳐 내려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죽력고와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죽력고는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김치 담그는 것도 문화여서 아는 것이지,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지는 않지 않습니까. 환경에 따른 자연습득입니다. 김치의 경우, 한국인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김치를 담그니 그것을 어떻게 따로 가치를 표시해 놓지 않잖아요? 또 순창 고추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할머니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고추장을 담근 게 아니란 말이지요. 맛이 좋아서 널리 퍼지다 보니 문화적 차원으로서 어떤 게 나온 것이지 모두 자연습득입니다. 그런 길고 깊은 인과관계가 있는 문화를 줄이고 줄여 내 것인 듯 이야기 할 순 없지요. 죽력고는 민족이 다 같이 가졌던 문화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가진 것은 문화적 가치가 없는 기술입니다.”
-예부터 죽력고가 민간에 널리 퍼졌다는 말씀이신데.
“제가 우암 송시열로부터 27대손인데, 송시열 선생이 죽력고를 드시고 ‘진시절미 하다’란 표현을 하셨습니다. 또 전북지역이 배경인 춘향전에도 상차림 중 죽력고가 등장합니다. 노래 가락 중 하나인 ‘의부가’에도 죽력고가 나오고, 정약용 선생도 죽력고를 너무 많이 만들어 대나무가 부족하니 고관대작들이 좀 자제하란 내용을 남기셨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도 죽력고와 관련된 일화가 있고요. 즉, 죽력고는 이미 조선시대에 널리 퍼진 하나의 문화였으며, 정치를 하시는 분도 드셨고, 노랫가락에도 있고, 소설에도 나오고 그랬던 바로 그 술입니다. 지금도 가양주로 죽력고를 빚는 집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전라도에서 특히 죽력고가 유명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재료 확보에 어려움은 없으신지요.
“전라도에 대나무 없는 마을이 거의 없습니다. 지역적으로 대나무가 자라기 좋은 여건입니다. 주변에 있는 대나무를 활용합니다. 가까운 선산에도 대나무 밭이 있고요. 장작은 구매합니다. 가격의 고하를 떠나서 장작이 있어야 술의 발생 자체가 자연스럽습니다. 인위적으로 특정 온도를 맞춰놓으면 그 온도의 맛이 나오는데 장작을 때면 온도의 기폭이 커져 술로 변해 나왔을 때 모양새가 다양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일부러 장작을 땝니다. 참나무의 비중이 많고, 일부 잡목이 들어갑니다.”
-죽력고가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면서 사회적 관심도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일본이나 유럽 쪽은 무형문화재가 사는 곳을 무장경관 2명이 24시간 보호를 해요. 문화를 귀히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문화가 많다보니 귀중한 것인데도 제 피부로 느끼기에 귀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고의성이 없게 ‘홀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가 깊고, 속이 차있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문화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지 않으면, 프랑스 와인이 칠레 와인에 뒤처지는 일이 생기듯 자기 것을 뺏길 수도 있습니다. 분명 각 국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는데 우리는 그게 무엇인가요. 이것은 사회 지도층이 우리 술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더구나 일정 때 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술 자체도 못 빚게 했습니다. 이제 나라를 찾고 독립을 했으면 문화도 독립을 해야하는데 문화는 여지껏 그대로 있습니다. 문화는 아직도 독립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통문화에 대한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이 기성세대보다도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
-죽력고가 고유문화로서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 하나를 꼽으신다면.
“국가에서 전수를 하라고 하는데, 조건이 뭐냐면 ‘전수자가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수자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한 달에 10만원 나오고 있어요. 앞으로는 20만원이 된다는데 그 사람이 그거가지고 어찌 생활을 합니까. 지금 3명째 전수 중입니다. 문화 전수자는 무수히 많아야 합니다. 지정을 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고작 세 사람 갖고 문화가 이뤄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전수자에 한해 그 사람이 적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유지비는 줘야합니다. 이대로는 문화 전달이 아니라 세습밖에 안 됩니다.”
● 죽력고는 전봉준 장군도 마셨다는 술, 조선 3대 명주로 전국 명성
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는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관서감홍로, 전주의 이강고(이강주)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은 최상급의 전통술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이 일본군에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쇠잔해 있을 때, 죽력고를 세 잔 들이키고 기운을 차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서울로 압송됐다는 매천 황현의 기록은 유명하다. 죽력은 청죽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사흘에서 닷새간 불을 지폈을 때 흘러내리는 진액이다.
한방에서는 죽력고를 어린이가 경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사용했고, 생지황·계심·석장포를 넣어 제조하기도 했다. 또 죽력은 옛 한의서에도 간과 심장·위·폐 등의 질환에 작용하는 치료제로서 혈압을 다스리고 중풍 등 혈관계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나온다.
송명섭 명인은 “죽력고를 빚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대나무를 얇게 썰어 항아리에 넣는 것”이라며 “항아리 안에 빈틈없이 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나무를 담은 항아리는 땅에 뭍은 단지 위에 거꾸로 얹히게 된다. 그 뒤 항아리 입구를 물 먹인 한지로 감싸고 황토 진흙으로 전체를 덮은 후, 그 주변에 말린 콩대를 두르고 불을 지핀다. 그러면 항아리 아래에 있는 단지에 3리터 정도의 죽력이 고이게 된다. 항아리를 황토 진흙으로 감싸는 이유는 항아리가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정성을 들여 얻는 죽력에 약재를 넣어 증류해 빚는 술이 바로 죽력고다.
진하고 깊은 맛을 품은 죽력고는 현재 국내 유일한 장인이 옛날 방식 그대로 생산해내고 있다. 심지어 과음을 해도 부작용이 없고, 날이 갈수록 몸이 개운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송명섭 명인은 “술에 약재를 직접 넣지 않고 맛과 향을 간접적으로 우러나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약주로도 알려진 죽력고의 ‘고(膏)’는 최고급 약 소주에 붙이는 명칭”이라고 말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