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최승범 시인에게 듣다
전북의 예술혼(藝術魂)은 어디에서 새어나와 어디로 흘러가는가. 전북 예술의 정체성에 대해 한 단어, 한 문장으로 단언할 이는 없을 듯하다. 예술을 소중히 여기는 예술가의 정신에 각 장르의 시각이 더해져 전북의 예술혼이 완성된다. 본보는 새해를 맞아 전북의 예술혼 찾기에 나섰다. 역사적으로 한국 문화예술의 한복판에 서온 전북 문화예술의 힘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모색하는 기획이다. 문화예술의 현장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을 통해 전북의 예술혼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가장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가장 전북적인 예술혼을 찾는 여정에 나서기 전, 현대시조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고하(古河) 최승범(85) 시인(전북대 명예교수)을 지난 5일 고하문학관에서 마주했다.최승범 선생에게 여행길의 문을 가볍게 열어 주길 청하자 기대할 것 없어라는 대답이 제일 먼저 도착했다. 30초, 1분, 2분. 이따금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문틈으로 몰아치는 바람소리만이 정적에 답했다. 최 선생은 먼지마저 세는 눈빛으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말문을 열었다.전북은 멋과 맛, 풍류가 있는 고장이야. 역사를 훑어볼 때 멋이 있는 고장이고 맛을 챙겨 온 고장, 그리고 풍류의 마음을 잃지 않고 가꿔온 곳이지. 구닥다리 얘기지만 전북의 고로(古老)들에 의해 전해 오는 이야기 중 사불여(四不如)라는 말이 있어.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는 얘기로 남도의 음식 맛이 그만큼 빼어나다는 표현이지.-선생님, 풍류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풍류(風流)는 내가 좋아하는 단어야. 전북의 문화 예술에서 풍류라는 말을 챙기고 싶어. 풍류는 본디 바람의 흐름과도 같은 것으로 벽에 막혀도 막히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지니고 있지. 풍류는 문화 예술의 정신적인 뿌리로 이어져. 일찍이 고운 최치원 선생은 난랑비서(鸞郞碑序)라는 글에서 유교와 불교, 도교를 포용하고 융합하는 풍류도를 고유한 전통으로 제시하고 자연 이치와의 조화를 강조했지. 현묘지도(玄妙之道)라 하여 우리 고유의 사상이면서 사람들을 접화하는 것, 인문 정신의 핵심이기도 해.-최치원 선생이 말한 풍류와 현재의 풍류 의미에는 차이가 있는 듯합니다.세상이 참 많이 달라졌어. 뒤로 내려오면서 이 말에도 속기가 끼어들었고 사전에 따라서는 기루(妓樓), 염사(艶事), 정사(情事)로까지 풀이한 것을 볼 수 있어. 풍류는 혈류의 도로, 속기가 끼어서는 안 되고 우리의 문화 예술은 풍류에 바탕해서 나아가야 해. 청풍명월, 청산녹수와 같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높이 살 수 있는 마음이어야만 풍류를 꽃처럼 피워 낼 수 있는 법이지.-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사상, 풍속들이 많이 사라지고 왜곡된 현실입니다.선비는 글이나 글자를 아는 식자인(識字人)인데 구실을 못하는 사람이 많아. 가까이 알고 있는 분들 가운데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를 들라면 조선왕조 500년의 저자 신봉승 선생을 꼽고 싶어. 주고받은 편지나 격식 모두 본받을 만한 분이지. 풍류가 조선의 선비 정신으로 그 명맥이 일부 이어진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생활 바탕에서 풍류를 챙기고, 역지사지의 자세로 처지를 바꿔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해. 전북 문화 예술은 내세워 자랑할 만한 곳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챙기는 면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봐야 할 시점이야.최승범 선생은 매일 오전과 오후 2차례씩 우체국에 들른다. 자택과 고하문학관으로 배달돼 쌓인 원고나 서적, 편지를 읽고 일일이 나름의 답장을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건강이 여의치 않아 매일매일 전달되는 서적과 편지가 책상에 쌓여 있어 이를 지켜봐야만 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마땅치 않은 것도 있지만 여하튼 봐야 해. 일단 받아 대충 보고 내 나름의 편지를 하지. 젊은 시절부터 늘 원고를 보면 우체국으로 향했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서는 안 돼.편지는 보내기 전 복사해 파일에 받은 편지와 함께 보관한다. 편지 따위를 꽂아 두는 물건을 뜻하는 고비에서 이름을 따와 뒤에 숫자를 붙인다. 지난 1998년부터 시작한 이 작업은 현재까지 이어졌다. 고비는 어느새 190이라는 수를 뒤에 뒀다.-전북대 정년퇴임 때 다시 태어나도 이 고장, 이 길을 걸어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직도 유효한지 궁금합니다.전북은 살아보니 살만한 고장이야.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가거지(可居地) 즉, 가히 사람(선비)이 살만한 땅으로 지리, 생리, 인심, 산수 등 4가지 요소를 충족한 지역에 전북이 포함돼 있어.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후학들이나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해 주신다면.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 하지만 나부터도 후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할 처지는 못돼. 낙낙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조급하지 않고 여유 있게 살아가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야 해. 이만 줄이겠습니다(웃음).● 최승범 시인은 이병기 선생 수제자신석정 시인 사위최승범 시인은 원로 시조시인이자 풍류를 지닌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로 존경받고 있다. 1931년 남원 사매면 서도리에서 태어나 1954년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 정년 퇴임때까지 40년간 전북대에서 재직했다.1958년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3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가람 이병기 선생을 사사해 적통을 이어받은 수제자가 됐다. 고(故) 신석정 시인의 사위이기도 하다.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장, 한국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지부장, 한국문화재보호협회 전북지부장,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조직위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는 고하문학관 관장으로 있다.정운시조문학상, 한국현대시인상, 학농시가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목정문화대상, 한국문학상, 민족문학상, 한국시조대상을 수상했다.저서로는 한국수필문학연구, 시조에 깃든 얼, 남원의 향기, 시조 에세이, 풍미기행, 한국을 대표하는 빛깔, 한국의 먹거리와 풍물,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