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으로 초고령화에 대한 위기의식은 같았다. 포럼 기간 모든 섹션에서 노인 돌봄·특수 질환 의료 복지가 빠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실험실(‘오픈 리빙랩 데이즈’)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활동적인 노화(active ageing)’, ‘노인의 미래(older future)’. 즉, 단순한 치료와 생명 연장을 넘어 노인·환자의 삶을 어떻게 질적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스마트 시티’ 역시 화두였다. 포럼 대표 섹션인 ‘최고 등급 논문(TOP SELECTED PAPERS)’ 5개 사례 중 3개를 차지했다. 도시를 ‘삶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돋보였다. ‘스마트 도시와 지역’ 섹션이 한국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인천시 영종 지역 버스 개선위원회를 통한 리빙랩’·‘대중교통 분야에서 ICT 도구를 사용한 데이터 중심 의사 결정 지원 리빙랩’ 사례를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 핀란드, 시민이 만든 신도시
핀란드의 칼라사타마(Kalasatama)는 최근의 군산시와 닮아있는 도시였다. 과거 어업·항만이 번성했지만 사업이 문을 닫고 헬싱키(수도)에 발전이 집중되면서 낙후된 항구도시. 그런데 2010년 정부가 갑자기 이곳을 신도시로 만들겠단다. 헬싱키 인구과밀 해소를 위해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분당신도시. 한국이라면 당장 아파트·주택을 지어 분양하거나 공공기관을 이주시켰을 상황에서, 핀란드가 한 것은? 바로 리빙랩이다. 예상치 못한 선택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중간 결과는 성공적이다.
칼라사타마 스마트시티 사업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중 하나인 ‘포럼 Virium Helsinki’의 프로젝트 관리자 잔 리네(Janne Rinne)가 이번 포럼 ‘Top papers selected’섹션에서 사업 현황을 소개했다.
사업의 성공 관건은 철저히 리빙랩 과정을 지킨 것. 기획 단계부터 정부·자치단체·주민·시민단체·대학·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2013년 1차 입주민을 받아 2016년~2018년까지 1차 프로젝트를 진행, 시민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기술 접목을 통해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주민과 시청 공무원, 시민단체, 지역 중소기업, 학자들로 구성된 ‘혁신자 클럽(INNOVATOR’S Clubs)’을 만들어 동시다발적으로 20여 개 사업을 진행했다.
시민들의 이동패턴을 축적해 공유 자동차·자전거 지원 등 이동수단·교통 관리를 하고, 자율주행 버스를 시범 운영하는 것이 포럼 Virium Helsinki의 대표 프로젝트. 다른 단체들은 사물인터넷(IoT·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 등을 활용해 식료품 유통기한을 반영한 실시간 가격 변동 시스템·도심 내 쓰레기통 관리 등을 한다.
잔 리네는 “일련의 프로젝트들의 최종 목적은 도시 효율성을 높여 주민 한 사람에게 매일 한 시간의 여유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 요구를 바탕으로 리뱅랩 사업을 해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주민 만족도를 높여 인구를 유입한다. 이 과정을 반복해 도시 규모·역량을 키우는 선순환 구축도 함께 이룬다.
△ 복지국가 스위스도 노인 복지 리빙랩
“65세 이상 노인들이 기술을 통해 더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위스에서도 노인 돌봄을 위한 리빙랩 사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스 응용과학대학 학제간 노화능력 센터에서 ‘LivingLab 65+-퇴직자·양로원과 협업’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베로니카 헤머레(Veronika Hammerle).
포럼에서 그는 “많은 노인들이 일찍 퇴직해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 스위스에서는 오히려 고민 지점이었다”며, “기대수명이 늘고 노인의 퇴직 이후 삶에 대한 질적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이에 대한 맞춤형 사업·정책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베로니카 헤머레가 속한 센터는 2017년부터 스위스 전역의 퇴직자 및 양로원 이용자들과 협력해 실험 연구했다. 주요 연구 지점은 기술 적용을 통한 독립생활, 부족한 간호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원격 치료·집 돌봄이었다.
노인들은 3개월간 원격 돌봄·독립생활이 가능한 기술결합형 주거에서 생활하며 다층 아파트의 무선 연결 범위가 충분하지 않거나 LED 코드에서 방출되는 빛이 너무 밝게 인식되는 등의 후기를 남겼다. 테스트를 통해 기능·조작을 명료·간단화하고 구매 가격·유지 보수 비용을 낮추는 등 완성도가 높아졌다.
베로니카 헤머레는 “2017년 15명 노인과 ‘리빙랩 65+’로 시작해 지난해는 이와 유사한 사적 네트워크가 30개가 넘게 조직되는 등 사업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대표 사례 발표한 박지인 과기정통부 사무관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드물게 행정부처가 리빙랩 사례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박지인 사무관과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박 사무관은 지난해 사회문제해결 R&D 정책을 담당하면서 처음 리빙랩을 사업에 도입했다.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R&D 과정에 최종사용자인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현재 시점에서 최종사용자를 R&D과정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리빙랩’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5월에는 리빙랩을 시작하는 참여자·담당 공무원 등을 위한 ‘리빙랩 길잡이서’를 제작했다.
“길잡이서를 마련하고 나니 국내 리빙랩 사례를 다른 나라와 공유·협력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오픈 리빙랩 데이즈’를 주최하는 유럽리빙랩네트워크에 제출했고,‘TOP SELECTED PAPERS’로 선정돼 한국 현황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죠.”
포럼 첫째 날인 지난 3일 발표한 박 사무관은 정책 담당자로서 한국의 사회문제해결 R&D 정책의 배경과 계획, 사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날 그는 “국민들은 더 이상 과학기술이 국가발전, 경제성장에만 기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실질적인 R&D 성과물이 실생활에 바로 적용돼 ‘삶의 질’개선에 기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사회문제해결 R&D 솔루션 마련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참여가 중요하’는 명제가 과학기술정책의 중요한 한 축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발표를 마친 박 사무관은 “사회문제해결, 그리고 주민참여의 중요성에 대한 것을 ‘리빙랩의 대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한국의 더 많은 연구자, 정책담당자, 사회혁신가들도 외국의 성공사례로 부터 서로 배울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포럼에서 영상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 연구자들도 여건상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영상회의를 통해 현장 경험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국내 리빙랩 현장 사례를 길잡이서 버전 2.0, 3.0에 담아 해외 더 많은 전문가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구상중입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김보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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