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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⑧ 전북 현황 (하) 기관 기능·전문가 조언

취재를 시작한 지난 3월 이후 전북지역 리빙랩 사업은 폭발적으로 활성화됐다. 전북 콘텐츠코리아 랩·전주시사회혁신센터·전주대 지역혁신센터 등 중추적 사업 집행 기관들이 자리를 잡아 갔고, 중앙부처 지원과 자체 사업 등 다양한 예산 지원 사업이 양적으로 늘었다. 전북 창조경제혁신센터·전자부품연구원 등 리빙랩 사업 주체·조력자로 나설 전문가들이 모여 전라북도 리빙랩 네트워크를 발족하는 등 인적 역량을 촘촘히 엮어가는 데도 힘쓰고 있다. 이중 전주시 사회혁신센터는 단위 사업을 가장 활발히 하고 있는 기관이다. 다양한 주체자 사업을 진행하면서 행정 반영과 실질적 현장 개선에 힘쓴다. △ 진입장벽 낮추고 새 주체 발굴 지난해부터 ‘사회혁신 리빙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다양한 단체들의 지역 변화 아이디어에 예산 지원하는 전주시사회혁신센터. 지역 청년과 여성을 화두로 삼는 것이 특징인 전주시 사회혁신센터는 프로젝트 역시 성평등·청년·자유 등으로 주제를 나눴다. 최근 사업 모집에서는 기존 사업·단체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도록 사업 방식을 일부 바꿨다. 동일한 팀들이 아이템만 바꿔서 내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왔고, 리빙랩의 중요한 기본 가치가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다양한 분야의 협업인 만큼 새로운 주체 발굴이 중요했다. 센터는 최근 관련 사업을 확장한 ‘커뮤니티 지원 사업’에서 절차를 간소화하고 과감하게 무정산 방식을 시도했다. 흥미는 있지만 사업계획서·회계가 낯선 시민은 센터가 준비를 함께 도왔다. 그 결과 최근 100개 팀 모집에 266개 팀이 신청했다. 내부적으로는 시민들의 공공영역 활동 진입장벽을 낮췄다고 자평한다. △ 현실 의제 발굴·정책 반영 새로운 리빙랩 도전자들을 발굴하니 의제를 보는 시각이 다양해졌다. 청년과 기성세대간 단절뿐만 아니라 청년 안에서 세대 갈등이 발생하고, 20대 안에서도 사회구조적인 분절이 발생한다는 것을 토대로 더 세밀하게 세대 소통을 이끌어내는 ‘청년탐구생활’ 프로젝트가 나왔다. ‘동네탐구 생활’로는 청년문제 지원에 있어 개인 역량 지원보다 평소 청년이 늘 다니는 동네와 일상 환경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원민 전주시 사회혁신센터 소장은 ‘해피나비 프로젝트 팀’의 활동을 시민 의견이 행정 정책에 반영된 좋은 사례로 꼽았다. 이들은 길고양이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원 소장은 “전주시에서 동물복지과가 신설되는 과정 속에서 ‘해피나비 프로젝트’ 팀이 민간 전문가로서 리빙랩 통해 경험한 내용, 노하우들을 전하고 영감을 주는 역할을 했다”며 “길고양이 문제를 단순히 동물권을 넘어 공동체·공존의 문제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 더 많은 시민에게 알리기 최근 열린 ‘전주시 사회혁신한마당’은 지난 1년 간 센터에서 진행한 리빙랩 사업 등을 정리해 선보이는 행사였다. 전북은 물론 외부 대표 사회 혁신가(또는 리빙랩 전문가)들을 초대해 지역민들과 함께 지역 전주의 미래를 듣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소하지만 확실한 변화를 추구하는 전국 혁신가들을 초대해 노동, 돌봄, 언론, 문화, 도시, 성평등, 공간, 행정 등 다분야의 변화 모색을 꿈꿨다. 원 소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속가능성은 주체도 중요하지만 지역 의제가 지속가능, 확장돼야 한다”며 “반드시 내가 의제를 이어가야만 하는 게 아니라 발굴한 의제가 잊히지 않도록 다양한 주체가 협업하고 네트워크를 맺어 확장하는 게 중장기 목적”이라고 말했다. ◆ 지역 리빙랩 전문가들의 조언은 전북을 비롯해 전국에서 다양한 주체자들이 리빙랩 사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던 지난 9월 제16회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에서 각 지역별 전문가들의 지속가능한 리빙랩 활성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지역간 단위사업 연계돼야” 지역 사회 변화를 꾀하는 다양한 리빙랩 사업을 위해 정부가 사업·운영·설립비를 지원하지만 사업이나 주체가 자립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그러면서 이주현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업지원본부 본부장, 한동숭 전주대 지역혁신센터장 등이 지역 기관들의 연계·네트워크 형성을 다시 강조했다. 농촌진흥청·전자부품연구원 등 전북 혁신도시 공공기관들과 지역 대학, 테크노파크 등 지역 기술 혁신 기반에서 리빙랩 관련 기술 개발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민간 기업의 기술 개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유사 사업들은 정리·통합돼야” 중앙부처 또는 지역별로 사업이 중복·유사성이 있어서 정리·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위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경찰청, 복지부, 환경부 등 다양한 부처에서 불특정 다수의 형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사업을 받는 각 지역에서는 연계가 되지 않거나 사례 취합이 안 된다”며 “이제는 단위사업 지원에서 벗어나 지역 간 스케일업(scale up)하거나 부처 간 연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유사한 사업들을 엮어내거나 통합하는 역할은 공무원보다 유연한 지역 네트워크가 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예산을 배부하는 중앙 조직간의 연계·소통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역 조직 확대·아카이빙 필요” 한동숭 센터장은 “시작은 기관을 중심으로 활동가들이 모이긴 했지만, 활동가들의 조직으로 전화돼야 한다”면서 “활동가 중심의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으로 세부 지역별, 분야별 확대 발전이 필요하다. 동시에 조직 확산·관리를 위한 관리자 양성도 요구된다”고 밝혔다. 리빙랩 사업이 단발성으로 끝나고 결과가 사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참여자들이 경험을 익히거나 해당 이슈를 스케일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아카이빙이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활동 결과를 기록하고 공공 프로젝트화 또는 소셜벤처 사업화 등으로 단계화하는 것이다.<끝>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보현
  • 2019.11.12 20:38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⑦ 전북 현황 (상) 대학 기능·사례

취재를 시작한 지난 3월 이후 전북지역 리빙랩 사업은 폭발적으로 활성화됐다. 전북 콘텐츠코리아 랩·전주시사회혁신센터·전주대 지역혁신센터 등 중추적 사업 집행 기관들이 자리를 잡아 갔고, 중앙부처 지원과 자체 사업 등 다양한 예산 지원 사업이 양적으로 늘었다. 이중 대학은 전공과 연계해 리빙랩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론·기술 등을 연구, 실습까지 하는 중요한 거점기관 중 하나다. 전북에서는 전주대 지역혁신센터(센터장 한동숭)가 선도적으로 대학과 지역사회가 연계한 리빙랩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올해는 센터 사업에 선정된 전주대 학생들이 시민들의 의견을 받아 커피콩으로 도시의 악취 문제를 해결하고, 노년층이 사용하기 쉬운 키오스크(무인 정보단말기)를 개발했으며, 농민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맞춤형 농작물재해보험을 설계하는 등 우리 주변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커피찌꺼기’로 잡는 혁신도시 악취…시민·연구원 협업 류정목, 함범수, 송지훈, 박솔지, 김승연, 서고운 학생으로 구성된 ‘콩가루 집안’팀은 한번 쓰고 버려지는 커피콩가루(커피찌거기)로 전주혁신도시의 악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전주혁신도시는 인근에 위치한 축사에서 나오는 고질적인 악취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도시 인근 3~4km에 위치한 김제시 용지면의 축사와 가축분뇨공공처리시설이 악취의 주요 발생지로 주목되고 있다. 팀원들은 “악취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탈취 효과가 있는 커피콩가루의 기능에서 고안해 냈다”고 말했다. 축사 분뇨와 커피찌꺼기를 섞어서 악취를 저감하는 것이다. 이들은 “커피 소비가 늘어나면서 매년 커피찌꺼기 13만 톤이 그대로 버려지고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한다면 커피찌꺼기를 재활용하면서 악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1석 2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순수하게 커피콩가루만으로는 고약한 축사 분뇨 냄새를 잡을 수는 없다. 이들은 전주대 지역혁신센터를 통해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박사·전주혁신도시 악취 모니터링단 등을 소개 받았다. 학생들은 전문 박사들과 클로렐라균, 고초균, 광합성균, 복합균, 유산균, 효모균 등 다른 미생물을 커피찌꺼기에 섞어서 악취 저감 효과를 실험했고, 효과를 확인했다. 시민이 체감한 지역 문제와 해결 아이디어를 전문가와 함께 구체적으로 실현해나가는 리빙랩 과정을 충실하게 실행한 프로젝트였다. △세대 갈등 부르는 무인 기계, 전공 기술 접목해 바꿔 “사실 키오스크가 발달돼 편리한 점도 있지만, 디지털 기기에 취약한 어르신들은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고 있습니다.”키오스크라는 용어는 낯설지만, 식당 무인 주문·계산기나 지하철·고속버스 자동발매기 등을 떠올리면 된다. 전주대 스마트미디어학과 문소영, 팀원 김나연, 윤승연, 윤현화, 정찬영 학생으로 구성된 ‘독수리 오자매’팀은 노인의 디지털 접근 향상 방법에 주목했다. 이들은 “특히나 늦게 한다고 노골적으로 짜증내는 젊은 사람들 때문에 바쁜 점심시간이나 손님이 많을 때 기계 앞에 서는 것 자체를 포기한다고 한다. 이렇게 ‘키오스크’가 사회문제, 세대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는데, 저희 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우선 노인들이 왜 불편을 느끼는지 조사했다. 터미널, 음식점 등에 찾아가 설문조사를 한 결과, 현재 키오스크가 연령대별로 메뉴가 나눠있지도 않고, 메뉴 구성도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외래어가 많고, 메뉴의 의미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돼 있지 않은 것도 어려움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음식 주문·계산기를 고안했다. 10대, 20~30대, 40대, 50대 이상 연령별로 메뉴를 선택할 수 있게 구성해 연령대별로 아이콘과 글씨 크기를 다르게 조정했다. 또 어린아이나 노년층에게 생소한 영어 표현, 테이크 아웃(Take Out), 스몰(S), 미디움(M), 라지(L), 캐시(Cash) 등을 한글로 기재했다. ‘독수리오자매’팀은 “프로그램 구현이 완료된다면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키오스크 교육 자료와 우리 팀이 개선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접목해 지역 어르신을 찾아가 ‘키오스크 활용’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업서 배운 ‘농작물보험’, 현장 맞게 재구성 이준호, 이윤상, 심서우, 최진우 학생으로 구성된 ‘위기탈출 농작물’팀. 수업에서 국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36% 수준이고, 실제 이용자는 32% 수준임을 확인한 이들은 보험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농민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맞춤형 농작물재해보험을 설계하고자 했다. 이들이 농가를 찾아 파악한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낮은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는 마을이나 조합별로 관심, 노력의 여하에 따라 가입율이 크게 차이가 났다. 마을이 동일한 농작물을 재배할수록, 조합이 크기가 크면 클수록 전체가 함께 재해보험을 가입했지만, 마을과 재배 작물도 상이하고 영세농이면 가입률이 그만큼 낮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는 이미 국가와 지지체에서 65~90%이상 지원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인상은 제대로 보상받고 있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가입하는 방식이 어렵다는 점이다. 작물별로 가입해야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서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경우에는 가입기간을 제대로 챙기기가 어려웠다. 팀원들은 “자신이 키우는 작물중에 보험이 필요한 작물만 선택하면, 가입시기에 맞춰서 보험가입 권유 연락이 가거나 가입기간을 한정하지 않는 대신에 보험료를 대폭 늘리는 방안을 확인하고 있다”며 “우리의 기획이 NH 농장물재해보험에 제공돼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보현
  • 2019.10.22 20:01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⑥ 네덜란드 사례 (하)순환농업·웰니스

△네덜란드, “고갈 최소화한 순환농업이 답” 네덜란드에서 처음으로 순환 농업 체계를 구축한 카스텔레이(castenray)시의 킵스터(kipster) 농장. 이곳의 닭들은 자유로운 숲의 새다. 제곱미터 규모의 닭장 안에는 고운 흙과 나무 쉼터로 꾸며진 거대한 공터였다. 닭들은 기계 설비로 다양한 종류의 일광, 신선한 야외 공기가 들어오는 닭장 안을 누볐고, 알을 낳았다. 이것만 본다면 복지농장에 가깝다. 킵스터 농장의 주요한 특징은 자원의 낭비 없이 지구와 생명에 이롭게 운영한다는 것이다. 천장에 줄지어 들어선 환기구에서 거센 바람이 나와 분뇨를 컨베이어벨트 위로 밀어낸다. 악취 저감과 동시에 건조된 분뇨는 퇴비로 쓰인다. 분뇨를 매립해 토양이 오염되는 것을 막는다. 닭들은 작물이나 사료를 먹지 않는다. 유통기한이 조금 지나 판매할 수 없지만 식용 가능한 과자를 활용한 사료를 먹는다. 새 것을 쓰지 않고 남은 자원을 활용해 낭비를 최소화 한다. 에너지 역시 지붕 위에 깔린 태양광 전지판에서 얻는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순환 농업 체계는 양계장 운영뿐만 아니라 계란 유통·농부의 위치 구축에도 적용된다. 농부가 직접 계란 생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마트·소비자와 직거래한다. 이 농장에서 자란 닭이 계란을 낳아 계란이 소비자의 밥상 위에 올라가기까지가 ‘순환의 과정’이다. “전 세계 농지 70% 이상이 가축 사료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생태계·생물 다양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토양 황폐화까지 가져옵니다. 그래서 킵스퍼는 농지를 사용하지 않아요.” 킵스퍼 농장을 관리하는 직원 톤 로이퍼르스(Ton Leupers)의 설명이다. 킵스퍼 농장에 따르면 네덜란드만 해도 동물이 76%, 사람이 24%의 토지를 점유하고 있다. 인간이 가축을 잡아먹느라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 가축이 더 많은 식량과 토지를 점유하고 지구 생태계가 망가져 가고 있었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농업 수출 세계 2위인 농업 강국 네덜란드는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을 계획했다. 단기적으로 생산량이 줄어들더라도 생산 효율성보다 전지구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네덜란드 농림식품부에서 이 같은 취지를 담아 지난해 8월 ‘순환 농업’ 지향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그동안 적은 비용으로 많이 생산하는 결과적 효율성에 초점을 뒀다면, 미래에는 원자재·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식량 생산 과정에서 버려지거나 남는 것들을 최대한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과정의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아직까지 네덜란드 내에서도 확산되지 않았다. 이미 구축돼 있는 대량 생산 시스템을 바꾸고 당장의 생산량을 줄이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농업 가치 넓혀야…전북엔 웰니스도 대안 현재 네덜란드 전역에 확산돼 있는 ‘케어팜’(농장형 노인 요양·돌봄 시설)이 지금은 보건복지부가 전담해 예산을 충당하고 있지만, 약 10년 전 정책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예산을 투입해 안착시킨 행정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다. 헤이그시에 위치한 농림축산식품부 청사에서 만난 국내외 농업·사업·식품 검증 부서 담당자들은 “본래 ‘케어팜’은 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찾자는 목표에서 시작했다”며, “성공적인 농업 연계 모델·시스템을 구축한 후 지속적으로는 복지 전문성이 쌓여가야 한다고 생각해 복지부가 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농림축산식품부가 주목한 것은 ‘순환농업’이었다. 지난해 2030 순환농업 미래비전을 선포하고, 원자재 고갈 최소화·식량 생성 시스템 내 부산물 재활용과 순환, 친환경·유기 농업 등을 발표했다. ‘케어팜’과 분야가 달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궤를 같이 한다. 마이클 (Michiel van Erkel) 국제농업·식품안전 감독은 “네덜란드 농업의 변치 않는 목표는 농업·농촌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며 “1980년대에는 경제성·생산성 향상이 최우선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85% 정도의 결과를 내더라도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인구는 줄고 지구는 황폐화되며 사람들은 삶의 질에 관심이 높다. 미래에도 농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농업·농부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네덜란드의 경우 스마트팜(smart farm) 등 농업 혁신기술이 뒷받침된 농업 강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에 담당자들은 “전북지역 안에서 농업이 변환될 수 있는 가치 창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중 하나로 ‘웰니스(Wellbing+Happiness+Fitness) 문화’가 제안된다. 단순히 식량 생산하는 농업이 아니라 소비자들의 요구·사회적 가치에 맞춰 먹거리를 생산하거나 농업 활동을 콘텐츠로 개발하고, 농촌 환경·활동과 연계한 치유·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미 국내에 도입된 개념이지만 아직까지 농업 웰니스 문화·사업을 안정적으로 특화한 지역 사례는 없다. 시·군별 문화·역사·자연경관 자원이 특징인 전북이야말로 웰니스 농업에 제격이라는 게 취재한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박기도 국립식량과학원 작물기초기반과 과장은 한국인이 커피 수요가 많고, 임산부·노약자 등 카페인을 섭취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고창에서 나는 검정보리로 ‘보리커피’를 만들자는 제안 등을 예로 들었다. 고창에서 검정보리 로스팅, 보리커피 마시며 즐기는 지역 관광 등도 연계 프로그램이다. 이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국립식량과학원이 주최해 15일 청주에서 열린 ‘과학기술+사회혁신 포럼’에서 발표됐다. /네덜란드 카스텔레이·헤이그=김보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기획
  • 김보현
  • 2019.10.15 19:38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⑤ 전북 유사한 네덜란드는 (상) 케어팜

영토가 작아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쉼 없이 존재감을 보여줘야 했던 나라. 바다보다 낮은 땅을 가져 나막신이 발달한 나라. 네덜란드 국민들이 척박한 환경을 적극적으로 극복하고 대응하는 기질은 삶의 방식으로 녹아들었다.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에서 네덜란드가 가장 혁신적이고 기술개발·변화에 선도적인 이유다. 네덜란드의 유연하고 혁신적인 시민정신은 오늘날 ‘리빙랩’ 정신과 맞닿아 있다. 네덜란드가 유럽을 넘어 세계적으로 리빙랩 선도국가가 된 가장 큰 원동력이다. 네덜란드는 전라북도와도 닮았다. 세계 2위 규모 농업 수출량을 자랑하는 농업강국인 동시에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복지 요구가 높고 활발하다. △ 노인은 ‘치유’를, 소농은 ‘농장 운영’을 원한다 스마트팜(smart farm) 선진국인 네덜란드가 주목한 새로운 형태의 농업, 바로 케어팜(care farm)이다. 케어팜은 노인이나 발달장애인·자폐·약물중독자·노숙자 등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머물거나 거주하며 농장을 활용한 복지 서비스를 받는 돌봄 시설이다. 네덜란드 케어팜 전문가인 조예원 바흐닝언 케어팜 연구소장은 “스마트팜이 농업 생산량의 폭발적 증대를 위한 고효율화 기술이라면, 치유농업이라고도 하는 케어팜은 소농들에게 좀 더 적합하고 진입이 쉬운 농업”이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노인들은 요양원에서 누워 지내다 생을 마감하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삭막하고 누워만 지내는 요양원, 의료기관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만들고 싶었어요.” 거주형 케어팜 ‘레이헤르스후퍼’를 운영하는 헨크 스미트(Henk smit) 원장 등 케어팜 운영자들의 의견이다. 이렇듯 케어팜은 소규모 농업인들과 노인들의 요구가 맞물려 탄생했다. 케어팜 형성 과정 자체가 시민들의 의견에 따라 전문 기술·산업이 발전된 ‘리빙랩’인 것이다. 현재 네덜란드에 1200여 개 케어팜이 존재할 정도로 번성했다. 농장주의 가치관과 운영 방식과 노하우, 수요층 등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농장이 환자에게 주는 집 같은 편안함 네덜란드 하임스커크(Heemskerk) 외곽에 위치한 거주형 케어팜 레이헤르스후퍼(DeReigershove). 2미터가 넘는 굳게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화로운 농장이 펼쳐졌다. 한가운데 넓은 밭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심겨 있고, 양옆에는 양과 돼지, 토끼, 닭 등 동물에게 여물을 주고 있는 노인이 보였다. 청소년 자원봉사자와 함께 작물에 물을 주고 있는 노인들도 있었다. 한켠에 조성된 놀이터가 시끌벅적했다. 이곳에 사는 한 노인의 가족이 놀러온 터였다. 노인은 벤치에서 가족들과 담소를 나누며 놀이터에서 뛰노는 손자들을 구경했다. 공동 공간 1층에서는 노인들이 옛날 음악을 함께 들으며 춤을 추고 있었다. 요양사는 이들을 방해하지 않고, 이따금 아픈 곳은 없는지 식사를 하고 싶은지를 챙겼다. 케어팜 대부분이 방문형 활동 위주이지만 ‘레이헤르스후퍼’는 드물게 중증 치매환자들이 말년을 보내도록 마련된 거주형 시설이다. 2013년 10월 설립된 이곳은 현재 노인 27명이 4개 그룹으로 나눠 집 4채에서 살고 있다. 원장인 헨크 스미트는 “환자를 침대에 묶어두고 치료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죽이는 것과 같다. 요양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것 같은 환경을 만들어 또 다른 삶의 가치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환자들이 원하는 방식의 치료와 사회활동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노인돌봄 가치관에 부합한 것이 바로 ‘치유농업’이었다. 요양시설처럼 의사·요양사의 치료와 돌봄을 받지만 집 같은 편안함과 휴식을 준다. 식물·동물 등 녹색 환경을 보며 심리적 안정을 주는 동시에 농장에서의 어렵지 않으면서도 규칙적인 활동을 하며 성취감·사회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곳에서 노인들이 여물 주기·작물에 물을 주고 잡초 뽑기·작물 재배 등 농장 일 외에 미술·공예·목공·미용·음악 감상 등 다양한 취미·신체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헨크 스미트는 “인기가 높아 지금 입주를 신청해도 1년 후에나 가능하다”며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복지가 아니라 누구나 올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이곳뿐만 아니라 누구나 ‘케어팜’을 보편적 서비스로 누릴 수 있는 제도·시스템 구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속 유휴지가 치유·소통 농업 공간으로 대도시 위트레흐트((Utrecht)시에 있는 케어팜 ‘푸드포굿(Food for Good)’.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네덜란드 안에서도 특별한 사례로 꼽힌다. 노인·장애인·장기실업자 등을 돌보는 시설이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들어서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반기는 주민들이 얼마나 될까. 이 지역 역시 반대가 컸다. ‘푸드포굿’ 운영자 한스 페일스(Hans Pijls)는 “버려진 시유지(市有地)를 무상임대해 재생시키는 것인데도 주민들은 노인, 실업자 등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하지만 케어팜이 가장 곁에 필요한 곳이 바로 도심 아파트단지”라고 말했다. 도시에 사는 독거노인, 가족이 일하는 동안 돌봄이 필요한 노인 등이 노인정처럼 머물며 활동하고, 심리적으로 우울한 시민들의 재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 또 주민들에게도 모임이나 취미 활동을 하며 지역 노인들과도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푸드포굿에서는 공동 농작물 재배와 함께 지역주민과 피자만들기·생산물 이용한 요리 교실 등 다양한 워크숍을 한다. 한스 페일스는 “케어팜은 노인 복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노인을 비롯해 시민들의 사회적 건강을 위해 필수적인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한동숭 전주대 지역혁신센터장은 “‘푸드포굿’형태는 전북에서도 조건이 비슷해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거주형 케어팜의 경우는 텃밭이 있는 한국 요양시설에서 케어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며, “네덜란드 노인돌봄 리빙랩은 도시재생과 사회복지, 혁신이 함께 가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네덜란드 하임스커크·위트레흐트=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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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9.10.08 20:14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④ 세계 리빙랩 포럼-(하)성공 관건은 코크레이션·지속적인 실험과 환류

전북을 비롯해 한국, 전 세계에서 리빙랩(livinglab)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이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바텀 업(bottom up)’ 구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리빙랩 1세대가 ‘붐 업(boom up)’을 일으켰다면, 다음 세대는 ‘지속가능성’과 ‘확장’을 이뤄야 할 때다. 전문가들은 리빙랩의 기술적이고 방법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즉, 현재 단발적인 리빙랩 프로젝트들을 지속가능하게 확장시키려면 수행 과정에서 더욱 완성도 높고 특별한 기술·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올해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성공의 열쇳말이 바로 ‘코크리에이션(co-creation·공동창조)’이었다. ◆리빙랩 성공 관건, 코크리에이션…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코크리에이션(co-creation·공동창조)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핀란드의 라우 레아 응용 과학대학의 앤 이위 리 교수는 “코크리에이션은 개방형 리빙랩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각 분야·주체의 활동을 조정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리빙랩은 과학과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화합입니다. 다중 이해 관계자들의 공동 창조 활동이죠. 리빙랩은 스스로 세우고 유지할 수 있는 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야 하는 실행방법론이에요.” 앤 이위 리 교수가 말한 코크리에이션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누구 하나 솔로가 아니라 각자의 선율이 살아있지만 어우러져 하나의 곡을 만드는 오케스트라인 셈”이라며, “꼿꼿한 소나무가 아닌 전체가 다 같이 피어나는 꽃다발이 돼야 한다”고 비유했다. 리빙랩에서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야 하는 주체들은시민·대학조직·NGO 등 개인·조직·기관을 뜻했다. 그리고 각 주체가 해야 할 일은 각자의 역량을 촘촘히 엮어 관계·신뢰성을 쌓아가는 것. 교수는 “지속적인 관계·신뢰성을 쌓으려면 네트워크를 구축해 생태계를 형성하고, 비전을 그려야 한다. 눈앞에 닥친 것만 끝마치고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리빙랩의 궁극적인 최종 목적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세계의 혁신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크리에이션 어떻게? △지역·국가간 ‘다름’ 연구해야 노인돌봄 리빙랩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벨기에의 ‘리카랩(LiCaLab)’. 정부가 벨기에 중소기업들과 함께 2016년부터 5년간 42개 노인 돌봄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리카랩’ 담당자 잉그리드 아드리아 센(Ingrid Adriaensen)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상 어려움·성공을 위한 방법론적 측면을 이야기했다. 그는 “협력 사업을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은 지역·국가의 의견, 특성이 누락된다. 지리적 영역, 문화적 차이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뒷받침 돼야한다”고 조언했다. 문화·생활환경 차이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리빙랩의 전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 즉 방법론, 채용 전략, 그룹 구성, 중재 및 연구 프로토콜을 정의 등 모든 협업에서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리빙랩을 진행 중인 분야가 발전하려면 다른 지역·국가의 해당 분야 리빙랩과 엮어내야 한다”고 말한 그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조율하고 충분히 사례 연구를 해 표준화된 제품·모델을 만들도록 했다. 이를 위해서는 20개국 36개 사업기관이 온라인 조사, 유럽리빙랩네트워크연합과 자국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사, 웹사이트 공개질문방 등을 활용해 ‘다름’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 신뢰·자연스러운 동기부여 필수 시간이 지나면서 코크리에이션(공동창조)은 어려워지고, 일부는 한계를 드러낸다. 기여 동기가 부족해 프로젝트 참여율이 낮아지고, 예산 고갈에도 부딪혀서다. 에릭 슐리에트(Eric Seulliet)는 “코크리에이션의 정체·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축이 ‘신뢰’와 ‘자연스러운 동기부여(nudge)’”라고 조언했다. 에릭 슐리에트는 프랑스 ‘라 파브 리크 뒤 푸 투르(La Fabrique du Futur)’의 창립회장으로, 이 단체는 파리에서 기술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연구하는 리빙랩 협회다. 그는 소수의 관계자들이 리빙랩을 독점하고 군림하는 것을 경계했다. “리빙랩의 중요 요소는 많은 시민들의 동참인데 매번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시민활동가, 리빙랩 전문가들 만 참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경쟁·질투·불신이 생기고 효과도 적고 스케일업(scale up)을 할 수가 없어요.” 에릭 슐리에트는 “신뢰를 쌓으려면 참여자 누구든 참여할 수 있게 열어두고, 다양한 정보, 연구결과·노하우·네트워크 등을 동료뿐만 아니라 실행자, 사업자, 후원자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활성화하려면 적절한 보상 등을 통해 ‘자연스러운 동기부여(nudge)’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설·실험·검증·환류 계속해야 “리빙랩의 과정은 사용 실험자와 서비스 제공자, 정책자 등 다양한 주체간 상호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결과를 예측하는 일련의 가설입니다. 그 자체가 옳은 것, 정답, 성공적인 것이 아니에요. 성공적 결과에 유사한 실험적 프레임을 연구 설계하는 것입니다.” 스위스 서부응용과학대학 (HES-SO Valais-Wallis)의 선임 연구원인 벤자민 난첸(Benjamin Nanchen)은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능성을 계속 예측하고 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검증·환류도 뒤따라야 한다. 벤자민 난첸에 따르면 리빙랩 자체가 실험·테스트다. 이제는 단순히 리빙랩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결과에 대해 성과 평가·점검해야 할 때다. 그는 “우리 연구소는 리빙랩 결과를 진단할 수 있는 평가도구 개발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는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 리빙랩에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지점이기도 하다. 포럼에 함께 참석했던 성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모든 정책 사업은 가설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똑똑한 사람이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다같이 예측해 바꿔보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환경이 단순했던 과거에는 소수의 전문가가 예측 가능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오늘날은 너무나 불확실하고 복잡하다. 결과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설을 통해 실험하고, 다양한 주체(시민)를 정책에 들여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 박사는 “다양한 실험과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면 리빙랩은 의미가 없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리빙랩 사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단기간 성과를 재촉하기 보다는 충분히 실험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그리스 테살로니키=김보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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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9.10.01 20:24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③ 세계 리빙랩 포럼- (중) 화두는 스마트 시티·노인 돌봄

전 지구적으로 초고령화에 대한 위기의식은 같았다. 포럼 기간 모든 섹션에서 노인 돌봄·특수 질환 의료 복지가 빠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실험실(‘오픈 리빙랩 데이즈’)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활동적인 노화(active ageing)’, ‘노인의 미래(older future)’. 즉, 단순한 치료와 생명 연장을 넘어 노인·환자의 삶을 어떻게 질적으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스마트 시티’ 역시 화두였다. 포럼 대표 섹션인 ‘최고 등급 논문(TOP SELECTED PAPERS)’ 5개 사례 중 3개를 차지했다. 도시를 ‘삶을 담는 그릇’으로 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돋보였다. ‘스마트 도시와 지역’ 섹션이 한국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도 ‘인천시 영종 지역 버스 개선위원회를 통한 리빙랩’·‘대중교통 분야에서 ICT 도구를 사용한 데이터 중심 의사 결정 지원 리빙랩’ 사례를 발표해 박수를 받았다. △ 핀란드, 시민이 만든 신도시 핀란드의 칼라사타마(Kalasatama)는 최근의 군산시와 닮아있는 도시였다. 과거 어업·항만이 번성했지만 사업이 문을 닫고 헬싱키(수도)에 발전이 집중되면서 낙후된 항구도시. 그런데 2010년 정부가 갑자기 이곳을 신도시로 만들겠단다. 헬싱키 인구과밀 해소를 위해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분당신도시. 한국이라면 당장 아파트·주택을 지어 분양하거나 공공기관을 이주시켰을 상황에서, 핀란드가 한 것은? 바로 리빙랩이다. 예상치 못한 선택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중간 결과는 성공적이다. 칼라사타마 스마트시티 사업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중소기업 중 하나인 ‘포럼 Virium Helsinki’의 프로젝트 관리자 잔 리네(Janne Rinne)가 이번 포럼 ‘Top papers selected’섹션에서 사업 현황을 소개했다. 사업의 성공 관건은 철저히 리빙랩 과정을 지킨 것. 기획 단계부터 정부·자치단체·주민·시민단체·대학·기업이 공동으로 참여했다. 2013년 1차 입주민을 받아 2016년~2018년까지 1차 프로젝트를 진행, 시민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기술 접목을 통해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주민과 시청 공무원, 시민단체, 지역 중소기업, 학자들로 구성된 ‘혁신자 클럽(INNOVATOR’S Clubs)’을 만들어 동시다발적으로 20여 개 사업을 진행했다. 시민들의 이동패턴을 축적해 공유 자동차·자전거 지원 등 이동수단·교통 관리를 하고, 자율주행 버스를 시범 운영하는 것이 포럼 Virium Helsinki의 대표 프로젝트. 다른 단체들은 사물인터넷(IoT·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 등을 활용해 식료품 유통기한을 반영한 실시간 가격 변동 시스템·도심 내 쓰레기통 관리 등을 한다. 잔 리네는 “일련의 프로젝트들의 최종 목적은 도시 효율성을 높여 주민 한 사람에게 매일 한 시간의 여유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 요구를 바탕으로 리뱅랩 사업을 해 일자리를 만들고, 이를 통해 주민 만족도를 높여 인구를 유입한다. 이 과정을 반복해 도시 규모·역량을 키우는 선순환 구축도 함께 이룬다. △ 복지국가 스위스도 노인 복지 리빙랩 “65세 이상 노인들이 기술을 통해 더 오랫동안 독립적으로 사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위스에서도 노인 돌봄을 위한 리빙랩 사업을 하고 있었다. 스위스 응용과학대학 학제간 노화능력 센터에서 ‘LivingLab 65+-퇴직자·양로원과 협업’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베로니카 헤머레(Veronika Hammerle). 포럼에서 그는 “많은 노인들이 일찍 퇴직해 양로원에 살고 있는 게 스위스에서는 오히려 고민 지점이었다”며, “기대수명이 늘고 노인의 퇴직 이후 삶에 대한 질적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이에 대한 맞춤형 사업·정책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베로니카 헤머레가 속한 센터는 2017년부터 스위스 전역의 퇴직자 및 양로원 이용자들과 협력해 실험 연구했다. 주요 연구 지점은 기술 적용을 통한 독립생활, 부족한 간호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원격 치료·집 돌봄이었다. 노인들은 3개월간 원격 돌봄·독립생활이 가능한 기술결합형 주거에서 생활하며 다층 아파트의 무선 연결 범위가 충분하지 않거나 LED 코드에서 방출되는 빛이 너무 밝게 인식되는 등의 후기를 남겼다. 테스트를 통해 기능·조작을 명료·간단화하고 구매 가격·유지 보수 비용을 낮추는 등 완성도가 높아졌다. 베로니카 헤머레는 “2017년 15명 노인과 ‘리빙랩 65+’로 시작해 지난해는 이와 유사한 사적 네트워크가 30개가 넘게 조직되는 등 사업이 활발하다”고 말했다. ◆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대표 사례 발표한 박지인 과기정통부 사무관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드물게 행정부처가 리빙랩 사례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박지인 사무관과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다. 박 사무관은 지난해 사회문제해결 R&D 정책을 담당하면서 처음 리빙랩을 사업에 도입했다. 사회문제해결을 위한 R&D 과정에 최종사용자인 시민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현재 시점에서 최종사용자를 R&D과정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리빙랩’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지난 5월에는 리빙랩을 시작하는 참여자·담당 공무원 등을 위한 ‘리빙랩 길잡이서’를 제작했다. “길잡이서를 마련하고 나니 국내 리빙랩 사례를 다른 나라와 공유·협력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오픈 리빙랩 데이즈’를 주최하는 유럽리빙랩네트워크에 제출했고,‘TOP SELECTED PAPERS’로 선정돼 한국 현황을 널리 알릴 수 있게 됐죠.” 포럼 첫째 날인 지난 3일 발표한 박 사무관은 정책 담당자로서 한국의 사회문제해결 R&D 정책의 배경과 계획, 사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이날 그는 “국민들은 더 이상 과학기술이 국가발전, 경제성장에만 기여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실질적인 R&D 성과물이 실생활에 바로 적용돼 ‘삶의 질’개선에 기여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사회문제해결 R&D 솔루션 마련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참여가 중요하’는 명제가 과학기술정책의 중요한 한 축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발표를 마친 박 사무관은 “사회문제해결, 그리고 주민참여의 중요성에 대한 것을 ‘리빙랩의 대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며, “한국의 더 많은 연구자, 정책담당자, 사회혁신가들도 외국의 성공사례로 부터 서로 배울 수 있는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포럼에서 영상으로 발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우리 연구자들도 여건상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영상회의를 통해 현장 경험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국내 리빙랩 현장 사례를 길잡이서 버전 2.0, 3.0에 담아 해외 더 많은 전문가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구상중입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김보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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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9.09.24 20:24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② 세계 리빙랩 포럼 (상) 다양한 사례 속 빛난 지역성

전 세계 주목을 받는 리빙랩 사례와 방법론이 쏟아진 자리에서 오히려 지역과 전북 리빙랩의 가능성을 봤다.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그리스 테살로니키에서 열린 ‘오픈 리빙랩 데이즈(open livinglab days) 2019’에서다.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 전 세계 리빙랩 전문가들이 모여 리빙랩 사례·지식·방법론과 경향을 공유하는 국제 포럼이었다. 전문가들은 ‘로컬(local·지역)에서 글로벌(global·세계)로의 확장성’에 주목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들의 코크리에이션(co-cration·공동창조)을 강조했다. 강연자·청자 구분 없이 모두가 참여자였던 포럼은 그 자체가 거대한 공동 실험실, 즉 리빙랩의 현장이었다. “전 세계 리빙랩 전문가들이 모인 건 우리가 ‘어벤져스’처럼 세상을 바꾸거나 신기술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세상 곳곳엔 다양한 문제가 있고, 이를 시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죠. 다른 지역에선 유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영감을 얻고, 조건이 맞는다면 협업하려고 참가했어요.” 지난 3일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리빙랩 프로젝트 전문가 알레타 푸롤라(Aletta Purola)가 한 말이다. 전 지구적인 사회 혁신을 목표로 리빙랩 전문가들의 교류·연대·확장을 꾀하는 것이 목표지만 결국 이는 지역민의 자생력, 지역으로부터의 힘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올해는 ‘로컬에서 글로벌로의 확장(Scaling Up from Local to Global)’을 문패로 내걸고 지역 문제 발굴과 연대·확장 방법에 주목했다. 농촌 마을에서 순환 농업 경제 구축을 실험하는 파나지오티스 쿠투디스(Panagiotis Koutoudis) LIVE RUR 선임 프로젝트 관리자는“오픈 리빙랩 데이즈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로 리빙랩이 어떻게 현실화 되는지 함께 배우고 공유하는 자리”라며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내려온 정책은 지역에 녹아들지 못했지만 리빙랩 맞춤형 개발로 각 지역의 발전 동력을 만든다. 다양한 유형을 연구해 농촌 경제의 다각화를 이루고자 한다”고 말했다. LIVE RUR 프로젝트는 가족 농장에 디지털 농업을 접목하는 슬로베니아, 1인 농업인이 활발한 체코의 소기업 파트너십 연계 전략 기획, 유럽 상당수의 과일·채소·꽃을 생산하는 스페인에서의 판매 단계 단순화·자영업 및 여성 농업인 활성화 등 유럽 국가의 13개 농촌 마을 실정에 맞는 리빙랩을 진행하는 것이다. 다양한 농촌 모델을 만들고 결합해 유럽 농업 경제의 다각화를 꾀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올하 본다렌코(Olha Bondarenko)가 속한 도시 개발 연구소(Urban Development Institute)의 경우는 리빙랩 사업 수행자가 아닌 중간 매개자 역할을 했다. 이들은 “리빙랩 지속 가능성의 관건은 각 이해 관계자들의 균형적인 참여”라며 “리빙랩 최종 사용자와 중간 이용자 및 공급자, 리빙랩을 가능하게 할 전문가, 대학 분석 연구원, 민간기업, 자치단체 등이 모두 맞물려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 [인터뷰]‘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만난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 -포럼에서 지방의 작은 실험이 전 세계 움직이는 것 눈으로 봐 -농도·문화·사회적기업 등 전북 특성 살린 리빙랩, 선도 가능 “전북 특징이 잘 드러나는 리빙랩을 한다면, 전북이 세계를 선도할 수 있습니다.” 리빙랩 사업이 그동안의 지역 발전 정책·사업과 차별화되는 점은 지역민들의 자발성·역량을 기반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정책이 커질수록 중앙정부·국가가 아닌 시민 역량 강화·인프라 구축 등 지역의 역량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가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시민들이 도시 고유의 특성을 잘 발전시켜 나갈 힘이 있다면, 도시의 미래, 다음 세대를 위한 브랜드 구축, 먹거리 산업 발전, 일자리 창출 등을 자체적으로 만들게 되는 진정한 지방 분권이 오는 것. 수년간 각국의 리빙랩 사업을 끌어온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 리빙랩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번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박지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사무관과 함께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인 ‘Top Papers selected’에 초청된 성지은 연구위원. 포럼 장에서 만난 그는 “그리스에서 전북·전주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작은 도시의 조그만 실험들이 전 세계를 향해 발산하는 사례들을 확인하면서다. 농도이자 풍류의 고장인 전북은 농업뿐만 아니라 맛, 멋, 흥, 자연경관을 아우르는 문화 콘텐츠가 있다. 사회적 경제 조직과 소셜(social) 네트워크 등이 활성화된 것도 강점이다. 이를 지역문제 해결에 접목한다면 전북만의 리빙랩을 만들 수 있다. “포럼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된 분야가 파킨슨, 다운증후군, 치매 등 특수 보건의료와 노인 돌봄,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마트시티에요. 아무래도 최종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효과·변화를 느끼는 게 가장 큰 분야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전북이 또 강점을 가진 겁니다.” 성 박사는 “전북의 강점인 농업 분야는 아직까지 깊게 연구되거나 조명되지 않았다”며 “지역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지역만으로 한정짓지 않고 보편성과 확장성을 어떻게 확보해 나갈 것인지 방향성을 정하자. 그리고 단계적으로 진행한다면 그 성과 창출은 물론 얼마든지 국내외를 향해 발신할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해외에서 한국 리빙랩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올해는 대구, 부산, 인천에서도 사례 발표에 나섰다. 특히 성 연구위원은 “한국의 중앙 행정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포럼 대표 발표자로 ‘한국 사회문제 해결 연구 개발을 위한 리빙랩 활동’을 소개한 것은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리빙랩의 핵심인 톱다운(Top down·하향식)이 아닌 바텀 업(Bottom up·상향식) 정책 구조는 전통적으로 유럽이 강했다. “중앙집권 구조였던 한국이 최근 다양한 정책에 리빙랩을 적극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여전히 기술 중심의 성향이 강하긴 하지만 상향식 정책 집행 방식으로 눈에 띄게 변모하고 있어요. 이번 포럼에서 행정부처로서는 유일하게 한국이 우수 사례로 발표하는 것은 한국 리빙랩이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성 연구위원은 “리빙랩 사업이 규모가 큰 게 능사가 아니다. 방향성과 다음 단계가 없다면 실패한다. 한국에서도 지역 간 연계와 함께 스케일 업(scale up)을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은 지역마다 동시다발적으로 리빙랩에 뛰어들었다. “서울, 전북, 광주, 대구, 부산 등 각 지역에서 점 조직으로 리빙랩 활동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비슷하게 시작해 규모나 수준도 비슷한 상황에서 특성 없이 예산만 투입해 사업을 진행하다가는 지역별 경쟁 체제로 갈 우려가 있습니다. 각 지역의 고유한 리빙랩을 구축하는 것이 선결 과제며, 이후 지역 간 연계해 선을 만들고, 각 선들을 엮어 규모 있는 면을 만드는 과정이 앞으로 한국 리빙랩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리스 테살로니키=김보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받았습니다.

  • 기획
  • 김보현
  • 2019.09.17 19:55

[지역혁신 방법론, 전북형 ‘리빙랩’을 찾아서] ① 왜 리빙랩인가 - 도시 바꾸는 아이디어, 시민이 주도

“휠체어에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조이스틱을 부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날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조이스틱 전동휠체어는 2008년 덴마크 에그몬트학교 장애인 학생들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당시 장애인 보조기술 개발을 연구하는 기업, 유관기관이 효과적인 보조기술을 만들기 위해 최종 사용자인 장애 학생들을 기획·제작에 참여시키는 ‘에그몬트 리빙랩’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 학생들은 휠체어에 앉아 쉽게 게임 할 수 있도록 게임 조이스틱을 휠체어에 설치해달라고 제안했고, 사업 가능성을 엿본 기업은 현재의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조이스틱 휠체어’로 개발한 것이다. 이는 리빙랩 활성화의 시초이자, 대표 사례가 됐다. 시민과 사용자가 생활하는(living) 도시가 거대한 실험의 장(lab)이 되는 것. 시민이 주도해 아이디어를 내고 도시를 바꾸는 ‘리빙랩(Living Lab)’ 프로젝트는 유럽에선 이미 10년 전부터 연합네트워크를 꾸렸을 정도로 활성화되고 각광받는 사회 혁신 방법론이다. 국내에서도 정부가 수십 억 원의 국가예산을 들여 ‘리빙랩’에 투자하는 가운데 전북도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리빙랩을 추진하기 시작한 전북은 올해 거점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고민하는 단계다. 리빙랩의 중요성, 안착한 국내외 성공 사례, 전북형 리빙랩 구축을 위한 과제를 7차례 연재한다. △‘리빙랩’, 시민 주도 문제 해결 시민이 만드는 혁신적인 사회 변화와 더 나은 도시.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론이 바로 ‘리빙랩’이다. 기존처럼 기술·정책을 만든 뒤 활용할 곳을 찾거나 사회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처방’처럼 해결 정책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사회 문제가 벌어지는 현장의 시민들이 직접 느낀 여러 가지 원인과 해결 아이디어를 내고 지역·정부의 연구기관이 이를 정책으로 엮어낸다.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에는 도시·산업 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이 주였다면, 이제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사회를 바꿀 것인가, 기술을 인간 삶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 등 혁신 방법론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며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탐색, 실험, 실증, 연구 개발하는 모든 과정에 최종 사용자가 참여해 연구자와 함께 일하는 방식인 리빙랩은 ‘전문성’과 ‘시민성’이 결합한 혁신모델”이라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가장 뜨거운 방법론 유럽에선 벌써 2006년부터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를 꾸리는 등 정착화했다. 2004년 미국 MIT에서 처음 개념이 생겼지만 유럽에서 시민·사용자 참여 중심의 혁신공동체를 지향하는 사회운동 성격으로 번졌다. 국내에서는 낯선 개념이었지만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가 2000년대 후반부터 초기 개념 구축과 연구를 주도해나갔다. 2013년에는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새로 진행한 ‘사회문제 해결형 기술개발사업’의 추진체제로 도입됐다. 연구개발 사업이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최종 사용자와 연구자가 현장에서 협업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다. 현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자치단체 등의 핵심 사업 추진 단계로 자리 잡았다. 국내 자치단체, 중간 민간조직, 대학, 일반시민 등 다양한 주체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빙랩을 시도한다. 최초로 리빙랩 실험을 시작한 서울시혁신센터를 비롯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남, 제주, 전북 등 지역마다 혁신센터가 건립됐다. 전북에서도 이제 리빙랩은 선택이 아니라 일상이다. △활발한 교류 속 한국 리빙랩 가세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개념인 만큼 전 세계 리빙랩 전문가들이 교류를 맺고 공동 발전 방향을 논의한다. 유럽국가 리빙랩 단체들이 연합한 유럽리빙랩네트워크(ENoLL)뿐만 아니라 매년 각국을 돌며 개최하는 ‘오픈 리빙랩 데이즈(open livinglab days)’가 대표적이다. ENoLL이 주관해 전 세계 리빙랩 전문가들이 활동 사례를 발표하고 매년 주제를 정해 지속발전 방향을 토론한다.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지난 2017년부터 ‘한국 리빙랩 네트워크 포럼’을 열고 있다. 국내 리빙랩 전문가들이 모여 현황을 짚는 자리로, 현재 15차까지 진행됐다. 또 지난 5월에는 처음으로 리빙랩 선도국가인 네덜란드와 공동 교류 포럼을 열며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민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정책조정과장은 “최근 한국 리빙랩은 연구개발, 산업, 사회, 지역, 보건의료 전반을 혁신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부각되고 있다. 네덜란드 현황과 사례를 보며 긍정적인 공감·교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북, 지역 실정에 맞는 구축 관건 서울 북촌마을 주민과 관광객 모두의 불편 해소를 위한 기술 접목, 대전 농수산물시장 쓰레기 악취·주차난 해결, 노인·마을 복지에서 시작해 다양한 문제 해결 플랫폼이 된 성남 시니어체험관. 모두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던 지역 문제를 찾아 실정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새로운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은 사례들이다. 국내외 리빙랩 전문가들은 전북에서 시작하지만, 로컬(local·지역)에서 글로벌(global·세계)로 확장할 수 있는 지역 가능성을 리빙랩에서 찾았다. 지역민 스스로가 전문가와 함께 도시에 진짜 필요한 요소를 찾아 발전시키면서 지역 사회 구조를 변화하고 인적 역량을 키운다. 중앙 정부에서 내린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는 탑다운(top down) 구조에서 형성하기 힘들었던 자생력을 얻는 과정인 것이다. 중앙부처 역시 리빙랩을 지방자치의 단단한 밑바탕이 될 키워드 개념으로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등이 주요 사업에 리빙랩을 접목한 이유다. 하지만 리빙랩이 지역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전북지역 어떤 분야에, 어떻게 도입해야 효과적인지 진단해야 한다.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론의 형태이기 때문에 모든 분야와 지역에 일률적으로 대입해 성공하기 어려운 탓이다. 전북만의 특성을 파악해 혁신을 꾀하는 전북형 리빙랩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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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보현
  • 2019.09.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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