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을 비롯해 한국, 전 세계에서 리빙랩(livinglab)이 쏟아지고 있다. 시민이 제안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바텀 업(bottom up)’ 구조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리빙랩 1세대가 ‘붐 업(boom up)’을 일으켰다면, 다음 세대는 ‘지속가능성’과 ‘확장’을 이뤄야 할 때다. 전문가들은 리빙랩의 기술적이고 방법적인 측면에서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즉, 현재 단발적인 리빙랩 프로젝트들을 지속가능하게 확장시키려면 수행 과정에서 더욱 완성도 높고 특별한 기술·방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올해 ‘오픈 리빙랩 데이즈’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성공의 열쇳말이 바로 ‘코크리에이션(co-creation·공동창조)’이었다.
◆리빙랩 성공 관건, 코크리에이션…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코크리에이션(co-creation·공동창조)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바로 ‘오케스트라’가 아닐까.
핀란드의 라우 레아 응용 과학대학의 앤 이위 리 교수는 “코크리에이션은 개방형 리빙랩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각 분야·주체의 활동을 조정하는 데 필수적인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리빙랩은 과학과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화합입니다. 다중 이해 관계자들의 공동 창조 활동이죠. 리빙랩은 스스로 세우고 유지할 수 있는 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야 하는 실행방법론이에요.” 앤 이위 리 교수가 말한 코크리에이션이 필요한 이유다.
그는 “누구 하나 솔로가 아니라 각자의 선율이 살아있지만 어우러져 하나의 곡을 만드는 오케스트라인 셈”이라며, “꼿꼿한 소나무가 아닌 전체가 다 같이 피어나는 꽃다발이 돼야 한다”고 비유했다.
리빙랩에서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야 하는 주체들은시민·대학조직·NGO 등 개인·조직·기관을 뜻했다. 그리고 각 주체가 해야 할 일은 각자의 역량을 촘촘히 엮어 관계·신뢰성을 쌓아가는 것.
교수는 “지속적인 관계·신뢰성을 쌓으려면 네트워크를 구축해 생태계를 형성하고, 비전을 그려야 한다. 눈앞에 닥친 것만 끝마치고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리빙랩의 궁극적인 최종 목적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세계의 혁신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크리에이션 어떻게?
△지역·국가간 ‘다름’ 연구해야
노인돌봄 리빙랩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벨기에의 ‘리카랩(LiCaLab)’. 정부가 벨기에 중소기업들과 함께 2016년부터 5년간 42개 노인 돌봄 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리카랩’ 담당자 잉그리드 아드리아 센(Ingrid Adriaensen)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상 어려움·성공을 위한 방법론적 측면을 이야기했다.
그는 “협력 사업을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은 지역·국가의 의견, 특성이 누락된다. 지리적 영역, 문화적 차이의 영향을 확인하기 위한 추가 연구가 뒷받침 돼야한다”고 조언했다.
문화·생활환경 차이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리빙랩의 전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 즉 방법론, 채용 전략, 그룹 구성, 중재 및 연구 프로토콜을 정의 등 모든 협업에서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리빙랩을 진행 중인 분야가 발전하려면 다른 지역·국가의 해당 분야 리빙랩과 엮어내야 한다”고 말한 그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를 조율하고 충분히 사례 연구를 해 표준화된 제품·모델을 만들도록 했다. 이를 위해서는 20개국 36개 사업기관이 온라인 조사, 유럽리빙랩네트워크연합과 자국 네트워크를 활용한 조사, 웹사이트 공개질문방 등을 활용해 ‘다름’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 신뢰·자연스러운 동기부여 필수
시간이 지나면서 코크리에이션(공동창조)은 어려워지고, 일부는 한계를 드러낸다. 기여 동기가 부족해 프로젝트 참여율이 낮아지고, 예산 고갈에도 부딪혀서다.
에릭 슐리에트(Eric Seulliet)는 “코크리에이션의 정체·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축이 ‘신뢰’와 ‘자연스러운 동기부여(nudge)’”라고 조언했다.
에릭 슐리에트는 프랑스 ‘라 파브 리크 뒤 푸 투르(La Fabrique du Futur)’의 창립회장으로, 이 단체는 파리에서 기술과 지속가능한 개발을 연구하는 리빙랩 협회다.
그는 소수의 관계자들이 리빙랩을 독점하고 군림하는 것을 경계했다. “리빙랩의 중요 요소는 많은 시민들의 동참인데 매번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시민활동가, 리빙랩 전문가들 만 참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경쟁·질투·불신이 생기고 효과도 적고 스케일업(scale up)을 할 수가 없어요.”
에릭 슐리에트는 “신뢰를 쌓으려면 참여자 누구든 참여할 수 있게 열어두고, 다양한 정보, 연구결과·노하우·네트워크 등을 동료뿐만 아니라 실행자, 사업자, 후원자간 투명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활성화하려면 적절한 보상 등을 통해 ‘자연스러운 동기부여(nudge)’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설·실험·검증·환류 계속해야
“리빙랩의 과정은 사용 실험자와 서비스 제공자, 정책자 등 다양한 주체간 상호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결과를 예측하는 일련의 가설입니다. 그 자체가 옳은 것, 정답, 성공적인 것이 아니에요. 성공적 결과에 유사한 실험적 프레임을 연구 설계하는 것입니다.”
스위스 서부응용과학대학 (HES-SO Valais-Wallis)의 선임 연구원인 벤자민 난첸(Benjamin Nanchen)은 “무엇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가능성을 계속 예측하고 가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검증·환류도 뒤따라야 한다. 벤자민 난첸에 따르면 리빙랩 자체가 실험·테스트다. 이제는 단순히 리빙랩을 하는 것에서 나아가 결과에 대해 성과 평가·점검해야 할 때다. 그는 “우리 연구소는 리빙랩 결과를 진단할 수 있는 평가도구 개발도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이는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 한국 리빙랩에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지점이기도 하다. 포럼에 함께 참석했던 성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모든 정책 사업은 가설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똑똑한 사람이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다같이 예측해 바꿔보고 수정하고 보완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환경이 단순했던 과거에는 소수의 전문가가 예측 가능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오늘날은 너무나 불확실하고 복잡하다. 결과를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설을 통해 실험하고, 다양한 주체(시민)를 정책에 들여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 박사는 “다양한 실험과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으면 리빙랩은 의미가 없다. 국내에서도 다양한 리빙랩 사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고 있는데 단기간 성과를 재촉하기 보다는 충분히 실험하고 스스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그리스 테살로니키=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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