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나라에는 어떤 부채가 있을까?
사람 숫자보다 양들의 숫자가 10배나 많은 나라, 사계절 기후가 온화하고 공기가 맑고 깨끗한 나라에는 어떤 부채가 있을까? 뉴질랜드 주요 지역을 차를 타고 횡단할 때 신호등과 자가용이 보이지 않아 첫 번째로 놀랐고, 스쳐 지나가는 산등성이마다 점점이 박혀 있는 수많은 덩어리의 정체가 양이라는 사실에 두 번째로 놀랐다. 순간 ‘여기 부채들은 몽글몽글한 그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라는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온화한 기후의 나라인데 더위를 쫓는 부채는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그 첫 번째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캔터버리 박물관에 있는 부채를 만나보자
도슨트가 이야기하는 뉴질랜드 부채 이야기
뉴질랜드의 역사는 매우 짧다. 1870년에 개관한 캔터버리 박물관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삶과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전시하려고 노력했던 곳이다. 대부분의 박물관이 그 나라의 시대별 주요 의식주 생활에 관한 것을 전시해놓은 것처럼 여기 박물관도 입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 탈것 그리고 생활 잡화 및 수렵 채집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이주민의 삶을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했다 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원주민의 삶은 뒤처져 보이고 이주민의 생활상은 멋스러워 보이게 배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관심이 갔던 부분은 화려한 의상과 함께 부채를 전시해놓은 곳이었다. 귀족 여성들의 의상이 마네킹에 입혀져 전시된 곳은 그 화려함이 마치 중세 시대 파티장을 연상케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귀부인들의 의상과 어울리는 화려한 부채였다. 드레스, 모자, 핸드백 그리고 손에 든 부채까지 그 사치스러운 모습에서 이주민의 삶과 원주민의 삶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씁쓸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의복의 경우, 유럽의 복식 문화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흥미를 끌었던 부채는 단일 문화라기보다는 복식 문화의 일환으로서 유럽식 부채에 마오리족 특유의 장식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부채의 화려함은 사실 더위를 쫓는 기능으로서의 부채가 아닌 귀족 문화의 하나로 보인다. 우리나라 합죽선과 달리 선면을 실크나 금으로 도색하거나 골각기를 이용하였고, 부챗살도 상아나 다른 재료를 사용한 것이 많았다. 부채의 끝을 나풀거리는 실의 느낌이 나도록 표현한 것도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뉴질랜드는 품질이 좋은 옥의 생산량이 많았고, 마오리족은 이 옥을 무기나 생활용품에 접목시켰다. 마오리족은 옥을 다루는 데 매우 능숙했다고 하니 이러한 점이 부채를 제작하는 데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 듯하다. 그래서 화려한 드레스의 장신구나 신발뿐 아니라 부채에도 옥이 많이 사용됐다.
“여기 박물관에 보관된 의상을 보면 사실 부채가 귀족들의 드레스 코드에 맞추어 제작된 느낌이 많습니다. 아마도 당시엔 더위를 쫓는 그런 기능보다 멋을 내는 패션의 도구로서 사용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여기는 식민지였고, 정복 국가의 패션 문화와 마오리족의 의상은 완전히 달랐으니까요.”(캔터버리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
선자장이 이야기하는 뉴질랜드의 부채
“그 동네는 바닷가라서 조개류가 많지. 그래서 부채에 바닷가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조개류가 사용되는 것 같아. 조개를 갈아서 선면에 붙이기도 하고 모양을 내서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연꽃 모양으로 부채를 만들거나 혹은 연잎 색깔을 내기 위해 한지를 물들이기도 하거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가지고 선면에 색을 입히거나 선추를 만들거나 화려한 장식을 붙이기도 하거든. 그리고 깃털 부채도 우리 동네는 우리 동네 새들의 깃털을, 그 동네는 그 동네에 사는 새들의 깃털을 붙이겠지. 부채를 보면 대략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부챗살을 이루는 대나무도 기후에 따라 다 다르고 장식도 다 다르니까.”(캔터버리 박물관 부채에 대한 국가무형문화재 김동식 선자장의 설명)
“호주 대륙이 아시아 사람들과 인종상 연결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중국에서 넘어갔다는 말도 있고, 우리나라 부채랑 비슷한 디자인의 부채가 원형으로 있다는 말도 있고. 어떤 자료를 보면 그 대륙에 우리 태극 모양의 부채도 있다고 하는데 이 부채가 우리나라에서 넘어갔다기보다는 뭔가 중국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 대륙 부채들에서 아시아 느낌이 강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캔터버리 박물관 부채에 대한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이신입 선자장의 설명)
부채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보니 굉장히 역사가 오래됐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부채는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문화를 대표하고 있지만, 복식 문화와 연결된 부채는 귀족 문화를 대표한다.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만들어 온 이 대륙의 부채 역시 귀족 문화와 서민 문화가 결합한 형식을 보여준다.
문헌에 나오는 부채의 용도
부채는 기본적으로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는 기능, 시와 그림을 그려 넣어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 멋스러운 선추를 달거나 선면에 예쁜 색을 넣는 멋쟁이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 소리꾼의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기능, 마지막으로 친한 사람에게 주는 정중한 선물로서의 기능이 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부채는 왕실에 진상되거나 얼굴을 가리는 차면용으로 쓰이거나 뇌물로 사용되거나 예술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세종실록을 보면 왕실에 진상되는 부채가 금이나 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너무 사치가 심해지자 이를 제재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왕이 깃으로 만든 부채를 가지고 다니며 얼굴을 가리기도 하였고, 여성들이 차면용으로 부채를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선추에 사용되는 보석이 너무 비싸 폐단이 많아 이를 금하거나 합죽선의 크기가 너무 커 제한한다는 자료도 볼 수 있다.
캔터버리 박물관 자료를 보면, 이곳 부채 역시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 사용하던 부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씨 영향도 있겠지만 귀족 문화의 산물로서 작동된 부채는 대부분 부채 고유의 기능보다 복식 문화의 하나로 화려하게 만들어졌고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기록에서 보이는 부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상류층의 부채가 다수를 차지한다. 반면 서민들의 부채는 이와 매우 달라 더위를 쫓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졌고, 그 재료 역시 자연에서 조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인구의 80%가 유럽계이고 9%가 원주민인 마오리족으로 구성된 뉴질랜드에서도 박물관이나 문헌에 나오는 부채는 대부분 이주민들의 문화 속에서만 보이고 있다. 마오리족의 문화가 많이 소실되어 그들이 대중적인 생활 문화를 알 수 없음이 매우 아쉽다.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오늘은 뉴질랜드에서 만난 부채를 소개했다. 앞으로 우리 삶에 깊게 녹아 있는 부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나보고자 한다. 동화 속 손오공이 욕심냈던 파초선이라도 있다면 지금 모두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저 멀리 날려 보내련만….
부채의 자존심, 전주부채가 만나보는 부채 이야기, 기대하시라. /이향미 전주부채문화관 관장
■ 찾아간 곳: Canterbury Museum (Rolleston Ave, Christchurch Central, Christchurch 8013 Newzealand)
■ 찾아간 날짜: 2019년 1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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