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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무대를 바라보는 방법

올해 초 전북일보 시민기자가 뛴다의 원고 지필을 제안받고 약속한 다섯 번째, 마지막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이다. 지난 5개월 동안 세상은 수없이 반복되며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고, 모진 풍파 속에서도 세상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쓰는 원고 마감일은 왜 이리도 빨리 다가오는지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느낌으로 나 스스로를 쥐여 짜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이기 때문에 단어 하나와 문장 한 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수없이 글에 옮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마치 공연을 만드는 연출가의 자세로 글을 써왔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여 진다는 것,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말 일수 있으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나와 같은 예술가에겐 이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을 것 같다. 평생을 타인 앞에 서서 나를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니 말이다. 아마도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외줄 타기를 하는 곡예사의 심정과 같지는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때론 예술가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볼 때가 많다. 그리고 항상 생각한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이렇게 나는 어느 순간 공연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에 대해 점차 배워 나가고 있었다. 현재 우리 지역은 전북문화관광재단 주최로 전라북도 공연예술 페스타(festa)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2017년부터 진행된 본 사업은 본래 전라북도 무대공연제작 지원 사업에서 시작되어 현재와 같은 페스티벌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되었다. 지역 내 다양한 장르의 공연예술 단체들이 창작 초연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는 사업으로 다양한 방법과 시도로 지난 3년간 여러 작품들이 출품되어 지역 내 활발한 창작 활동이 이어질 수 있었다. 심지어 최근엔 대기업에 지원을 받아 서울에서 공연이 이루어지는 작품도 점차 생겨나고 있다. 본 사업에서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상황들을 관찰할 수 있다. 작품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고 배우가 돋보이는 부분도 있으며, 단체마다 새로운 도전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상황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특별히 이 중에서 공식 연출가로 이름을 알리는 초연 작품에 집중했다. 많은 공연을 모두 찾아다니며 볼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챙겨 볼 수 있었던 작품은 소리꾼 출신 연출가 송봉금의 꽃 찾으러 왔단다였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몹시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다. 아마도 나뿐만이 아닌 여러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하던 공연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무엇보다 나는 나와 같은 소리꾼 출신의 연출가가 탄생된다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여성 연출가라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많은 작용이 되어주길 바랐다. 작품의 내용과 완성도가 잘 갖추어져 있었으며, 배우들의 연기 또한 수준급으로 잘 정돈되어 있어 여러 방면에서 송봉금 연출이 대견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작품들이 궁금해지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작품을 하고 있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몹시 부럽기도 하였다. 오늘만큼은 그들이 주인공인 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느끼고 있을 성취감이 무엇보다 내겐 절실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대중 앞에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 한편 그들은 작품이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아주 많이 불안하고 두렵고 떨리진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인 다는 것 자체가 아마도 헐벗은 모습으로 세상에 홀로 서있는 심정은 아니었을까? 혹여 죄를 지은 심정으로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심정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그동안 예술을 대했던 방법과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보진 않았을까? 라는 혼자만의 상상을 해보았다. 사실 내가 그러했다... 작품을 하나둘씩 만들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항상 느끼는 감정들이었으며, 창작의 시간은 점차 예술에 대해 점점 철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생각된다. 무엇보다 작품을 만들면서 그동안 다른 공연들을 무의식적으로 평가하고, 비방해왔던 모습들을 반성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작품을 스스로 만들어 보면 많은 부분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공연엔 완벽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공연을 진행하면서 단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예술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관객에게 들키지 않음으로써 우린 좀 더 완벽한 공연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데, 결국 예술가는 공연 중 관객이 발견하지 못한 작은 실수라 하더라도 누구보다 자신의 실수를 잘 알고 있기에 그 상황을 자책하고 고뇌하며 또다시 완벽한 공연을 위해 연습을 반복한다. 그리고 또다시 나를 보여주기 위해 관객 앞에 서기를 준비한다. 수많은 연습의 과정을 거쳐 완성된 무대, 관객에게 무대는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동시에 예술가에게 무대는 어떤 존재였던가?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언제부터인가 무대라는 공간이 평가를 하는 시험대가 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웃고 즐기는 표현의 모습이 있어야 할 공간이 어느덧 평가를 하게 되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성공과 실패만 인식되는 공연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에겐 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연스러운 예술이 필요하다 이야기 하고 싶다. 그리고 이젠 결과 중심보다 과정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봐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꼭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이제부터 예술가도 관객도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누군가에게 보여 진다는 것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음으로써, 진짜 예술을 만들어 내는 힘과 예술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길러지길 바라며 그동안의 시민기자가 뛴다의 글을 마무리 해본다. /이왕수 문화예술공작소 예술감독전주문화재야행 기획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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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9.02 16:32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5. 커피와 부채

△<커피노블레스> 커피 볶는 남자 최희광의 전주를 보다 커피 볶는 사람 최희광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의 드립 커피로 커피에 입문하게 된 그는 원두 도매사업을 거쳐 CoE(Cup of Excellence)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생두를 구매하고, 이제는 카페를 열어 커피를 직접 볶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보겠다는 욕심에 직접 선택한 생두 볶는 작업이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바리스타보다 커피 볶는 사람으로 불리길 바란다. 커피 볶는 사람으로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커피의 역할에 대한 몇 가지 팁을 준다면 싫어하는 사람과 커피를 마시게 된다면 바닐라라떼를 마셔라. 달달한 천연 바닐라 시럽이 들어 있어 마음을 달콤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애인과 싸웠다면 아포카토를 주문하라.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진하게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끼얹어 만든 아포카토를 먹다 보면 얼어 있던 마음이 살살 녹아내릴 것이다. <커피노블레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이자 가장 힘들었던 고객은 故 김충순 화백이다. 김 화백은 에스프레소에 매우 조예가 깊어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쓰면 정확히 짚어내며 지적했다. 핸드드립이나 사이폰커피도 좋아하지만 그 역시 김 화백처럼 에프프레소를 제일 좋아한다. 아침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아내에게 내려주는 그는 주님 위에 마눌님이라고 주장하는 애처가이다. 맛있는 에스프레소와 따뜻한 물이 만난 아메리카노. 마시기에 무난하고 대중적이며 만들기도 쉽지만 고객들의 평가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메뉴를 아내에게 매일 아침 내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마눌님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다가가기 힘든, 그래서 매일 애정을 쏟아 공략해야 될 최고의 고객이기 때문 아닐까? 안행로 46번지에 알콩달콩 둥지를 튼 그는 이제 전주 사람이 다 된 마눌님과 전주를 보며 살고 있다. 그의 카페 한편에는 그런 그들을 사진작가 유백영이 담아내고 故 조충익 선자장이 만든 부채, 전주를 보다가 예쁘게 내려다보고 있다. 항상 행복하시라. △<한옥마을 커피로드> 바리스타 강정희의 바람 엄재수 선자장의 부채 위에 그려진 윤명호 화백의 산수화, 故 조충익 선자장의 태극선, 선자장 방화선이 작업한 유대수의 판화 부채, 혼불 시리즈, 수많은 시집과 음반들. 피아노를 전공한 바리스타 강정희는 음악과 커피가 있는 예술 공간을 늘 꿈꿔왔다.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만이 아닌, 향기와 음악과 사람이 있는 카페는 그녀의 오랜 이상이었다. 고객들이 좋은 음악을 즐기고, 좋은 작품을 감상하고, 편안한 시간을 즐기기를 바리스타 강정희는 소망한다. 그래서인지 햇볕이 좋은 그녀의 카페는 황금빛 조명을 사용하여 더 밝고 안온하다. 꽃 피는 봄이면 코스타리카 따라주를 마셔보자. 상큼하고 산뜻한 신맛이 봄과 어울린다. 아이스로 마시기에 좋은 신맛이 나는 케냐AA는 여름이 제격이다. 부드럽고 우아한 와인의 맛과 향을 가진 자마이카 블루 마운틴은 다가오는 단풍의 계절에 마셔보자. 그리고 눈이 내리는 겨울엔 에티오피아 시다모를 권한다. 깊고 묵직하며 진한 커피의 맛은 내면을 성찰하게 해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은 브라질 카파라오를 마셔라. 신맛이 적고 달콤한 초콜릿 맛과 고소한 호두 맛이 혼재되어 있는 중성적인 커피이다. 바리스타 강정희가 제일 사랑하는 커피는 무엇일까? 콜롬비아이다. 의외다. 부드러운 신맛과 쓴맛, 진한 초콜릿 향과 단맛이 조화로운 커피이며 다른 지역 커피들의 강한 맛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블렌딩이 쉽기도 하지만 카페를 오픈하자마자 단골이 되어 준 손님이 자주 마시는 커피라 좋아하게 되었지요.라고 이유를 밝힌 그녀는 역시 커피보다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크게 웃지도 않고 입가에 미소만 짓는 그녀의 카페에는 늘 행복한 바람이 감돈다. 판화가 유대수의 작품 바람처럼. △<재하로스터리카페> 장재하의 남은 자들의 몫 칼디의 염소가 먹었다는 커피, 수도승이 마셨다는 커피. 약차에서 시작한 커피는 귀족의 전유물에서 이제는 가장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로 출발한 부채 역시 귀족적 예술품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 카페에 있는 부채를 보러 갔다가 커피와 부채의 역사, 커피와 부채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커피와 부채는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인류의 필수품으로 출발하였고, 문헌상 기록을 보면 귀족문화의 하나로서 사치품과 예술적 가치로 호사를 누리다가 현대에 이르러 모든 사람들의 기호품으로 대중화되었다는 점이 있다. 선풍기나 에어컨의 강한 냉기보다 부채의 적당하고 은은하게 흐르는 바람이 마음을 식혀주듯, 커피 또한 향이 강한 커피보다는 은은한 커피가 여유를 줍니다. 부채를 부칠 때 힘껏 부치다 보면 어느새 시원함은 고사하고 더위만 남게 되거든요. 커피도 향이 좋다 하여 너무 강하게 볶으면 몸에 좋은 성분들은 사라지죠. 요즘은 커피를 너무 세게 볶습니다. 세게 볶으면 향이 강해서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커피 본래의 기능인 약으로서의 좋은 성분은 사라지고 강한 풍미만 남게 됩니다. 강한 풍미가 있는 커피를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게 되었지만 저는 커피의 본질적인 기능을 되살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연구하고 시음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어커피입니다. 어커피는 커피 씨앗에 들어 있는 약 성분을 추출하여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면서 마음의 여유를 추구하고자 만들었습니다. 과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적당한 바람은 시원함을 주고 적당하게 로스팅된 커피는 건강을 줍니다. 어? 커피? 어! 커피! 폭우가 쏟아지던 날,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차분히 앉아 마시니 어커피 고유한 맛이 마음속 깊이 편안함을 준다. 2019년 11월에 작고한 故 김충순의 마지막 작품으로 김 화백이 남은 자들의 몫이라며 툭 던지듯 주셨다는 부채가 카페 한편에 걸려 있다. 여느 작품보다 붉은색이 강하고 한껏 아름답게 표현한 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남은 자들의 몫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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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9 16:14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미리보는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미디어-온라인 공연 5選’

올해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미디어-온라인 공연으로 방향키를 잡은 지 두 달 여. 지난 7월 16일 프로그램발표회를 통해 코로나19 여파를 미디어-온라인 특별기획 5選으로 극복하고, 특히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우리나라 IT기술과 접목해 실시간 해외 콜라보를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었다. 예상보다 언론 및 여론의 관심과 기대는 뜨거웠다. 개막공연의 경우, 어떻게 해외 콜라보를 실시간으로 구현할 것인지, 그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지 질문이 이어졌다. 몇 년 사이 소리축제의 개막공연은 집단 즉흥에 가까운 월드 시나위 형태의 공연을 선보이면서, 일종의 소리축제만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소리축제여서 가능하다는 좋은 평가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다른 역사와 전통의 배경 속에서 탄생한 악기와 음률, 리듬, 연주기법 등을 어떤 질서와 차례에 맞추고 플롯을 짜, 하나의 완성된 음악으로 보여줄 것인가는 능숙한 작편곡 능력과 연출, 무대 기술팀과의 오랜 호흡이 없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온라인을 통해 동시에 실시간 콜라보를 진행한다니, 여러 궁금증과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사실 여러 해외팀이 온라인으로 동시에 합주를 한다는 것은 아무리 IT 기술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최소 0.2초의 트래픽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축제 스태프들 역시 국내외 통틀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방식의 온라인 콜라보에 상당한 긴장감을 느끼고 있다. 이 기술적 한계, 현실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소리축제는 음악적 보완(작편곡의 묘)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축제 스태프들과 개막공연 생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전주KBS 제작팀은 방송 도중 동물의 왕국이나, 세렌게티 초원이 펼쳐질 수도 있는데 모든 스태프들이 사전에 담을 좀 키워야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시청자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굴하지 않으려고 한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초대형 글로벌 위기-코로나 19 앞에서 새로운 길, 가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용감무쌍했는지, 의미 있게 존재하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화제의 중심에 있는 개막공연과 함께 미디어-온라인 공연 5選을 짧게 소개한다. △개막공연 - 온라인 월드 시나위 __잇다 / 9. 16(수) 19:40 / 전주KBS 생방송 러시아, 독일, 슬로바키아, 대만 등 해외 13개국 9개 지역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의 특별 시나위 팀과 함께 온라인 합동공연을 펼친다. 특히 한국-러시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우파, 투바까지 거대한 러시아 연방의 다양한 공연예술의 매력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 슬로바키아, 대만, 독일, 캐나다, 이런, 세네갈, 스페인, 벨기에, 이집트, 룩셈부르크, 브라질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 연주단의 전용 포지션인 오케스트라 피트에 공연 기술팀과 해외 커뮤니케이션(기획팀)팀이 오를 예정이어서, 이 또한 이색적인 관전 포인트다. 이 공연은 연주팀과 기술팀의 합작으로 빚어낸 무대인만큼, 기술팀을 연주의 한 영역처럼 연출한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이다. 무엇보다 가장 전통적인 지역 전북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IT 기술이 결합된 첨단의 새로운 공연 형태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올해 축제의 주제이자 개막공연의 제목인 _잇다의 의미를 충실하게 만끽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현 위의 노래 / 9. 17(목) 18:20 / 전주MBC 생방송 올해 축제의 모티브인 현악기와 소리축제가 그동안 지향해 온 전통을 기반으로 한 기획 프로그램의 핵심이 이 공연 속에 녹아든다. 올해 축제의 주제의식과 차별점을 가장 잘 압축해 놓은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축제의 주요 모티브인 현악기,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한 줄과 이음의 포괄적인 연상을 이 공연 속에 다채롭게 담아낸다. 특히 명인들의 전통 산조부터 동서양 현악기(가야금-첼로)의 이질적이면서도 독특한 만남, 그리고 아쟁판소리와 함께 무대에 오를 줄타기 공연이 이채로운 그림을 만들어낸다. 아쟁 김영길, 판소리 최영인, 줄타기 박회승, 고수 조용안이 세대 간 호흡을 맞춰 눈과 귀가 즐거운 새로운 공연을 선보인다. 여기에 가야금 지성자 명인과 제자들, 첼로 아마티 첼로콰르텟이 호흡을 맞춰 산조와 바흐에 이르는 동서양 대표적 레퍼토리로 이색적인 하모니를 선사한다.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자가 한 팀을 이룬 달음은 탈춤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탈(TAL)이라는 곡을 연주한다. 마지막 무대는 판소리, 장구, 거문고, 대금, 피리, 아쟁 등 20여 명의 전통악기 연주자와 소리꾼이 출동해 현악기 중심의 전통즉흥 시나위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폐막공연 전북청년 음악열전 / 9. 20(일) 15:00 / JTV 생방송 코로나19를 넘어서기 위한 우리지역 예술가들의 시끌벅적 뜨거운 난장이 펼쳐진다. 젊은판소리 다섯바탕을 통해 매년 주목받는 신예 소리꾼들을 소개해 온 소리축제. 올해 폐막공연에서는 이들 젊은 소리꾼 5명을 필두로 전통음악, 락, 클래식 등 장르 불문 즉흥 시나위공연을 선보이며 침체된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코로나19의 파고 속에서 무대 기회를 빼앗긴 우리지역 젊은 뮤지션들에게는 살풀이와도 같은 무대이자,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정체된 열정과 패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판소리 다섯바탕의 주요 대목을 새롭게 편곡한 곡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60여 명의 출연진들이 커다란 음악적 흐름 속에서 스스로의 포지션을 찾아가며 전통 시나위의 즉흥성을 새로운 음악적 질서로 재편해낸다. 장르/악기만 해도 대금, 아쟁, 해금, 가야금, 피리, 태평소, 장구/타악, 기접, 꽹과리, 모듬북, 보컬, 드럼, 피아노, 미디, 키보드, 베이스,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 베이스, 색소폰, 트럼펫, 금관악기, 퍼포먼스 등에 이른다. 소리축제가 아니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연출될 예정. 이밖에도 ▷KBS 한국인의 노래 앵콜 로드 쇼 / 9. 18(19:00), ▷CBS와 함께 하는 별빛콘서트 / 9. 19(17:00)가 온라인 공연(페이스북, 유튜브 라이브)으로 준비된다. 보통의 일상과 꿈을 잇는 노래 이야기 한국인의 노래-앵콜 로드 쇼는 우리지역과 인연이 깊은 정보권, 김준수 등 국악 아티스트들의 노래와 숨은 사연들을 엮어 그들의 새로운 면모를 조명할 예정으로, 힘든 시기를 헤쳐가고 있는 모든 음악가들에게 꿈과 위로를 전할 계획. 소리축제를 대표하는 대중 프로그램으로 중장년층의 압도적인 지지와 사랑을 얻어온 CBS 별빛 콘서트는 올해 실력과 가창력을 두루 겸비한 젊은 뮤지션 손승연과 헤리티지 매스콰이어, 지역합창단이 꾸미는 위로와 힐링의 무대로 새롭게 꾸며질 예정이다. CBS 보이는 라디오와 온라인을 통해 중계된다. 이밖에 ▷전라북도 초중고교 찾아가는 소리축제 / 10. 21~23, 10. 26 (남원, 익산, 군산, 임실)는 상호 협의가 된 일부 학교에 한해 진행될 예정이다. 미디어온라인 5選으로 치르는 사상 초유의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내년 축제 20주년과 코로나19로 인한 공연계의 변화를 앞두고 올해의 이 실험은 뜻하지 않게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올해 축제가 축소되었어도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축제 현장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많은 도민들과 관객들이 방송과 온라인을 통해 함께 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끝> /김회경 전주세계소리축제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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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12 16:09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5

이 시대의 여름나기, 책방에서 보내는 휴가 어때요? 이 시대의 여름, 축제는 없지만 휴가는 있다. 두꺼운 책처럼 막막한 일상을 잠시 접고 떠나고 싶을 때, 조용히 혼자 다정히 둘이 혹은 사이좋게 여럿이 어딘가를 탐색하고 싶을 때, 꼭 가봐야지 찜해뒀던 작고 특별한 공간들 중 빼놓을 수 없는 동네책방이 생각날 때, 수줍은 혹은 수다스러운 책방지기가 기다리고 있는 전주 책방 10곳으로 작은 휴가를 떠나보자. △혁신도시에도 책방이 생겼다 전주 혁신도시 엽순공원 앞 한 건물 2층에 오래된 새길이라는 책방이 둥지를 틀었다. 방송기자 출신 정진오 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작은 책방이라는 말이 쏙 들어가게 책이 참 많다. 마치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이곳엔 인문사회과학에서 종교서적까지 8천 권 가량의 새 책과 헌책이 넉넉하게 펼쳐져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맘껏 책 좀 읽고 싶어서 급기야 책방을 열고 말았다는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아무리 영상매체가 발달해도 책을 집어 들지 않으면 존재의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래된 새 길을 찾는다. △전라감영 앞엔 에이커와 카프카 전라감영길을 지나면서 이 책방들에 안 들르면 손해다. 바로 앞 편의점 건물 3층 계단을 올라가면 전북 최초 독립출판물 전문책방 에이커북스토어가 있어서다. 독립출판은 원고부터 제작, 유통, 홍보까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만드는 책을 말한다. 이명규 대표는 한정판이라 때를 놓치면 더 이상 구하지 못하는 책이 많다고 말한다. 일반 서점이나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립출판물이 성실히 진열되어 있는 이곳은 독립출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명규 대표가 말하는 책방 운영의 짠내 나는 슬픔과 그럼에도 기쁜 이야기를 담은 독립출판물이 곧 출간된다하니 기대해보자. 에이커에서 나와 완산경찰서 옆길로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 왼편에 나무로 만든 계단이 눈에 띈다. 삐그덕삐그덕 한발 한발 올라가면 책은 우리 안의 얼음을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과 정신을 책으로 큐레이션한 서점 카프카가 있다. 소설가 강성훈 씨가 운영하는 이곳에는 다양한 공부모임과 창작모임이 있어 찾아오는 매니아층이 두텁다. 문학전문서점답게 시, 소설, 산문집 등 충실히 선별된 목록도 돋보인다. 카페도 겸하고 있어 한나절 머물기에도 좋다. 통유리창에 붙은 긴 책상에 앉아 그에게 추천받은 소설 책 한권으로 마음을 보살펴보자. △청년몰의 뚝심 책방 토닥토닥 책으로 몸과 마음을 토닥여주는 작지만 큰 책방을 꿈꿔요!전직기자 문주현 씨와 인권활동가 김선경 씨가 운영하는 책방 토닥토닥은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있는 짱짱한 책방이다. 3.5평 작은 우주로 시작했지만 올가을 12평쯤 되는 좀더 큰 세계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몰 카페 나비였던 자리로 옮겨 책을 읽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안락한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 뚝딱뚝딱 오늘도 공사 중이다. 3.5평의 원래 책방도 그대로 운영 중. 독립출판물과 인문사회, 철학, 문학, 그림책 등을 판매하며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 △송천동의 다정한 두 얼굴 20년차 카피라이터의 위엄과 따수운 넉살로 송천동 골목을 휩쓸고 있는 잘 익은 언어들의 이지선 대표. 책을 읽는 이유는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해서이자 더 나은 우리를 만들기 위함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오랫동안 읽고 쓰기를 지속하면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인문사회서적을 포함한 문학, 그림책, 동화,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이 책방 가득히 꽂혀 있는 책방은 모든 책을 망라한 책 점빵을 떠올리게 한다. 전주책방 10곳이 모인 전주책방네트워크의 회장님 아닌 이장님으로 좀더 나은 전주 책방 생태계를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로 뛰고 있는 이지선 대표가 펼쳐 보일 잘 익은 책방들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이번엔 송천동의 소소당으로 가보자. 노란 불빛의 서점이라는 책의 그곳처럼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불빛을 따라 들어가면 책장 가득한 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두세 명의 손님과 책 넘기는 소리, 커피와 꽃차 향기가 발길을 붙든다. 김정숙 대표는 지역주민들의 문화센터가 되길 꿈꾸는 우리 책방은 원데이클래스와 모임장소으로도 계속 공간의 반경을 넓혀가는 중이라 말한다. 잔정 많은 주인장이 있는 따뜻한 카페이자 근사한 서재가 있는 이곳에서 소소한 휴가를 보내보자. △하가지구 골목을 살리는 책방 덕일초등학교와 덕일중학교 사잇길에서 마을쪽을 바라보면 흰 바탕에 검정글씨가 정갈하게 박힌 살림책방 간판이 보인다. 전주 객리단길에서 만났을 법한 소품샵 같은 깔끔한 공간인데 들어서면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테이블에 앉아 드립커피를 맛볼 수 있고, 마루에 올라가 그림책을 고를 수도 있다. 전주 책방에서 가장 굿즈(상품)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종이를 만지며 느껴지는 촉감의 미덕을 아는 홍승현 대표는 대전 출신이지만 전주가 좋아 이곳에 터를 잡고 책방을 열었다. 책으로 지역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작은 골목을 지나 책방 곳곳 묻어나 있다. △금암동에 산다면 책방에서 놀지! 우리들의 지적놀이터로 놀러오세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선후배 5명이 모여 금암동 골목에 카페형 서점 책방놀지를 만들었다. 한적한 동네에서 음료를 매개로 책을 소개하는 책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곳은 인문사회서적과 문학서적을 갖추고 있다. 책방놀지 운영진은 지식을 공유하는 오프라인 플랫폼이자 책을 매개로 한 문화공간이라고 말한다. 아시아 사회문화를 탐구하는 연구소와 1인 출판사도 겸하고 있다. 책방놀지가 엄선한 제철 음료를 마시며 인문학 책 한권 즐기는 것도 좋겠다. △그림책은 같이 읽어야 가치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품은 한 권쯤은 있다는 것이 책방 같이[:가치] 대표들의 지론. 오랫동안 그림책을 좋아하고 공부해온 특별한 자매가 더 많은 이들과 읽고 보는 기쁨을 나누고자 서학동에 책방을 냈다.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부터 제대로 읽는 방법과 다양한 활용법까지 세심하고 촘촘하게 알려주는 북큐레이터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책방을 나오는 길에 본 서학동마을 풍경이 조금 더 그림처럼 보일 것이다. △선미촌에 새 물결을 부르는 책방 전주에 사는 청년작가 7인이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골목에 작은 예술책방을 열었다. 대안과 답지가 필요한 이곳에 새로운 물결을 부르고 싶어서다. 책방 이름은 물이 좋은 동네라는 서노송동 물왕멀길의 지명을 살린 물결과 서점을 뜻하는 옛말 서사를 합쳐 물결서사라 지었다. 문학, 음악, 영화, 사진, 그래픽노블 등 새 책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과 시민들이 기증한 귀한 헌책을 만날 수 있는 공유책방도 있다. 예술인 워크숍과 시 낭독회, 영화상영회 등 재미있는 일도 자주 꾸민다. 예술인과 시민들이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꾸준한 책방의 서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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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8.05 15:02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국악의 꿈나무가 되어 주세요"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던 나는 어릴 때부터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혼자 있는 시간 동안 나는 언제나 비디오 영화나 녹화해둔 지난 방송을 돌려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당시 비디오 플레이어가 있었던 가정은 모두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지나간 방송을 다시 보기 어렵던 시절, 보고 싶은 방송을 비디오테이프에 녹화해두는 경험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가 당시엔 일상이었으나 현재는 불법이 되어버린 추억이다. 내가 판소리에 관심을 갖던 시기도 이 시기와 맞물려 있다. 국악을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당시에 다녔던 초등학교가 국악 특성화 학교라 전공을 하진 않았지만, 국악의 울타리 안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남자 소리꾼이 판소리를 부르는 방송을 발견하고 긴급히 비디오 플레이어 녹화 버튼을 눌렀다. 비록 앞부분은 아쉽게 잘렸지만 나름 만족스러운 분량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곤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다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서 그 소리를 한참 동안 듣고 외우기를 몇 날 이렇게 나는 앞머리가 잘린 사철가를 테이프 선생님을 통해 처음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혼자만의 판소리 놀이는 몇 해를 더 이어 갔다. 비록 엉성했지만 이젠 제법 아는 소리도 많이 생겨나고 나름 어른들 앞에서 선보일 수 있는 장기자랑 수준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없이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나는 14세에 판소리를 전공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의 첫 번째 소원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판소리 신동 유태평양의 역할도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당시 그가 최연소의 나이로 판소리 흥부가를 완창함으로써 전국적으로 국악의 붐이 일어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로 인해 피겨 꿈나무가 많이 생겨났듯이 당시엔 국악 꿈나무가 많이 탄생하는 시기였다. 생각해 보면 내가 국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전공을 시작했던 그 시기가 국악의 전성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1993년 한국 영화 최초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1994년 국악의 해를 맞이하면서 점차 국악의 대중화에 박차를 더하며 노력의 결실을 얻어 내고 있던 시기였다 생각된다. 물론 오래전부터의 국악을 지키고자 했던 선생님들의 숭고한 노력이 기반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도 당연히 잊지 않고 있다. 돌이켜 보면 당시 각 초중고등학교에 사물 놀이반이 없는 학교가 없었으며, 리코더보다는 단소를 더 많이 불던 학교생활의 기억이 생생하다. 또한 각 지역에 예술고등학교와 대학교에 국악과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학과로 생각하며 살아왔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우리 지역의 대학을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국악과 및 한국음악과의 간판이 하나둘씩 내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학이 국악을 포기하는 시점이었다. 결국 나도 대학을 졸업하는 동시에 국악을 포기했다. 어린 시절 국악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꿈나무는 결국 현재 다른 방향의 진로를 선택하여 살아가고 있지만, 당시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골방 연습실에서 고독하게 지내야 할 날들이 몹시 두려웠던 것 같다. 결국 먹고사는 문제였고, 그렇게 타협하는 과정 속에 국악을 포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자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큰 꿈을 품고 시작했던 나의 첫 번째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으며, 나와의 싸움에서 패배하는 순간이었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약속도 저버리는 순간이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국악 전공자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점차 대중에게는 멀어져만 가고 있는 느낌이다. 요즘 대세인 트로트처럼 열풍이 한번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국악 전공자들이 트로트 분야로 전향하는 시점이니 상황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거라 생각된다. 그들을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역시도 국악을 알리기 위해 트로트 전선에 뛰어들어 국악 전도사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그만큼 국악으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굴복할 국악이 아니다. 그 와중 여러 스타급 국악인들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여러 시도를 통해 현대적 국악을 만들어 내어 선전하고 있으며, 무수히 많은 창작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시점이다. 심지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소리꾼은 흥행에는 다소 성적이 부진했지만 판소리의 예술성을 알리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으며, 현재도 국악을 알리는데 고군분투 중이다. 마치 이러한 시도들이 1970년~90년대 국악의 붐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셨던 옛 선생님들의 이야기와 많이 닮아 있는 듯하여 앞으로의 국악의 미래도 또다시 기대해볼 만하다 생각하는 바이다. 지난날 국악을 시작했던 국악 꿈나무들은 지금쯤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도 해당 분야에 남아서 전공을 넘어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을지, 아니면 일찍이 진로를 변경해서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모두가 자신의 선택에 만족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서 꿈꿔 왔던 꿈은 그 누구보다 찬란하고 희망찼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더라도 당시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이왕수 문화예술공작소 예술감독전주문화재야행 기획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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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9 16:03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4. 그 여자들의 무기 ‘부채’

〈소리여〉, 그 여자들에게 있어 부채는 가장 큰 무기이자 힘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리에 입문해 짧게는 이십여 년 길게는 삼십여 년간 소리를 하는 다섯 명의 여자들이 있다. 서울, 경상, 전라남도, 전라북도 이렇게 서로 다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스무 살 이후부터 소리의 고장 전라도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고 있다. 부채는 기본적으로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는 기능, 시와 그림을 그려 넣어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 멋스러운 선추를 달거나 선면에 예쁜 색을 넣는 멋쟁이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 친한 사람에게 주는 정중한 선물로서의 기능, 마지막으로 소리꾼의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기능이 있다. 소리꾼 다섯 여자에게 부채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그 네 번째로, 〈로컬소리단 소리여〉 다섯 여자들과 부채에 얽힌 이야기를 만나 보자. #소리꾼 김민선의 부채 이야기 비나이다, 비나이다, 형님전의 비나이다. 쌀이 되거든 한 말만 주시고, 보리가 되거든 두 말만 주시옵고, 부채가 되거든 열 자루만 주시오면, 여러 날 공연할 동기들을 구원을 하여 살리겄네다. 제발 공연할 때 부채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게 비나이다. 소리꾼 김민선은 전주에서 나고 자랐다. 열여덟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흥보가』 中 흥보가 놀부에게 비는 대목이다. 소리꾼 김민선에게 부채란, 절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스무 살 때 일이다. 열여덟, 다소 늦은 나이에 소리에 입문한지라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정식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신입생 연주회는 피해 갈 수 없는 일. 근 한 달 넘게 똑같은 곡을 동기들과 연습했다. 처음 하는 민요, 처음 하는 발림. 실수 연발이라 선배들의 지적이 끝없이 이어졌다. 멀쩡히 잘 되던(잘되던) 소리와 동작이 발림만 나오면 긴장되고 떨려서 계속 신경이 쓰였다. 결국, 공연을 하던 중 손에 든 부채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옆에서 노래하는 동기들 눈치, 객석에서 뚫어져라 응시하는 관객들 눈치를 살피며 자기 딴에는 아무도 모르게 부채를 주어서 다시 공연에 임했다. 물론 공연 후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깨진 건 안 비밀. 지금이라면 그냥 부채 없이 손동작으로 공연을 이어 갔을 텐데. #소리꾼 문모두의 부채 이야기 춘향이 간신히 정신 차려 어사또를 바라보니, 옥문 밖에 거지 되어 왔던 낭군이 분명쿠나. 마오, 마오, 그리 마오. 야속하고 독헙디다. 동원에 새봄이 들어 부채가 날 살렸네. 소리꾼 문모두는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삼십 년을 보냈다. 지금은 완주에 터를 잡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춘향가』 중 춘향이와 어사가 만나는 대목이다. 소리꾼 문모두에게 부채란 군인에게 있어 총과 같은 존재이다. 지호와 주호는 문모두의 제자다. 아이돌과 트로트에 빠져 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민요와 판소리를 좋아하는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들이다. 연습생이 되어 일 년 정도 되었을 무렵 대회에 참가했다. 소리도 소리이지만 너름새 또한 점수에 포함되는 것이 경연 대회이다. 소리 지도와 함께 부채를 들고 표현하는 발림 연습을 쉬지 않고 했다. 그런데 왼손 발림을 하고 양손 모두 들라고 하면 한 손만 들지 않나, 부채를 들어야 하는 발림 과정을 그냥 패스하질 않나. 덜렁댐은 기본이고 장난은 부가적으로 장착하고 있는 초등 남자아이들에게 소리 끝의 마지막 부분, 부채를 펴는 발림은 최고의 난도를 가졌다. 대회 당일, 스승의 고급스러운 합죽선을 손에 쥔 요 녀석들, 국가무형문화재라도 된 듯 으스대더니, 결국은 선생님, 부채가 찢어져 버렸어요. 하는 것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더니, 대회는 아랑곳하지 않고 네 것이 좋네, 내 것이 좋네 부채 전투를 벌이던 녀석들의 손에는 처참하게 찢어진 스승의 애정부채가 들려 있었다. 소리꾼에게 합죽선 부채는 군인의 총과 같은 법. 방아쇠는커녕 장전 한 번 못해보고 전투를 마친 녀석들은 그 이후 일취월장해 부채 발림도 능숙해지고 소리 실력도 크게 늘었다. 애꿎은 스승의 부채만. #소리꾼 이경래의 부채 이야기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열흘 가고 한달 가고, 날 가고 달이 가고, 해가 지낼수록이 임의 생각이 뼛속에 든다. 소학 대학 예기 춘추 모시상서 백가어를 역력히 외어 가다 나까지 다 잊어버리셨구나. 소리꾼 이경래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세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춘향가』 중 춘향이 이몽룡 그리워하는 대목이다. 소리꾼 이경래에게 부채는 인생의 커닝 페이퍼다. 이경래는 초등학교 6학년인 열세 살에 소리를 처음 접했고, 첫해에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무대 울렁증에 판소리의 그 기나긴 내용들은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아무리 눈을 부릅떠도 가사가 생각나지 않았다. 어찌어찌 그 무대는 마무리되었지만, 첫 무대의 실수는 트라우마가 되어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가사를 한두 구절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자 선배들이 부채에 잘 잊어버리는 대목을 적어.라고 조언해 주었다. 소위 말하는 커닝 페이퍼다. 새끼손가락 너비에 한 뼘 길이의 합죽선에 나만의 방식으로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서 무대에 다시 섰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일까? 커닝 페이퍼 한번 보지 않고 무사히 소리를 마쳤다. 믿는 구석이 생겨서인지 그 뒤로는 가사를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마칠 수 있었다. 지금도 중요한 무대에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살짝 적바림을 하기도 한다. #소리꾼 이경화의 부채 이야기 추월은 만정허여 산호 주렴을 비치어들고, 심황후 기가 맥혀 기러기 불러 말을 헌다. 울고 오는 저 기럭아, 너 무삼 설움 있어 저리 슬피 울고 오느냐. 도화동 우리 부친 내게 부채 선물한 소식 전하고자 우느냐. 소리꾼 이경화는 경상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세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스물두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심청가』 중 추월만정이다. 소리꾼 이경화에게 부채는 버팀목이자 사랑이다. 이경화는 최근 셋째를 낳았다. 선녀가 아이 셋을 낳고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동화처럼, 그도 셋째를 임신하고 나서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내가 이제 무대에 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가끔 우울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시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다. 시아버지는 소리하는 며느리에게 매우 특별한 선물, 합죽선을 주셨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과 선면에 그려진 그림 또한 멋졌다. 부채를 받자마자 열망이 생겼다. 더 큰 무대, 더 좋은 활동을 해야겠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이경화는 시부가 주신 그 부채로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으로 입상했고, 지금도 그 부채를 들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시부가 주신 부채는 그냥 부채가 아닌 이경화 소리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사랑이다. 부채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던 삶에 대한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소리꾼 최수아의 부채 이야기 주막에 들어 잠잘 적에 뺑덕이네 몹쓸 년은 주막 근처 사는 봉사 중에 제일 젊은 황 봉사 부채를 벌써 꾹 찔러 약조허여 주막 딴 방에 두었다가 심 봉사 잠든 연후에 둘이 손을 마주 잡고 밤중에 도망을 허였구나. 소리꾼 최수아는 전라남도에서 나고 자랐다.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해 서른 해를 보냈다. 가장 좋아하는 소리 한 대목은 『심청가』 중 황성 올라가는 대목이다. 소리꾼 최수아에게 부채는 인생의 동반자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소리에 입문해 서른까지 공부도 하고 단체에 속해 일도 하고 보냈다. 그러다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소리를 쉬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며 소리를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힘에 부쳤고, 10여 년의 공백기가 생겨 버렸다. 마지막 무대에서 사용했던 부채는 늘 책상 서랍에 접힌 채 놓여 있었다.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는 부채를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좋지 않았고, 판소리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 갔다. 소리꾼이 부채를 마주하는 때는 무대에서 소리를 할 때이다. 연습할 때 주로 부채를 사용하는데 부채를 펼칠 때면 늘 떨리고 긴장되었다. 부채가 촤~악 펴지면서 파르르 떨리는 진동은 소리꾼에게 적당한 긴장과 에너지를 준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족들과 지인들의 응원과 격려를 발판 삼아 3년 전에 다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시 꿈같은 무대에 서게 된 것이다. 무대에 서기 위해 한복을 새로 맞추고 부채도 새롭게 마련했다. 최수아에게 있어 합죽선을 새롭게 마련하기 위해 나선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펴보고, 펴지는 소리를 들어보다가 손에 착 감기는 그 느낌에 그녀는 울어버렸다. 아, 이렇게 다시 만나는구나, 다시는 손에서 부채를 놓지 말아야겠다. 계속 소리꾼으로 살아가리라. 중년이 다 된 여자가 부채 한 자루를 들고 애틋한 눈으로 연인 보듯이 울고 있으니 남들 보기엔 얼마나 의아했을까마는 최수아에게 있어 그날의 울컥함은 소중히 간직할 다짐이자 약속이었다. 나에게 만남, 이별, 설렘, 긴장 그리고 행복을 주는 부채야, 영원히 함께하자. ■ 글: 이향미(전주부채문화관 관장) ■ 찾아간 곳: 전라북도 완주군 모두소리전수관 & 전주시 수아소리연습실 ■ 찾아간 날짜: 2020년 7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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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22 16:27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 시대, 다시 생각하는 문화예술의 가치와 의미

△소용돌이치는 이념과 체제, 인식의 담론들 다양한 분야의 세계 석학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을 진단하고 있다. 대체로 인식의 대전환, 그리고 실천의 힘이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전제는 각성과 집단지성을 발휘한 실천의 연대라고 입을 모은다. 이 전제가 지구촌 코스모폴리탄인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한 꾸러미로 묶인 세계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이다. 코로나19는 이른바 미국을 벤치마킹해 발전시킨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富의 축적과 분배의 불균형 또는 양극화의 폐단)를 만들어냈다. 나는 이 담론이 우리사회에 매우 거세고 거대한 이슈로 이어져 사대주의와 다를 바 없었던 이 벤치마킹의 허울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다시 보고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개발과 보존, 자연과 인간,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세계열강에 대한 재평가, 보호주의와 자유주의, 세계화와 반세계화, 동양과 서양, 유색인종과 백인종 등 한동안 인류의 문명과 삶, 일상을 지배했던 다양한 이념과 체제, 인식에 거대한 담론의 소용돌이가 일어나길 바란다. 거센 비가 쏟아질수록 흙탕물은 탁해지기 마련이지만, 비가 멈춘 뒤엔 탁해진 만큼 정화가 이뤄진다. 자연의 섭리대로 이 거대한 담론의 소용돌이를 통해 인식의 변화가 이뤄지고, 이것이 보다 자연친화적이고 인간적인 체제를 다시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지 않을까, 낙관해본다. 사실 낙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나날들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세먼지에 바이러스에, 마스크가 365일 생활필수품처럼 되어버린 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받아야 하는 저 아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등굣길에 마주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날들을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이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빼앗아 갔는가, 나와 기성세대들, 그리고 그 체제 속에서 경쟁하며 살아온 우리들이다. 그래서 더 통렬하게 반성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금은 힘이 없는 문화예술생존과 의미를 포기말자 축제 속에 있으면서, 당장 올해와 내년, 멀리는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그리며 새로운 포지셔닝을 고민한다. 우리 사회 속에서 축제가 갖는 포지션, 그리고 이 속에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고 있는 나의 포지션에 대한-. 결국은 가치에 대한 성찰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축제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 나의 일은 생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로 인정받고 싶은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정투쟁과 다르지 않다. 이 내적 인정투쟁이 다른 분야와의 차별이나 우월을 다투는 상대적 또는 경쟁적 관점으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안쓰럽게도 자기 검열에 가깝다. 우리 조직의 스태프들은 코로나19 속에서 한동안 이런 고민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을 순서대로 나열한다면, 우리는 몇 번째 정도일까 하는 회의가 그것이다. 공연예술제인 소리축제는 예술을 지향한다. 전통이라는 보이지 않는 유산을 바라보며 일한다. 코로나19는 안정과 경제(사회기반 유지, 생계의 개념에서)라는 가치 앞에서 우리가 소중하게 여겼던 다양한 가치들을 힘없이 굴복시켰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어서 다른 문화예술인들과는 매우 동떨어진 진단일 수 있다는 점은 양해를 구한다. 축제를 통해 문화예술의 가치를 구현해 온 소리축제의 구성원으로서, 여러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필요에서, 현재로써는 우리에게 힘이 없음을, 그 좌절감을 털어놓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기반으로 수많은 축제와 공연예술제, 공연예술기관들이 존재감을 이어가고 있다. 소리축제 역시 그렇게 방향을 잡았다. 예술인들과 예술을 기반으로 한 단체/기관들이 지금은 이런 흐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이런 흐름(또는 고육지책)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이어질지 단시간의 현상에 그칠지는 전망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이 미디어 공연들의 효율, 가치, 의미들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가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걸까? 생존법을 두고 의미를 따지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어쨌든 이 미디어 공연의 좋은 점은 이어질 것이고, 나쁜 점은 버려질 것이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그것이 변화라는 이름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양립할 것이라는 예측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디어 기반의 축제에서도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그것이 이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도 어떤 의미로서 회자되길 바란다. △코로나 이후삶과 사람을 다시 보는 문화예술의 가치 중세 흑사병이 수많은 유럽인들을 죽였으나, 르네상스의 도래를 이끌기도 했다. 이 오래된 역사를 전가의 보도처럼 마음에 품는다. 다만 이 속에는 수많은 고통과 담론의 시간들이 응축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아직 더 많은 고통의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과학적 예측도 그러하다. 경쟁을 굳건한 체제나 자연의 이치처럼 믿으며 개발과 발전의 끝없는 욕망 속에서 서로를 겨누어야 했던 야수 자본주의사회에서, 우리는 고통을 마주하고서야 비로소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코로나19는 나와 나의 직장, 내가 하는 일과 내가 생산해내고 있다고 믿었던 가치, 거기서 파생했던 나의 자부심에 성찰의 시간을 선물했다. 참으로 아픈 선물이다. 잠시 멈춘 듯 했으나, 아쉽게도(?) 우리는 어떻게든 또 가고 있다. 또 갈 수밖에 없어서 마음이 아프다. (가지 못하고 멈춰선 사람들의 절망은 또 어찌해야 된단 말인가.) 자본주의사회를 멈추지 않는 자전거에 비유한다. 우리 사는 세상이 여럿이 타는 자전거 같다. 자전거를 멈추면 타고 있던 우리 모두가 넘어져 다치고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달을 밟아야 한다. 그런데 조금만 속도를 줄인다고 생각하면, 누군가는 잠시 페달을 떼어도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는다. 서로가 동력을 나누어 생산하고 교대한다면,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을 버린다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서로에게 휴식과 바라보기, 지혜로운 분배가 허락된다면 우리는 좀 더 관대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관대함 속에서, 고통과 가치를 나누는 연대의식 속에서, 문화예술은 사람과 삶을 새롭게 발견하며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문화예술은 인문학의 좀 더 역동적인 표현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문학은 우리 사는 세상을 진단하고 더 좋은 세상을 그리는 무기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은 문화예술의 가치가 밀려난 듯 보이지만, 좌절하지 말자. 각성하고 성찰하며 우리 사는 세상을 새롭게 둘러보려고 노력하자. 그러다 보면 후일 더 좋은 무기로 새로운 세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중세의 르네상스도 그렇게 오지 않았을까. 오늘 2020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발표회와 쇼케이스가 열린다. 복잡한 상념과 동행하며 뚜벅뚜벅 행사장으로 간다. /김회경 전주세계소리축제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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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15 16:52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4

2012년 여름, 잡지사 인턴기자로 막 첫발을 내디뎠을 무렵 취재수첩을 들고 군산 한길문고 앞에 섰다. 지역서점의 명맥을 이어오던 그곳이 하룻밤 사이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급히 전해들어서였다. 침수 첫날, 소방차 두 대로도 감당이 안돼 오물수거차량까지 불렀지만 쉽지 않았다는 한길문고 이민우 대표의 말을 받아 적으며 서점이 있는 지하로 내려갔다. 뼈대만 남은 책장들이 버려진 관처럼 쓰러져 있고, 세지도 못할 책들이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널부러져 있었다. 책은 무려 10만권이라고 했다. 9년 간 쌓아온 서점의 모든 서류가 있는 컴퓨터도, 끝내 복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간 거지요. 그의 말이 어떤 상징처럼 들려왔다. 자발적으로 모인 군산 시민들은 흙탕물 속에서 한 권 한 권 책을 건져냈다. 50일 동안 자원봉사자 2500여 명이 한길문고를 찾아 살뜰하게 정리하고 청소했다. 책을 폐지로 처분하자 손에 남은 돈은 고작 220만 원이었지만, 한길문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을 얻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날을 시민들의 힘으로 극복하고 다시 재기한 이민우 대표는 앞으로도 작가 초청 강연과 문화행사를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시민 사회의 격려와 용기, 시민들의 한 땀 한 땀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기적임을 잊지 않고 여생을 다해 갚겠다고 말이다. 이제 그의 뒤를 이어 아내 문지영 씨가 한길문고에 더 아름다운 무늬로 수놓고 있다. 2012년 첫 생일을 맞은 막내 딸 초원이는 어느덧 초등학생이 됐다. 세 아이들의 이름이 새벽, 한길, 초원인데 새벽에 일어나 한 길로 걸어서 넓은 초원에 이르라는 뜻으로 아이 아빠가 지었어요. 이 말뜻이 바로 우리 서점이 지켜야할 가치라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 나아가고 있습니다. △서점에서 돗자리 깔고 캠핑을 한다고? 군산 한길문고에서 독서캠프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지난 6월 26일 저녁, 서점은 아이들 소리로 시끌벅적 분주했다. 평소엔 작가 강연회나 동아리 모임이 열리는 서점 한쪽 공간에 의자 대신 넓은 돗자리가 넉넉하게 깔렸다. 한가운데는 캠프파이어 장작 인형이 촛불과 함께 놓여 있었고 앞쪽에는 색깔별로 포장한 커다란 선물 박스가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한길문고 앞에 살고 있는 군산 시민 배지영 동화작가가 마이크를 들었다. 7시가 가까워오자 엄마 손 아빠 손을 잡고 달려온 초등생 아이들이 속속 자리에 둘러앉았다. 라면 먹고 싶은 사람 이리 오세요! 김우섭 점장이 외치자 몇몇 아이들이 동시에 일어나 긴 탁자 앞에 쪼르르 줄을 선다. 배고파요, 빨리 주세요! 이 바나나 먹어도 돼요? 라면이랑 짜파게티 둘 다 먹을래요! 재촉하는 아이들 앞에 문지영 대표와 점장 손이 점점 바빠진다. 탁자에는 라면과 간식뿐 아니라 함께 온 부모님들을 위한 시원한 캔맥주와 과자도 놓여있었다.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느냐며 미안해하면서도 웃음을 숨길 수 없는 어른들도 곧 열릴 캠핑을 즐길 준비가 된 듯하다. 8살 서연이와 함께 온 아빠 조용철 씨(37수송동)는 십년 넘게 책만 사다가 이런 행사에 참여해보는 건 처음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먼 데 놀러 가지 못해 답답해하는 딸에게 남다른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손잡고 오게 됐다고 말했다. 독서캠프 참여자 16명은 5개 팀으로 나눠 각각 팀명을 정했다. 사회자인 배지영 작가가 퀴즈를 내면 손을 번쩍 들며 팀명을 외쳐야 하는데 문제를 내기 무섭게 쌍둥이팀! 감자팀!하고 소리치는 아이들은 시종일관 넘치는 에너지로 주저 없이 퀴즈를 풀어나갔다. 책을 읽어야 맞출 수 있는 제목이나 작가 이름을 알아야 대답할 수 있는 질문에도 한치 망설임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만의 대체할 수 없는 생동감을 느꼈다. 2시간 가까이 동네서점에서 돗자리를 깔고 부모님과 둘러앉아 동화작가와 함께 독서 퀴즈를 풀며 발랄하고도 진지한 저녁을 보낸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한길문고가 준 색다른 서점의 모습을 끝까지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게 된다고? 가능해? 바라보면서도 어쩐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지만, 한길문고라 가능한 풍경은 이것뿐 아니었다. △엉덩이로 책 읽기, 들어보셨나요? 1시간 동안 앉아서 책을 읽으면 최저시급을 드립니다 2018년 크리스마스, 한길문고에서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라는 기발한 독서 행사가 열렸다. 서점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1시간 동안 책 읽는 어린이는 2018년 최저시급 7,530원에 해당하는 한길문고 상품권을 받을 수 있는 이 행사에 서점은 북새통을 이뤘다. 읽을 책은 준비해온 아이들이 빽빽이 서점에 앉아 잠자코 책을 읽고 있는 한길문고의 현장 사진을 보면 어쩐지 경건한 마음까지 들게 된다. 5분도 앉아 있기 힘든 어린이들이 1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이라니.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다 누가 생각해냈을까하며 궁금증은 물론, 오래된 동네서점이 이렇게 재미있고 의미 있는 행사를 열었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 서점인과 작가들이 적지 않았다. 2018년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운영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에 선정된 한길문고는 창작활동이 활발하고 아이디어가 뜨거운 군산 출신 작가이지 군산 시민 배지영 작가를 상주작가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호흡을 맞추며 단조롭던 문학 행사에 남다른 감각과 개성을 입히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점은 작가의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수혈 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행사에 따른 대관료를 지원받을 수 있어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고, 작가는 문학 관련 일자리를 얻어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데다 창작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서로 윈윈하는 지점이 많다. 좋아하는 서점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다는 배지영 작가는 서점에서 상주작가로 활동하는 것에 관해 제 책을 읽은 독자들을 서점에서 언제든 만나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자 활력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한길문고에서 독서캠프가 열린 날, 캠프에 참여하지 않은 한 어린이가 배지영 작가를 알아보고 엄마와 함께 책을 사서 직접 사인을 받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서점의 뾰족한 비결, 작가라는 동반자와 함께하며 시너지효과를 퍼뜨리는 중이다. △한길문고가 계속 지역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 고금자 씨(74문화동)는 한길문고에서 열리는 작가 강연회와 문화행사에 재작년부터 꾸준히 참여하면서 삶의 질이 3배는 높아진 것 같다면서 서점에 누구보다 실버세대가 많아야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구태의연하게 늙지 않으려면 동네서점에 자주 머무르며 생을 돌아보고 현재를 사유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한다. 서점에 오면 직접 책을 만질 수 있고, 마음에 들면 펼쳐볼 수 있고, 그러면서 생각지도 못한 책을 만나 사서 오는 예외성이 우리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전상근 씨(61나운동)도 존재만으로 자연스럽게 독서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한길문고는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서점이자 감동적인 장소라며 역경을 견디고 담담하게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는 한길문고에 계속 힘을 실어주는 방법은 자주 찾아 책을 사보고 스스로 변화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문지영 대표는 처음에는 책이 좋아서 서점을 열었다면 이제는 서점이라는 공간 자체가 좋아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며 동네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쩌면 투쟁이라는 말에 비유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서점의 이유와 가치를 알고 찾아와주는 시민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듯 잊지 못하는 서점이 있다. 한길문고가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계속 열리는 희망이 되어주길 바라본다. /임주아 시인물결서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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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8 16:34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19, 다양한 발상으로 예술분야 새 교본 만들다

어린 시절 집 앞 한 고등학교에서 축제가 열린 적이 있었다. 소란스러운 음악소리와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관경으로 인해 순간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어느새 단숨에 그곳으로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조명과 심장을 울리는 앰프 소리를 비롯하여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고등학생 형들의 모습이 어찌나 멋지고 인상이 깊었던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축제를 연상케 하는 먹거리 야시장과 반짝이던 주변 풍경들 또한 빠짐없이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음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면 본능적으로 스쳐가는 그 느낌. 그 느낌은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 축제로 자리 잡고 있었다. △축제 현장의 마법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었고, 예술 분야에 일을 하게 되면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축제 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축제를 즐기던 와중 바닥에 길게 늘어 붙여져 바람에 일랑이던 헬륨풍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엔 그저 장식품으로 인식이 되었으나 축제 개막이 시작된 후 풍선은 더 이상 장식품이 아니었다. 웅장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화려한 조명에 빛이 들어오며, 공중에 집채만 한 고래와 물고기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러 바다 생물체의 헬륨풍선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바닥의 풍선은 바람에 흩날리며 어느새 내 눈엔 물미역으로 보여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축제 현장이 바다로 변하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만이 느낀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그곳에 온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두 똑같이 느꼈을 것이라 생각된다. 축제가 점차 무르익고 어느새 자정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와중 어느 학생이 했던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학생의 어머니는 어서 집으로 돌아오라 다그치는 듯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학생의 마지막 발언은 이러했다. 엄마 제발 이거 끝날 때까지만 보고 갈게, 부탁이야 꼭 보고 싶어! 당시 무엇이 그 학생의 발걸음을 잡아 두었는지 나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완벽한 축제를 경험할 수 있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예술현장의 고민 세월이 흐르고 지역의 여러 문화예술축제와 공연을 만들어오며 항상 그러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문화예술의 울타리에 찾아와 집으로 돌아가길 아쉬워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항상 사람들과 고민하고 연구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전주문화재야행이다. 전주문화재야행은 2018년은 문화재청으로부터 야행을 시행하는 27개 지자체 중에서 최우수야행으로 선정되었으며, 올해는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야간명소 100선에 선정되며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다른 해 보다 더 많은 준비와 열정이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걱정이 태산이다. 관광객이 아주 많이 와도 걱정, 오지 않아도 걱정이며 가장 큰 문제는 프로그램 이외에 코로나19에 대한 대비책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가 가장 큰 걱정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붐비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야외에서 문화재를 활용해야 하는 야행의 특성을 고려하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은 전주문화재야행추진단 뿐만이 아닌 다른 지역 축제 조직도 마찬가지 일 것이라 판단된다. 결국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축제의 모습은 모두 포기하고 또 다른 축제의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며, 앞으로의 모든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진 것이란 사실에 수긍 아닌 굴복한 것은 아닌가라는 좌절감도 느껴지며 마음 한편이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새로운 방법론으로 사태 극복 현재 우리는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다음 주 정도면 분명히 나아질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사태는 점차 줄어들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는 상황이며, 우리 지역에서 예정되어 있던 문화예술 축제를 비롯하여 공연, 상설 프로그램이 시행되지 못하거나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기획단을 비롯하여 참여자들의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또한 이들을 기다려 왔을 관객 역시도 아쉬움이 클 것이라 생각된다. 그 와중 예술인들은 현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도를 세워 공연과 축제를 진행해 보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다소 무모한 방법일 수 있으나 결국 예술인의 다양한 발상과 시도는 점차 방법론으로 쌓여가고 있으며, 새로운 예술 분야의 역사를 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방법론은 언젠가 또 다른 국면에 교본으로 활용될 것이란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린 또 한 번 고민해 본다. 어린 시절 우리의 심장을 뛰게 했던 축제와 그동안의 우리가 목표해온 예술의 감동과 설렘을 어떻게 또다시 구현해내고 대중에게 어떻게 선사할 수 있을지를 말이다. /이왕수 문화예술공작소 예술감독전주문화재야행 기획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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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7.01 17:03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 캔버스가 된 부채

△캔버스가 된 부채, 화가 심성희 인터뷰 ■ 찾아간 곳: 부안군 심성희 작업실, 전주시 방화선 부채연구소 ■ 찾아간 날짜: 2020년 6월 12일 더운 여름, 부안에 있는 화가 심성희의 작업실에 갔다. 한국화가 심성희는 최근 10여 년 동안 부채에 그림을 그려왔다. 부채에 그림을 그리다니, 그 색다른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왜 부채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나. 12년 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렸던 전북아트페어에 참석했다. 당시 출품작은 도자기와 부채에 드로잉을 한 것이다. 그때 전시장 입구 공예관에서 작업하고 계시던 방화선 선자장이 제 작품을 보고 관심을 가져 연락을 주셨고, 선생님 부채에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부채에 그리는 작업은 다른 작업과 어떻게 다른가. 일반 화지에 그리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부채 선면에 그리는 것이 조금 더 어렵다. 보통의 화지는 그림을 그리다가 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화지를 바꾸면 되지만 부채의 경우 잘못 그리면 부채를 통째로 바꿔야 하니 그릴 때마다 매우 조심스럽다. 물론 한지에 그림을 그려서 그 한지로 부채를 만들면 더 좋겠지만 그럴 경우 부채 고유의 맛을 살릴 수가 없다. 나는 부채의 맛을 살리고자 완성된 부채 위에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매우 조심스럽다. -캔버스로서의 부채는 어떤 매력이 있나. 평면의 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부챗살의 요철 때문에 붓을 놀릴 때 또 다른 재미가 느껴진다. 그리고 화지는 완성 후 액자를 주로 하여 작품을 돋보이게 하지만, 전통과 현대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부채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재의 특성이 액자를 할 때보다 훨씬 매력이 있고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 -캔버스로서 합죽선과 단선의 차이점이 있다면. 화가로서 합죽선과 단선의 차이점을 표현한다면 붓의 자유가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다양성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합죽선은 주어진 화지에 맞추어 그림을 그려야 하니 표현의 제약이 있다. 하지만 방화선 선자장의 단선은 내 그림에 맞추어 부채의 크기를 변화시킬 수 있어 붓의 자유가 더 느껴진다. 두 번째로 합죽선은 부채 앞면에만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단선은 양면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게 단선의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부채에 그림을 그리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마 옻과의 전쟁이라 불러야 할까. 첫 번째는 방화선 선자장의 대원선에 옻칠 작업을 할 때이다. 옻의 성질도 잘 모르면서 순수한 색 옻칠로만 대원선에 부부 초상화를 그린 적이 있다. 내 인생에 아마 가장 힘든 초상화 작업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KBS 주관하에 방화선 선자장의 초대형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할 때이다. 온몸에 옻이 오른 상태에서 장시간에 걸친 퍼포먼스를 하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겁이 없었구나, 다시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터 부채에 그림을 그렸을까?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써넣은 부채를 서화선(書畵扇)이라 한다. 부채는 부챗살과 갓대, 선면(扇面)으로 구성된다. 선면은 부채의 거죽으로 종이나 천으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물을 들이거나 깃털을 달거나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자료를 보면 중국에서는 4세기에, 한국에서는 고려 중기부터 부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製自心機妙 마음의 신묘한 경지에서 만들었으리. 煙峯落翠虯 안개 낀 봉우리에 푸른 용이 뚝뚝 떨어지네. 遙分萬壑籟 만 골짜기 바람을 멀리 나누어서, 遣作一堂秋 한 마루 가을을 일찍 보내주었구려. 紺碧綾紋細 검푸른 비단 무늬 섬세하기도 하고, 斕斒玉柄脩 찬란한 옥 자루 길기도 하여라. 感恩何處驗 그중에 고마움을 느낀 곳은, 滿面汗渾收 얼굴에 가득한 땀을 식혀준 것이라네. 위 시는 『동국이상국집』에 수록된 <송선 열 자루를 선사한 강남의 정상인에게 사례하다>라는 제목의 이규보의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을 보면 장인이 심신을 경건히 하고 정성 들여 부채를 만들었으며, 부채의 선면은 비단으로 되어 있고 옥 자루 손잡이가 달린 단선임을 알 수 있다. 아울러 선면에 그려진 그림은 안개 낀 봉우리와 푸른 용이다. (출처: 『선자장』, 국립무형유산원, 2017)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합죽선 제작이 활발해지고, 그 쓰임새도 깨끗한 백선보다 그림선(서화선, 화접선)이 더 유행하게 되었다. 당시 그림선은 수묵화가 주를 이루었으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졌다. 전주부채문화관도 부채와 한국화의 콜라보 작업 이후 부채와 사진, 부채와 판화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전시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신도 부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국화가 심성희는 전라북도무형문화재 방화선 선자장과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2미터 이상의 거대한 부채에 자신의 작품을 담아 부채 자체가 병풍이 되는 작업을 해보고 싶은 게 심성희의 희망 사항이다.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오늘은 한국화가 심성희와 선자장 방화선의 콜라보 작품을 만나봤다. 필자는 귀여운 듸림선에 그림을 그려 올여름을 시원하게 지내볼까 한다. 여러분들도 한번 시도해보시라. 누구나 부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향미 전주부채문화관 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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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24 17:09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이종의 조화, 연결의 미학…예술이어서 가능했다

지난 축제의 스케치 영상과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켠이 저리다. 수많은 아티스트와 관객, 스태프들의 표정에서 우리가 이때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을 나누고 있었는지 절절해진다. 스태프들이 고난의 행군을 할수록 축제는 섬세해진다. 그런데도 축제 속에 있고, 축제가 좋다. 고난보다 큰 보람과 환희, 카타르시스를 맛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축제의 보람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좀 더 벅찬 우리라는 공유와 공감의 전이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코로나 19에 대한 소리축제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개별공연과 사업을 위한 협의와 결론의 과정, 그 이후 계약에 대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고심이 깊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해외 교류, 소통과 협업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축제가 걸어온 소중한 교류사업의 성과들이 알알이 빛나 가슴에 박힌다. 우리라는 공유와 공감이 퍼져가던 뜨거웠던 그 순간들. 다시, 지성의 연대와 이종(異種)의 조화를 생각하며, 소리축제의 아주 특별했던 LINK(이음)의 순간들을 떠올려본다. △ 2014~2017 폴란드와 소리축제, 소팽과 아리랑의 낭만적 만남 존재 자체로 폴란드의 상징인 위대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쇼팽, 한국인의 정서가 몇 소절의 음절로 압축된 아리랑. 두 나라의 음악적 상징을 앞세운 한-폴 프로젝트 쇼팽&아리랑. 폴란드 유명 뮤직 페스티벌 바르샤바 크로스컬쳐 페스티벌 예술감독이자 전통음악과 고음악에 심취한 마리아가 두 나라 간 협업을 제안했을 당시만 해도, 이 사업이 이렇게 긴 시간과 여운으로 이어질 줄은 예상치 못했었다. 장장 4년 동안 지역 예술가와 폴란드 예술가가 한국-폴란드 양국을 오가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산해냈다. 아리랑을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정서, 그리고 쇼팽의 음악을 폴란드 고악기로 재현하는 등 특별한 음악실험을 하는 폴란드 고악기 연주자들과의 만남은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인 두 나라 간 음악적 교집합을 발견하며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 팀은 이듬해 폴란드 크라쿠프 크로스로드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받아 폴란드 관객들에게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후 2년 동안은 폴란드와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궁중무용 팀의 협업이 진행됐고, 이질적인 문화 속에서도 서로의 음악과 춤이 교차하며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상시적인 예술 인프라를 보유하지 못한 축제 조직에서 4년 간 해외기관과 교류를 추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생산해냈던 것은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양 기관의 열정과 신뢰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폴란드의 쇼팽과 우리의 아리랑, 이 위대하고도 낭만적인 만남이 다시 한 번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마지 않는다. △ 2015 한-캐 프로젝트 이종(異種)의 미학, 레이첼 트렘블레이&김보라 훤칠한 메조 소프라노 레이첼과 아담한 소리꾼 김보라의 캐미도 잊을 수 없다. 레이첼 트렘블레이는 2014년 세계적인 성악대회인 캐나다 몬트리올 세계 성악가대회에서 최초로 소리축제상(Sori Choice Artist)을 수상한 음악가이다. 소리축제와 세계성악가대회가 협업을 맺고 이듬해 소리축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젊은 소리꾼 김보라와 콜라보 무대를 선사했다. 당초 오송제 편백나무숲에 계획되었던 무대는 쉴새 없이 쏟아지는 비로 급히 명인홀로 옮겨졌다. 그때만큼 비가 야속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상쇄라도 하듯, 명인홀은 두 사람의 호흡 속에서 꽉 찬 아우라와 감동으로 가득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관통하는 듯, 김보라의 단단하게 다져진 깊이있는 소리와 레이첼의 무게감 있고 미려한 목소리가 어느 순간 균형을 맞추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터져 나오던 잊지 못할 무대였다. △ 대만과의 길고도 끈끈한 협업젊은 전통 음악가들의 고민을 담다 대만과의 협업은 매우 끈끈하고 우정 어린 시간들을 이어왔다. 소리축제와 대만의 국립가오슝아트센터가 지난 2018년 협약을 맺으며 양국 아티스트들의 활발한 교류가 시작됐다. 물론 대만과는 지난 2015년부터 대만 국립전통예술중심과 꾸준히 교류사업을 이어왔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대규모 예술극장인 가오슝아트센터와도 연을 맺었다. 소리축제의 대표적인 경쟁 프로그램인 소리 프론티어의 수상자들이 한국전통의 뉴 웨이브를 선보이며 대만의 젊은 아티스트들과 만났다. 대만의 실험적인 젊은 전통 음악가들이 소리축제를 찾아 파격적이고 새로운 음악적 조류를 선보이며 갈채를 받았다. 이 두 나라의 교류가 유난히 벅차고 아름다웠던 것은, 양국 젊은 전통음악가들이 비슷한 고민과 새로운 도전 앞에 흥분과 설렘, 기대와 비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음악적 완성도와 성취보다 더 값진 발견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수교 30주년 사업, 외교적 성과로 연결 올해는 러시아와 한국이 수교를 맺은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올해 소리축제 해외 프로그램은러시아 포커스가 가장 비중 있게 준비되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소재한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트라는 예술기관 관계자들이 소리축제를 방문해 MOU를 맺고 올해부터 양국을 오가는 다양한 예술인 교류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올해는 한-러수교 30주년을 맞는 해로 소리축제를 찾는 러시아 팀들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러시아 민속음악이 중심이 됐다. 지난해 10월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주관하는 코리아 페스티벌에 소리축제 최근 화제작인 판소리-플라멩코 프로젝트가 초청 받아 무대에 서면서 한-러 수교 교류사업은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트와 총영사관 양 축을 파트너로 삼아 사업의 윤곽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소리축제의 예술적 교류사업이 외교적으로도 확장되며 양국 우호협력의 끈끈한 촉매로서 주목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리축제는 작게는 올해 축제 교류를 위한 러시아팀 초청업무부터 페테르부르크 콘체르트 교류사업, 외교부 교류업무까지 다양한 사업들이 잇따르면서 많은 가시적 성과들을 기대하고 있다. 한-러 수교 사업으로 소리축제의 국제적 위상, 국내외 신뢰도, 예술인들을 위한 공익적 기여 등에서 한 발짝 진일보한 국면을 맞게 되리라 내다보고 있다. 아직 좌절이나 절망을 논하기 이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인내와 희망의 메시지로 서로를 독려해야 하는 시간임은 확실해 보인다. 우리는 다시 이어질 것이다. 소리축제에서 배운 아주 귀한 교훈 하나가 있다면, 음악을 통한 평등이라는 가치다. 동서고금, 남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음악을 마주하는 이의 토양과 배경, 마음의 결로 음악의 通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통하였느나, 하지 못하였느냐는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마음이 가 닿는 곳에, 다름과 거리가 대수이겠는가. 오늘 다시 이 귀한 이종의 조화, 연결의 미덕을 예술을 통해 잊지 않는, 되새기는 하루가 되었으며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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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7 16:15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3

코로나 시대의 수개월은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살고 있는지 맹렬하게 깨우쳐준 시간이었다. 끝없는 세상에서 드넓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균과 맞닥뜨리고 전에 없던 현실세계를 살게 됐다. 세상은 인간이 아니라 균이 지배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어보며. 그러므로 지구는 얼마나 좁은 방인가. 까똑-. 저녁 6시 단톡방 알림이 울렸다. 오늘 근무자인 A의 책방일지다. 7명이 돌아가며 하루씩 근무하는 우리 책방은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1인 책방지기 모드로 운영된다. 그래서 책방 퇴근 전후 간단하게라도 단톡방에 올라오는 책방 일지는 일종의 인수인계이자 중요한 알림판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1. 청소현황: 책방바닥 및 화장실 2. 다녀가신 분: 옆집 이모, 성악가 B씨, 사진가 C씨. 3. 개선사항: 오늘 날씨 쪄죽는 줄 알았음. 에어컨 꼭 켜기. 4. 판매도서명: 없음. 5. 매출: 0원.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요즘 책방 일지의 매출 항목은 텅 비어있을 때가 많다. 자영업은 늘 어렵고 책방은 매일 어렵다지만 지난해 이맘때쯤과 비교해보면 고개를 들기 힘든 수준이다. 이런 날엔 단톡방도 조용조용하다. 다른 책방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으니 앓는 것도 사치인 걸 안다. 그저 조금씩 현실을 바꿔나갈 수밖에. 그러나 착한 악마들은 늘 가까이서 속삭인다. 그러니까 누가 돈 안 되는 거 하래? 좋아서 하는 건데 어쩌겠어. 책방도 그냥 자영업이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교묘하게 속는 기분이 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에 일일이 왈가왈부하기 고달파진다. 그러면서도 본다. 재난지원금으로 책을 사려고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응원을, 몇 달 만에 어렵게 열린 시 쓰기 모임인 걸 알고 찾아왔다며 간식을 펼쳐놓는 단골 주민들의 애정을. 코로나 시대의 각자도생 나날 속에서도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낯선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계속 느낀다. 그것이 때ㅤㄸㅒㅤ로 책방과 서가 속에 있다고 믿는다. △재난지원금으로 책 사러 온 손님 재난지원금을 책방에서 사용한 손님이 남긴 방명록. 바람 부는 5월 어느 날 30대 손님 두 명이 책방에 왔다. 한 명은 주문한 책을 찾으러 왔고 한 명은 책을 고르러 왔다. 재난지원금 첫 소비를 책에 쓰고 싶다는 손님 말에 가만히 웃기만 했다. 책방의 작은 서가를 둘러보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런 이상한 기쁨은 무엇인가 새삼 신비로웠다. 아끼셔야죠. 제 가방에 담아갈게요. 손니들이 고른 책을 각각 종이봉투에 담으려하자 모두 손사래를 친다. 카드를 긁으니 휴대폰에서 딩동 소리가 들린다. 와, 재난지원금 썼다고 문자 왔어요, 완전 신기해!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도 처음 재난지원금을 썼고, 책방도 재난지원금 첫 손님을 받았다. 이것도 기념인데 한 마디 써주세요. 책방 카운터에 놓인 방명록을 내밀었다. 길이길이 남을 또렷한 글씨가 마음에 들어왔다. 재난지원금 1호 사용자 다녀갑니다 △3개월 만에 열린 시 쓰기 모임의 반가움 이게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저녁 7시 책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겨우 초면을 벗어난 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낯선 듯 익숙하게 인사하고, 누군가 가져온 커피와 간식을 먹는다. 오늘은 원두커피에 김밥과 꽈베기가 책상 위에 놓였다. 이때 책방에서 준비한 시인의 시가 프린트물로 김밥 옆에 놓인다. 책방지기의 간단한 설명 이후 한 사람씩 소리내어 시를 읽는다. 이 모임의 이름은 시 읽고 100행 시 쓰기다. 시인의 시를 읽고 그 시인의 느낌을 한번 걸쳐 100줄이 되어도 좋은, 막힘없는 무언가를 써보는 것이다. 2019년 10월 처음 시작해 코로나로 3개월을 쉬고 지난 5월 다시 시작한 이 모임엔 매번 7명 쯤 모인다. 나이도 동네도 직업도 다양하다. 이 모임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자신의 글을 검열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저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벼운 옷을 걸치는 느낌으로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모두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으로 연필 써내려가는 소리를 들려줄 때 약간 소름이 돋는다. 가르치는 사람 없고 가르침 원하는 사람 없는 느슨한 시(詩) 모임. 이 헐렁한 예술적 연대가 종종 신비롭다. 저녁에 모여 앉기 어려운 전주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작은 책방에서 시를 읽고 쓰는 일. 3개월 만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퍽 반가웠다. △그럼에도 아직은 최근 전주책방 10곳이 모여 전주책방네트워크를 결성한 이후 책방들은 이전보다 더 자주 모이고 더 할 일이 많아졌다. 네트워크가 추진할 일들과 전주시 도서관과의 협업을 포함해 함께 논의해야할 사안들, 각자 처리해야할 책방 일까지. 두런두런 치열하게 얘기하다보면 어느덧 밤이다. 어려운 날들 속에서도 함께 모인 힘이 단단해지길 바라며.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토닥토닥 김선경 대표는 최근 소상공인지원금 60만원과 재난지원금 40만원 덕분에 조금 숨통을 텄다고 말한다. 책방 운영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매일이 재난 상황이라며 씁쓸해하면서도 한 권이라도 사러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까봐 자리를 뜨지 못하는 상황을 미워하지 않는다. 전북대 대학가에서 책방을 운영하다 전주 중앙동 전라감영 복원지 옆으로 자리를 옮겨 2년째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에이커북스토어 이명규 대표는 책방에서 유일하게 온라인에서도 책을 판다. 온라인 판로가 있어 그럭저럭 운영된다지만 한 명 인건비도 나오기 힘든 실정이다. 뻔한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두 번 오는 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한번 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오고, 또 오고 계속 오는 분들 덕분이란다. 모든 책방이 그렇지만 이곳에 오기 위해 전주에 왔어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코로나 시대, 동네책방의 풍경은 단단하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계속된다. /임주아 시인물결서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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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0 16:19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코로나19 속 공연 영상, 거리두기 공연 체험해보니

지난주 국립극장 창설 70주년 기념공연 창극 춘향을 관람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하였다. 공연 관람 전 혜화동 대학로에 일정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2주 전 서울의 모습과는 다소 다른 풍경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잠시 주춤하나 싶었으나 또다시 시작된 확산의 조짐으로 인해 다시 심각 단계의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다. 단 한 사람도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며 이젠 모든 대중교통은 마스크 없이 탑승이 불가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심각성을 또다시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사회적 풍경이 삭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일 따름이다. 대학로에서 일정을 마치고 장충동 국립극장까지는 공공자전거로 이동하였다. 답답한 지하철이 싫기도 하였으며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립극장에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는 사이에 휴대폰의 메시지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문화예술공작소에서 기획 제작한 이야기술사 시즌2 경기전 사람들에 참여하는 배우들의 연습 영상이었다. 경기전 사람들은 전주의 역사 이야기를 대본화하고 아홉 명의 캐릭터를 발굴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1인극 형식으로 관광객에게 전주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본래 5월 초에 시작했어야 할 프로그램이 6월 6일로 변경되면서 현재 연습이 한창이다. 경기전 사람들의 연습 영상을 보며 배우들의 수많은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이 구사하는 화술과 눈빛 표정을 비롯하여 수많은 감정의 표현들이 그동안 스쳐 갔을 배우들의 연구와 수고로움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을 통해 더욱 세밀하게 이들의 연기를 관찰 아닌 관람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현재 나에게 많은 공부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차후 관객과 만나게 될 배우들의 설레는 모습과 이들의 연기를 관람하며 감탄할 관광객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국내 최정상의 예술단체를 비롯하여 전 세계의 국공립 단체의 공연 영상물이 인터넷 영상 매체(YouTube)를 통해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공연 연출과 기획을 하고 있는 내게 정말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세계 각 예술기관의 공연영상 공개로 인해 나는 얼마 전 영국을 프랑켄슈타인, 캣츠 오리지널 버전을 비롯하여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을 볼 수 있었다. 마치 나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예술여행을 떠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양한 국가에서 펼쳐낸 공연영상은 스토리부터 무대 미술, 의상, 조명, 그리고 배우들의 동선 표정을 비롯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과 눈빛까지 객석에서 관람했을 때 보다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밖에 국내 국공립 및 민간단체에서도 무용, 음악, 뮤지컬, 연극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앞으로 나의 예술 활동에 큰 그림을 그려보는 상상을 할 수 있었으며 매우 흥미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당연히 관객의 입장에서 객석에 앉아서 현장에 대한 감동을 직접 느낄 수 없는 것은 분명 아쉬웠지만, 학습하기에는 더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아무리 세계적인 작품이라도 약간의 옥에 티는 있었으나 이러한 결점을 찾아내는 것조차 흥미로운 학습 방법이라 생각한다. 어느덧 국립창극단 춘향의 공연시간인 저녁 8시가 다 되어 서둘러 마스크를 쓰고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신상에 대한 기록을 작성하고 열 체크, 손 소독까지 마친 후 티켓을 받아들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연장의 관경과 분위기가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공연을 실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었다. 이전과 공연 관람 문화가 변화된 것은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앉은 객석을 기준으로 양옆과 앞뒤에 다른 관객이 없다는 것 그리고 배우를 제외하고 그 외 스텝 연주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공연에 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공연의 막이 오르고 연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온몸을 감싸는 전율 그리고 하나둘씩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과 온 극장에 진동하는 배우들의 합창은 그야말로 그동안의 영상으로 봐왔던 감동과 학습을 잊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나의 눈가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슬픔이 아닌 감동의 눈물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감정이 관객의 입장뿐만이 아닌 예술가와 관객을 비롯하여 공연을 준비하는 제작진과의 관계 안에서 예술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위대한 모습에 벅차오른 감정 호소라 생각된다. 그만큼 예술가에겐 관객이 소중하고 대중에겐 예술이 소중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서 예술가와 관객은 언제나 서로 예술로써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예술가는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을 통해 관객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만족과 실력 향상이 전재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관객을 위한 예술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래서 예술가와 관객은 상호 작용적 존재가 아닌 서로 위하는 존재, 서로 의지하는 관계로 발전되어야 함을 당부하고 싶다. /이왕수 문화예술공작소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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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03 17:45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 - 유백영의 ‘아주 특별한’ 선물부채

부채,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공연 사진을 찍다가 어느 순간부터 외교사절이 된 작가가 있다. 자비를 들여 구매한 고가의 합죽선에 해외 아티스트의 친필 서명을 받아 선물로 주는 작가의 비밀스러운 수장고를 찾아갔다. 공연 포스터부터 팸플릿 그리고 시디(compact disk) 음반이 차곡차곡 쌓여 있고 한편에 합죽선이 모아져 있다. 이 합죽선들은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그리고 사진작가는 왜 합죽선에 꽂힌 것일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그 두 번째로 사진작가 유백영의 수장고에 있는 아주 특별한 선물부채를 만나보자. △아주 특별한 선물, 독특한 교환 의식을 거친 합죽선 이야기 유백영이 소장한 부채의 선면에는 흔히 있는 문인화나 사군자가 없다. 그의 부채 선면에는 삐뚤빼뚤 지렁이 기어가는 글씨부터 유려한 글씨까지 매우 다양한 서명들이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예술가의 서명도 있고, 이제 막 커가기 시작한 신진 예술가의 서명도 있다. 시인, 가수, 화가, 소리꾼, 무용수, 연극인, 지휘자까지 매우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직접 서명한 것들이다. 도대체 유백영은 왜 부채에 서명을 받기 시작했을까? 무대 위의 사람이 사진작가 유백영의 뮤즈이자 피사체다. 초기엔 다른 사진작가처럼 예쁜 꽃이나 일출을 표현하고자 산과 바다를 다녔다. 그러다가 무대 위 사람이 행하는 행위 자체에 매료되어 근 이십여 년간을 공연 사진에 집중했다. 공연 사진을 찍다 보니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했고 대사도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팸플릿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미리 시디 음반을 사서 듣기도 했다. 리허설부터 시작된 촬영은 본 공연을 거쳐 팬 사인회까지 이어졌다. 감명받은 작품들을 기억하기 위해 팸플릿, 포스터, 시디 음반에 예술가의 서명을 받아 보관하기 시작했다. 기획사와 예술가들은 이런 사진작가에게 더 성의껏 서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외국 아티스트나 고령의 예술가를 만나면서 팬 사인회 만으로는 무언가 아쉽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정적인 예술가들에게 전통문화도시 전주를 오랫동안 기억할 만한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어졌다. 유백영은 전주를 방문한 예술가들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 전주부채를 준비했고, 그것을 그냥 증정하지 않고 친필 서명을 받아 하나는 예술가에게 주고, 하나는 유백영이 보관하기 위해 독특한 교환 의식을 거쳤다. 즉 전 세계에 단 두 개밖에 없는 친필 서명 부채가 만들어져 하나는 예술가가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유백영의 수장고에 보관되기 시작했다. 이런 친필 서명 부채가 벌써 100여 개가 훌쩍 넘었고 2014년에는 전주부채문화관에서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선자장의 부채와 유백영의 인연 형님하고 유백영 작가하고 친구였어요. 그래서 아주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처음엔 사모님이 부채에 그림을 그린다고 사 가셨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선물용으로 내 부채를 많이 팔아주셨어요. 그분이 법무사잖아요. 그래서 아는 양반도 많고 선물도 고급지게 한다고 해서. 백선을 주로 사가셨는데 30cm 백선에 문인화도 그리고 선물도 하고, 뭐 공연하는 사람들에게 서명도 받고 그랬다고. 나야 고맙죠.(부채 장인 박상기와 사진작가 유백영의 인연) 짐승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내 이름이 박힌 내 부채에 훌륭한 사람들이 서명을 하고 오래오래 보관한다면 그것처럼 좋은 일이 없죠. 내가 소리전당에 작업장이 있잖아요. 사진 찍으러 오실 때마다 선물용으로 부채를 많이 사가셨어요. 부채에 서명을 받은 줄은 몰랐죠.(전라북도무형문화재 방화선 선자장이 만난 유백영) 어느 날 김남곤 시인이 일출을 보자 하셨어요. 그래서 벽경 송계일 화백, 고하 최승범 시인, 김영채 사진작가 이렇게 다섯이서 지리산에 갔지요. 부채 한 자루 들고 산에 올라 일출을 보며 벽경 선생이 스케치를 하고 최승범 시인이 한 구절 쓰고 나머지 우리들은 서명을 했지요. 내가 숱하게 일출을 보러 다니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지만, 일출을 보러 가 부채에 서명을 한 적은 처음이었지요. 남자들 다섯이서 이런 이벤트를 하고 내려오니 그날의 기억이 매우 강렬하게 남았지요.(사진작가 유백영, 지리산에서의 기억) 유백영 작가님이 요청을 해서 저희가 기획사와 의견 조율을 합니다. 모두들 너무 바쁘니까 리허설을 시작하기 전, 혹은 공연 후 예술가에게 부채 두 자루를 주고 서명을 부탁해요. 전주부채 합죽선에 대해 설명을 하고 부탁을 하면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흔쾌히 응해줍니다. 특히 외국 아티스트들은 굉장한 선물이라고 즐거워하고, 자신의 집에 걸어 놓겠다고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전주의 특별한 문화사절단이 된 것 같아 매우 기뻤어요.(한국소리문화의전당 홍보과장 김형주 인터뷰) △문헌에 나오는 부채의 용도, 연애편지와 선물 기능이 탑재된 부채 莫怪隆冬贈扇枝 엄동에 부채를 선사하는 이 마음을 爾今年少豈能知 너는 아직 나이 어려 그 뜻을 모르겠지. 相思半夜胸生火 그리워 깊은 밤에 가슴에 불이 일거든 獨勝炎蒸六月時 오뉴월 복더위 같은 불길을 이 부채로 식히려무나. 부채는 기본적으로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는 기능, 시와 그림을 그려 넣어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 멋스러운 선추를 달거나 선면에 예쁜 색을 넣는 멋쟁이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 소리꾼의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기능, 마지막으로 친한 사람에게 주는 정중한 선물로서의 기능이 있다. 위 시는 조선 중기 문인 임제(1549~1587)가 좋아하는 기생에게 보낸 것으로, 그 당시 대표적인 낭만 시인이자 풍류가의 연애 감성이 30cm 합죽선 선면에 그대로 실려 있다. 이처럼 선면에 시서화를 표현해 자신의 예술적 소양을 표현한 것 이외에도 선물이나 심지어 뇌물로도 광범위하게 부채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칙사의 행차가 이르는 곳마다 부채를 요구하여 순안 현령 이공권이 정묘하게 부채를 만들어 그 요구에 응하였으니 파직하라.라는 상소와 창녕 현감 홍치기가 대모로 부채를 만들어 윤유에게 선사하였다.라는 기록들을 보면 조선 중기 이후 접선이 좀 더 화려해지고 특별한 선물로 작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는 성리학뿐 아니라 육예, 즉 예용음악궁술마술서도수학에도 능숙해야 했는데 이를 증명할 수단으로써 부채가 사용되었다. 사군자와 시 한 구절 적힌 고급스러운 부채 한 자루만 쓱 들어도 나 배울 만큼 배웠고 먹고살 만큼 산다.라는 뜻을 나타낼 만큼 당시의 부채는 신분 과시의 척도였다. 선물과 뇌물, 사치에 대한 규제까지 거론될 만큼 그 수요가 폭발적이었던 조선시대 부채와 달리 현대에 이르러서는 부채 자체가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에어컨과 팬시상품에 밀려 부채 본연의 쓰임새는 물론 선물로의 자리도 잃어가고 있는 이런 시기에, 아주 특별한 선물로서 전주부채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사진작가 유백영의 작업은 큰 의미가 있다. 초코파이도 좋고 비빔밥도 좋지만 전주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전주 고유의 멋이 깃들어 있는 합죽선, 이 얼마나 아름답고 의미 있는 선물인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만의 서명 부채, 지금 당장 선물해보자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오늘은 사진작가 유백영의 아주 특별한 선물로서의 부채를 소개했다. 앞으로도 우리 삶에 깊게 녹아 있는 부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나보고자 한다.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만의 친필 서명을 한 부채를 선물해보자. /이향미 전주부채문화관 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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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7 16:16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축제와 환경, 코로나19가 보여준 새로운 이면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 인생은 거친 고행 길을 걷는 것과 같으나, 그 길에 이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끝없는 절망의 시간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인류의 사색과 철학은 그 과정에서 파생한다고 믿는다. 보이는 것 외에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삶을 탐색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또 코로나 19 이야기다. 코로나 19가 단순히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역병이라는 평가는 단면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면을 보아야 한다. 짧은 지혜를 보태자면, 삶의 진실은 대부분 이면에 숨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열심히 탐색해 우리 삶과 주변, 환경을 돌아보는 날카롭고도 뜨거운 자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코로나 19로 전 세계 대기질 개선통렬한 자성의 기회로 인터넷 기사를 살펴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이 코로나 19가 아니겠느냐고. 참으로 통렬하다. 실제로 유럽과 아시아, 특히 중국과 한국의 대기질이 코로나 19 기간에 크게 개선됐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 19보다 대기오염으로 죽어가게 될 사람들이 더 많다는 기사도 봤다.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치명적인 새로운 바이러스는 결국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점에서 비롯되었고, 그것은 무분별한 개발로 야생동물 서식지를 인간들이 침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인간이 만든 재앙인 셈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 감소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많다. 다시 코로나 이후엔 경제손실을 막기 위해 더 많이 더 자주 공장을 돌리고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뼈아프게도 이 기후문제의 심각성을 거론하는데 있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플라스틱에 담겨온 배달음식을 먹고, 일회용품을 쓰면서 느끼는 죄책감은 오래 가지도 않고, 실천으로 지속되기도 어렵다. 전 인류의 공통적 인식과 광범위한 세계적 참여, 제도적 뒷받침 등이 개인의 노력보다 앞서야 한다는 생각이다. △축제에도 환경에 대한 보다 동시다발적공격적 메시지 필요 환경에 대한 전 인류의 관심을 환기하고, 무분별한 개발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축제를 통해 드러내 더 많은 국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는 없을까. 보다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보다 설득력 있게 말이다. 물론 에코 페스티벌(환경 축제)이나 환경예술제 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 축제 중에는 플레이그린 페스티벌이나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 에코페스트 인 서울 등이 눈에 띄는 환경친화적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자라섬 국제 재즈페스티벌의 경우 업사이클링 축제 장식을 활용하거나 포토존, 축제 조형물을 활용해 저탄소 생활실천 메시지를 재미와 참여라는 요소를 더해 운영하고 있다. 또 주요 공연장이나 먹거리 장터 중심으로 제법 규모가 큰 클린존을 설치하고, 생분해성 비닐봉투를 나눠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에코페스트 인 서울은 텀블러 등을 대여해주고 세척까지 해주는 서비스를 진행하기도 하고, 어린이를 위한 그린 놀이터, 친환경 체험 등을 다양하게 운영한다. 해외 축제는 국내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인다. 일본의 그린비트페스티벌은 업사이클링 전시와 기념품을 판매하고, 먹는 식기 아이템을 도입해 일회용품 사용을 감소시켰다. 이 먹는 식기와 젓가락은 일본을 넘어 해외 축제까지 납품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축제에서의 환경친화적 노력은 축제 운영의 일부라고 할 수 있지만, 축제 자체의 테마와 주제를 환경에 초점을 맞춘 페스티벌도 있다. 영국의 아주 오래된 축제인 글라스톤베리는 가장 공격적인 범세계적 환경단체 그린피스 등과 협업, 해마다 다른 테마로 환경 관련 섹션을 준비해 보여주고 있다. 작게는 스테인리스 스틸 컵을 사용하면서 한화로 약 8천원의 보증금을 내면 반납할 때 반환해주고, 반환되지 않은 금액은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역시 영국의 우드 음악페스티벌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자전거로 축제 현장을 방문할 경우 친환경 기념품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물론 전주세계소리축제도 지난해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에코페스티벌을 표방하고 생분해 제품과 재미를 부각한 분리수거 클린존, 업사이클링 쉼터 및 키즈존 등을 운영했다. 그 덕분에 소리축제에 대한 평가가 좀 더 후해졌고,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축제로서 위상도 높아졌다. 우리가 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계 다양한 축제를 평가하고 있는 평론가들이 에코 페스티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평가의 기준 가운데 주요 포인트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축제들이 좀 더 환경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을 시사해 주는 부분이다. △시진핑이 악마라고 부른 코로나이면을 보는 지혜를 이렇게나마 각자의 방식과 노력으로 국내외 축제에서 환경에 대한 메시지와 보존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찻잔 속의 태풍 같은 느낌이다. 소리축제 역시 환경에 대한 고민을 더 깊고 폭넓게 가져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이고 좀 더 광범위한 적용이 필요하다. 전 세계 주요 축제 커뮤니티를 조직해 일거에 동시다발적으로 한 해 축제의 주제와 메시지, 운영방식을 대대적으로 친환경적으로 전환하는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직접 반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의 산발적이고 부분적인 노력들이 좀 더 파급력을 갖고, 세계인의 의식 변화에 도움을 주지는 않을까. 축제는 축제에서, 그리고 각자의 일터와 분야에서 영향력과 파급을 확대해 가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사회, 나아가 전 세계에 선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구환경과 기후변화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코로나 19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지만, 동시에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경쟁과 개발에 열을 올려 온 우리에게 큰 교훈을 남기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환경에 대한 전 인류의 절박한 관심과 변화에의 촉구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툰베리를 위시로 여러 나라 10대들이 수업을 제치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고교생들 역시 이 시위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서 눈물이 난다. 이제 우리 기성세대들이 좀 더 가난해지고 좀 더 불편해지더라도 삶의 방식과 양태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지구가 살고, 아이들이 산다. 중국의 시진핑이 악마라고 부른 코로나의 역설은, 반드시 인류의 반성을 통해 이면을 보는 지혜와 탐색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김회경 전주세계소리축제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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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20 17:42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2

책방에 혹시 확진자가 다녀가면, 책은 모조리 소각장이죠. 코로나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 한 책방 대표가 말했다. 일순간 분위기는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가 됐다. 나는 우리 책방에 있는 책이 모두 소각장으로 끌려가 불에 타오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말도 안 돼. 그런 불안감을 안고 석 달을 보냈다. 기적적으로 코로나 불길이 잦아들었다. 모두가 애쓴 덕분이었다. 휴업하던 책방은 다시 문을 열고, 손님도 서서히 책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휩쓸고 간 화마는 아직 검게 남았다. 아니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과거 셀 수 없이 많던 동네 책방이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 것처럼, 버티고 버티던 책방들도 하나 둘 우리 눈앞에서 떠나버린 것처럼. 서점이 사라지자 독자도 사라지고, 독자가 사라지자 출판사가 사라진 것처럼. 책으로 풍성했던 생태계를 잃자 독서인구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작가들이 가난해진 것처럼. 책방과 상생하는 도시의 노력은 이제 더는 왜?라는 질문 앞에 제자리걸음을 해선 안 된다. 책방을 위한 도시의 노력은 책방을 위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지적자본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동네와 골목에 사람이 넘쳐날 수 있는 이유를 복원하기 위해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지켜나가야 할 최소한의 잠금장치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문화거점 책방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각 지자체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책방이 가장 많은 서울시는 어떤 방책을 내놨을까. 시는 소규모 동네책방 120개소에 긴급 운영비를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먼저 풀었다.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운영비, 장소사용료 등을 총 100만원 내외로 지원하고, 자체적으로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운영이 어려운 동네서점에는 영상 촬영과 서울도서관 유튜브SNS 채널을 통한 온라인 업로드를 돕기로 했다. 이어 헌책방 12개소에는 올해 개최 예정인 책 시장과 연계해 시가 헌책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5월 중으로 16개 헌책방에서 각 100만 원 내외의 헌책(총 2000~3000여 권)을 우선 구매하고, 헌책을 활용해 큐레이션 전시, 헌책 블라인드 북숍 등을 진행한다. 북큐레이션이란 특정 주제에 맞게 책을 선별해 보여주는 방법을 말한다. 이렇듯 같은 100만원이지만 기획 역량이 있는 동네책방에는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하고, 헌책이 쌓여 소비가 시급한 헌책방엔 직접구매로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 이번 서울시 지역 서점 지원의 특징이다. 여기에 카카오와 랜선 북클럽 운영을 제시한 점도 퍽 흥미롭다. 책방지기가 북클럽장이 되어 지금 함께 읽으면 좋을 책 1권을 선정하고 프로젝트를 개설하는 형식인데 멤버들은 매일 약속된 페이지만큼 읽고 인증하면 된다. 이를 운영하는 책방에게는 50만원을 지원한다. 주로 책방에서만 손님을 만나던 동네책방 주인들은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새 길을 통해 만나지 않고도 만나는 방식을 모색하며 책방 홍보의 새 장을 열고, 헌책방 주인들은 책 시장이라는 오프라인 무대에 나가 큐레이션 전시 등 새 영역에 다가서며 오래된 책의 가치를 알릴 수 있어 새삼 의미 있다. 100만원 지원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서울시 도서관의 계획은 동네서점과 헌책방의 문화거점으로서 역할을 인정하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새 실험과 방식으로 함께 돌파해보자는 잔잔한 응원이 깔려 있는 듯하다. 도내 300개 인증 지역서점을 대상으로 1곳당 최대 36만원의 도서 택배비를 지원하는 경기도의 깜짝 기획도 반갑다. 택배비 지원은 경기도의 착한소비 운동에서 나온 목록 중 하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책방에 방문하기 힘든 시기인만큼 손님들이 책을 주문하면 택배로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었다. 지역서점의 생태계를 꿰뚫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경기도의 아이디어가 핀셋처럼 뾰족하다. 코로나19 지역 서점 지원 정책에 관계없이 꾸준히 분발하고 있는 경남 김해시의 오름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해시는 동네책방 활성화를 위해 올해 6억600만원을 투입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해시의 동네책방 도서 구입비 예산은 6억 원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나 문화 프로그램 지원 예산은 예년 평균 3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2배 늘었다. 서점과 동아리를 이어주는 독서동아리 공간나눔 사업, 서점에서 작가와 시민들이 만나는 작가와 서점 나들이 프로그램, 지역서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2020년 동네책방 지도도 눈에 띈다. 작가와 서점 나들이 프로그램의 경우,?초기엔 작가 섭외부터 참가자 모집까지 시에서 일괄 추진하고 서점에서는 장소만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행사 역량이 있는 복합문화형 서점이 점점 늘어나 작년부터는 시에서 강사료 지급과 포스터 제작 등 행정적인 지원만 하고 작가 섭외, 참가자 모집 등 행사 전반은 서점에서 전담해 진행한다. 민과 관의 역할 분담을 통해 민간의 역량을 강화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도서관도 전주 책방과 서점의 생존을 돕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주시 인증 지역서점을 대상으로 올 한해 10% 할인가가 아닌 100% 정가로 도서를 납품 받고 있다. 이어 동네책방에서 산다, 동네책방이 산다를 주제로 전주 책방과 협업해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며 곧 있을 도서관 개관에 맞춘 행사도 함께 준비 중이다.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선 전주 책방과 함께하는 코로나 극복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주 책방 10곳에서 2만원 이상 선결제(책 구입)하고 SNS에 인증샷을 공유한 뒤 2명 이상을 지목하는 릴레이 캠페인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책방에 응원을 실어주기 위해 전주지속협이 기획했다. 캠페인은 몸은 멀리, 책은 가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 한 사람의 힘이 두 사람으로, 열 명으로, 백 명으로 이어지는 릴레이의 힘, 어려울 때일수록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전주 책방 10곳이 뭉쳐 탄생한 전주책방네트워크는 5월 1일 발대식을 갖고 공식 활동에 나섰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책방의 존재감을 더해 전주를 모두가 부러워하는 책의 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다각적인 교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전주책방네트워크 이지선 회장은 전주책방네트워크는 지역 사회를 바탕으로 책 문화를 만들어가는 책방들의 연합이라며 각 책방만의 개성 있는 (북)큐레이션으로 시민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과 독서 운동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 생존하는 책방과 실천하는 도시의 협업이 어느 때보다 고맙고 의미 있는 지금, 환기만큼 온기가 필요할 때다. /임주아 시인물결서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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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13 17:08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사람인(人) 그리고 예술인(人) 우린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한없이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있는 시점이다. 몇 개월간 자연의 재앙 속에서 오직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살아야겠다는 의지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어 보였다.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문화예술인이 겪고 있는 상황을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20년 가까이 예술가의 삶을 살고 있던 후배가 잠시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혼자의 몸이었으면 어떻게든 버텨보겠으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엔 이러한 사실조차 털어놓는 것이 부끄러웠다는 이야기에 선배 된 입장에서 한없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딱히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에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며 우리가 참 나약한 존재였고 특히 예술가의 직업은 그리 위대하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문득 어릴 적 부모님께서 항상 걱정하며 이야기하셨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예술을 하면 배고프다고. 그리고 그 당시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었으며 혹여 우리의 직업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결코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현 상황은 결코 누구의 책임과 문제가 아닌 완벽한 재난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전주시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예술인을 돕고자 하는 100인 릴레이 간담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으며 이내 긴급하게 단비와 같은 전주형 재난 기본소득 전주시 문화예술인 지원 사업이 추진된다는 것이었다. 예술인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선불카드를 지급한다는 사업이었으며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밖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청춘 마이크와 예술인 창작준비금의 규모와 인원을 대폭 확대하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긴급 모금 프로젝트 지원 기업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펀딩 형식의 모금과 같은 사업들 내세워 예술가의 창작활동 중단을 막기 위한 필사적인 움직임들 보이고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조금이나마 예술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업들이 펼쳐짐에 조금이나마 기운이 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아직 목이 마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요구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밖에 민간예술단체에서의 문화예술인을 응원하는 사업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이 구매한 커피와 엽서를 지역의 예술인에게 선물함으로써 서로 간 인연을 맺어주는 문화통신사의 기린쌀롱, 전북문화관광재단의 SNS를 통한 지역예술가 응원 댓글 달기 운동과 커피 나눔 같은 이벤트들이 작지만, 지역예술가들에게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또한, 개인의 참여도 빼놓을 수 없다. 그중 가장 가장 나눔은 어느 대학 교수님의 3개월간 월급 중 30%를 지역 청년 예술인에게 기부했다는 소식과 어느 교사께서는 지역 극단에 300만원의 후원금을 전달한 사실이 공개되어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인가 예로부터 고을에 어려움이 있거나 흉년이 들었을 때 마을의 최고 부잣집에서 곳간을 열어 당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던 백성을 구했다는 훈훈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 지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예술인 돕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곳이 있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전통공연예술인 긴급연대 제안 사업으로 서울지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전통공연예술인 대상으로 펼쳐지는 나눔 사업이었다. 약 400여명을 선정하여 개인당 10만원씩을 지급하고자 하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 긴급연대를 제안한 구성단체가 이색적이었다. 정확한 단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초동모임 구성체가 있으며 초동모임의 구성인원은 현재 다양한 국공립단체에 제직하고 있는 일부 단원과 민간단체의 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간략하게 이야기하자면 프리랜서와 어느 기관의 소속 단원의 위치를 벗어나 서로를 바라보자는 의미로 생각된다. 우린 현재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같고 우린 현재 같은 어려움을 보고 있다 그리고 손을 내밀고 싶고 지켜주고 싶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 이야기하였으며 예술이 세상에 하는 일처럼 예술가가 예술가의 삶을 바라보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무언가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며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글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나 또한 10년 전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 예술 분야의 일거리가 변변치 못한 적이 있었다. 항상 미래를 걱정해야 했고 생활고에 쫓기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항상 어려운 고비마다 주변의 동료들이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그들이 조금씩 나누어 주었던 작은 일거리들로 용기 내어 버틸 수 있었으며 조금씩 성장해 나아 갈 수 있었다. 위 내용을 보니 부족하지만 이젠 나도 누군가의 작은 버팀목이 되고 서로의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된다. 끝으로 현재 자연은 우리에게 가장 절묘한 타이밍에 가장 예술적인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생각한다. 부처가 되어야 알 수 있다는 깨우침을 준 것일 수도 있다. 한없이 긍정적인 생각일 수 있으나 사람으로서 평생 얻을 수 없을 허가된 휴식의 시간을 얻은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누군가처럼 직장이 있는 예술가처럼 삶이 보장되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한없이 나쁘고 좋게 생각하면 한없이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았을 때 현재는 결코 비관적이며 절망적이지 않음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비온 뒤 땅은 굳어지기 마련이다. △필자 이왕수 씨는 문화예술공작소 예술감독과 전주문화재야행 기획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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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5.06 16:33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부채를 찾아서-뉴질랜드의 부채

양들의 나라에는 어떤 부채가 있을까? 사람 숫자보다 양들의 숫자가 10배나 많은 나라, 사계절 기후가 온화하고 공기가 맑고 깨끗한 나라에는 어떤 부채가 있을까? 뉴질랜드 주요 지역을 차를 타고 횡단할 때 신호등과 자가용이 보이지 않아 첫 번째로 놀랐고, 스쳐 지나가는 산등성이마다 점점이 박혀 있는 수많은 덩어리의 정체가 양이라는 사실에 두 번째로 놀랐다. 순간 여기 부채들은 몽글몽글한 그런 느낌이 나지 않을까?라는 실없는 생각도 해봤다. 온화한 기후의 나라인데 더위를 쫓는 부채는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그 첫 번째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캔터버리 박물관에 있는 부채를 만나보자 뉴질랜드의 역사는 매우 짧다. 1870년에 개관한 캔터버리 박물관은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삶과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원형에 가깝게 전시하려고 노력했던 곳이다. 대부분의 박물관이 그 나라의 시대별 주요 의식주 생활에 관한 것을 전시해놓은 것처럼 여기 박물관도 입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 탈것 그리고 생활 잡화 및 수렵 채집에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원주민인 마오리족과 이주민의 삶을 균형 있게 배치하려고 했다 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원주민의 삶은 뒤처져 보이고 이주민의 생활상은 멋스러워 보이게 배치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관심이 갔던 부분은 화려한 의상과 함께 부채를 전시해놓은 곳이었다. 귀족 여성들의 의상이 마네킹에 입혀져 전시된 곳은 그 화려함이 마치 중세 시대 파티장을 연상케 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귀부인들의 의상과 어울리는 화려한 부채였다. 드레스, 모자, 핸드백 그리고 손에 든 부채까지 그 사치스러운 모습에서 이주민의 삶과 원주민의 삶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씁쓸한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의복의 경우, 유럽의 복식 문화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흥미를 끌었던 부채는 단일 문화라기보다는 복식 문화의 일환으로서 유럽식 부채에 마오리족 특유의 장식이 가미되었다고 한다. 부채의 화려함은 사실 더위를 쫓는 기능으로서의 부채가 아닌 귀족 문화의 하나로 보인다. 우리나라 합죽선과 달리 선면을 실크나 금으로 도색하거나 골각기를 이용하였고, 부챗살도 상아나 다른 재료를 사용한 것이 많았다. 부채의 끝을 나풀거리는 실의 느낌이 나도록 표현한 것도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뉴질랜드는 품질이 좋은 옥의 생산량이 많았고, 마오리족은 이 옥을 무기나 생활용품에 접목시켰다. 마오리족은 옥을 다루는 데 매우 능숙했다고 하니 이러한 점이 부채를 제작하는 데에도 영향을 크게 미친 듯하다. 그래서 화려한 드레스의 장신구나 신발뿐 아니라 부채에도 옥이 많이 사용됐다. 여기 박물관에 보관된 의상을 보면 사실 부채가 귀족들의 드레스 코드에 맞추어 제작된 느낌이 많습니다. 아마도 당시엔 더위를 쫓는 그런 기능보다 멋을 내는 패션의 도구로서 사용된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 여기는 식민지였고, 정복 국가의 패션 문화와 마오리족의 의상은 완전히 달랐으니까요.(캔터버리 박물관 도슨트의 설명) 그 동네는 바닷가라서 조개류가 많지. 그래서 부채에 바닷가에서 발견되는 여러 가지 조개류가 사용되는 것 같아. 조개를 갈아서 선면에 붙이기도 하고 모양을 내서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연꽃 모양으로 부채를 만들거나 혹은 연잎 색깔을 내기 위해 한지를 물들이기도 하거든.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가지고 선면에 색을 입히거나 선추를 만들거나 화려한 장식을 붙이기도 하거든. 그리고 깃털 부채도 우리 동네는 우리 동네 새들의 깃털을, 그 동네는 그 동네에 사는 새들의 깃털을 붙이겠지. 부채를 보면 대략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부챗살을 이루는 대나무도 기후에 따라 다 다르고 장식도 다 다르니까.(캔터버리 박물관 부채에 대한 국가무형문화재 김동식 선자장의 설명) 호주 대륙이 아시아 사람들과 인종상 연결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중국에서 넘어갔다는 말도 있고, 우리나라 부채랑 비슷한 디자인의 부채가 원형으로 있다는 말도 있고. 어떤 자료를 보면 그 대륙에 우리 태극 모양의 부채도 있다고 하는데 이 부채가 우리나라에서 넘어갔다기보다는 뭔가 중국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 대륙 부채들에서 아시아 느낌이 강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요.(캔터버리 박물관 부채에 대한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이신입 선자장의 설명) 부채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한 필수품이다 보니 굉장히 역사가 오래됐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부채는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문화를 대표하고 있지만, 복식 문화와 연결된 부채는 귀족 문화를 대표한다.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만들어 온 이 대륙의 부채 역시 귀족 문화와 서민 문화가 결합한 형식을 보여준다. 부채는 기본적으로 더위를 쫓고 햇볕을 가리는 기능, 시와 그림을 그려 넣어 자신의 인문예술적 소양을 표현하는 예술품으로서의 기능, 멋스러운 선추를 달거나 선면에 예쁜 색을 넣는 멋쟁이의 필수품으로서의 기능, 소리꾼의 가장 중요한 소품으로 활용되는 기능, 마지막으로 친한 사람에게 주는 정중한 선물로서의 기능이 있다.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부채는 왕실에 진상되거나 얼굴을 가리는 차면용으로 쓰이거나 뇌물로 사용되거나 예술품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세종실록을 보면 왕실에 진상되는 부채가 금이나 은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너무 사치가 심해지자 이를 제재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왕이 깃으로 만든 부채를 가지고 다니며 얼굴을 가리기도 하였고, 여성들이 차면용으로 부채를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아울러 선추에 사용되는 보석이 너무 비싸 폐단이 많아 이를 금하거나 합죽선의 크기가 너무 커 제한한다는 자료도 볼 수 있다. 캔터버리 박물관 자료를 보면, 이곳 부채 역시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주민들이 사용하던 부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씨 영향도 있겠지만 귀족 문화의 산물로서 작동된 부채는 대부분 부채 고유의 기능보다 복식 문화의 하나로 화려하게 만들어졌고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기록에서 보이는 부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 상류층의 부채가 다수를 차지한다. 반면 서민들의 부채는 이와 매우 달라 더위를 쫓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게 만들어졌고, 그 재료 역시 자연에서 조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인구의 80%가 유럽계이고 9%가 원주민인 마오리족으로 구성된 뉴질랜드에서도 박물관이나 문헌에 나오는 부채는 대부분 이주민들의 문화 속에서만 보이고 있다. 마오리족의 문화가 많이 소실되어 그들이 대중적인 생활 문화를 알 수 없음이 매우 아쉽다. 우리 생활 속 깊숙이 부채가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생활 속 부채 이야기, 오늘은 뉴질랜드에서 만난 부채를 소개했다. 앞으로 우리 삶에 깊게 녹아 있는 부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나보고자 한다. 동화 속 손오공이 욕심냈던 파초선이라도 있다면 지금 모두를 힘들게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저 멀리 날려 보내련만. 부채의 자존심, 전주부채가 만나보는 부채 이야기, 기대하시라. /이향미 전주부채문화관 관장 ■ 찾아간 곳: Canterbury Museum (Rolleston Ave, Christchurch Central, Christchurch 8013 Newzealand) ■ 찾아간 날짜: 2019년 1월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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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22 15:36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우리의 ‘연결(Link)’은 코로나보다 뜨겁다

온 인류가 미증유의 위기 속에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실존할 것인지, 아니 과연 실존할 수는 있을지, 거대한 변화와 두려움 앞에 서 있다. 급작스레 들이닥친 이 위기에 대한 해석은 인류의 숫자만큼 다양한 개인차를 그리고 있다. 다소 불편하긴 하나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낙관주의와 브레이크 없는 발전의 속도전을 펼쳐온 인류의 생존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주의 사이에 무수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낙관주의는 자칫 교훈과 성찰이 부족해보이고, 회의주의는 무기력이 내재해 있어 불안하다. 다행히 우리가 이 위기를 넘어 생존한다면, 그때부터가 인류의 거대한 자성과 집단지성이 필요할 것이다. 기왕지사, 코로나19는 어떻게 실존할지를 매섭게 일깨우는 죽비였으면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생존을 위한 변화들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역시 전대미문의 시련을 맞았다. IMF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안하고 충격적이다. 각종 공연과 축제, 예술제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하반기로 연기됐다. 가장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불확실성 때문이다. 언제 어떻게 이 위기를 벗어나 정상화될 수 있을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그로 인해 그 어떤 계획도 대비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유, 감성의 확산을 생명으로 하는 현장예술은 할 수 없이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실재하기에 어떻게든 실존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전 국가적이다. 우리지역도 아직까지 전국적인 상황에 비춰볼 땐 미미하나, 전시나 공연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중계하기 위해 조금씩 기지개를 키고 있는 형국이다.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를 비롯한 축제조직들의 고충도 커져가고 있다. 특히 세계 여러 아티스트들을 모으고 이들과 사전 준비를 통해 다양한 협업작품을 선보여 왔던 소리축제는 국내외 상황을 동시에 살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이 시국이 하 수상하기만 하다. 전 세계 다양한 월드뮤직 평론가들로 구성된 TWMC(트랜스클로벌 월드뮤직차트)가 2년 연속 소리축제에베스트 페스티벌 세계 1위의 타이틀을 안겨줬다. 이것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고, 바람직한 축제의 전형으로 삼을 만 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년엔 소리축제 20주년이 온다. 그래서 올해는 올해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것들, 올해가 지나면 의미가 없는 프로그램들이 있기에 기약 없는 나날들이 더욱더 야속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소리축제의 주제는 __잇다(link)다. 코로나19가 세상을 뒤엎을 거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는 올해 주제를 잇다라고 정했다. 줄로 연주하는 현악기를 모티브로 하는 만큼, 소리축제가 세계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협업을 가장 잘하는 만큼, link로 또 한번 거대한 감동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에서다. 그 외에도 찾아가는 소리축제를 강화해 전라북도 14개 시군 주민들을 잇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배려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해 모두의 마음도 이어보고자 했다. 한-러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올해부터 내년까지 양 국가를 오가며 아티스트를 교류하고 함께 다양한 공연도 만들어보자고 했다. 지금은 서로 상황을 지켜보며 그저 무사히 이 환난을 넘어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8월에 열릴 예정이었던 에든버러 페스티벌이 얼마 전 전격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우리는 조금 더 불안해지고 있다. 국내 축제나 행사들이 여름을 지나 하반기에 화려하게 재기할 날을 꿈꾸고 있지만, 해외와의 접점이 있는 국제행사들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북반구와 남반구를 순환하며 코로나 19가 1년을 훌쩍 넘겨 유행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올해 소리축제는 9월 16일~20일 개최 예정으로 뜻하지 않게 코로나19의 위기 속에 슬로우 버튼을 누르고 날을 세워 정세를 살피고 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 난 것은 없다. 다만, 너무도 당연하게 해왔던 일들의 소중함과 연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전 세계가 얼마나 긴밀하고 촘촘하게 이어져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올해 잇다라는 이 주제가 새삼스러울 만큼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고, 서로에게 링크되어 있었다. 그래서 서로의 문화예술을 동경하고 존중하며 배우고 격려할 수 있었다. 공연예술제인 소리축제는 현장예술의 감동과 영감의 교류에 가장 큰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내부적으로 최후의 상황에서는 15개 나라 정도를 모아 온라인 공연을 해볼까도 고려하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최후의 보루 삼아 고민하고 있는 방법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그 뜨거운 감동의 물결, 피부에 와 닿는 충만한 감성의 공유는 조금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설명하고 싶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하루빨리 국내외 상황이 개선되고 안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년 20주년을 향해 건실한 마침점을 찍고 의미 있는 감동의 시간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다. 실재하고 있는 우리는 좀 더 주체적으로 실존하길 원한다. 문화예술은 실재하고 있는 우리에게 실존의 기쁨을 주고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것들끼리 서로를 들여다보고 동경하고 견주게 해준다. 문화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우리에게 때로 삶을 어떠한 것으로 규정하게 해주고 용기를 갖게 해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문화예술은 그렇게 존재하며 가치를 발현해 왔다고 믿는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전 세계가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화예술을 소홀히 하거나 뒤로 미뤄두지 않기를 바란다. 소리축제가, 문화예술이, 전 세계 예술인들이, 예술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 모두가 안녕하시길, 그리하여 현장에서 다시 뜨겁게 연결되길, 간절히 바란다. /김회경 전주세계소리축제 대외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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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15 18:11

[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

최근 SNS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접했다. 경기 지역의 한 서점인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겪는 지역서점의 어려움을 호소한 글이었다. 그는 공공도서관이 올해 한시적으로라도 10퍼센트 할인을 받지 않고 정가로 도서관 자료를 구입해주면 좋겠다고 썼다. 서점이 하도 어려우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올린 글이라 했다. 그런데 해당 지역 시의원이 그 글을 읽고 시에 건의한 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정책이 결정됐다고 한다. 관내 지역서점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자료구입 예산 중 미집행된 10퍼센트 할인 없이 정가로 구입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는 실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면서 이 정책으로 인해 한 서점당 약 350만 원의 수익이 추가된 셈인데 혜택을 받는 서점이 27곳이니 시 전체 지역서점들에게는 약 1억 원의 추가 수익이 돌아가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제안 당사자로서 무척 고맙고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고 한다. 서점 입장에서는 정가를 모두 받으면 수익이 늘어나 좋은 일이지만, 도서관의 자료 구입량이 줄어들면 시민과 출판사들이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염려에서였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다행히 기관 측에서 정가 구입으로 줄어드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올해 1차 추경에 9,700만 원을 세워 걱정이 해결됐다는 소식이다. 놀랍고 감동적인 행정의 본보기라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 지역서점 인증제를 적극 활용해 지역서점에서 우선적으로 도서를 구매하라고 권고했다. 코로나19로 경영난을 겪는 지역서점들의 수익을 개선하고, 도서납품을 위해 이름만 걸친 이른바 유령서점을 가려 달라는 취지에서다. 지역서점 인증제는 이러한 유령서점을 막기 위해 실제 매장을 운영하는 지역서점인지 확인하고 인증하는 제도로 현재 광역 2곳과 기초 9곳 등 11개 지자체가 조례지침공고 등의 형태로 실시하고 있다. 지역서점인증제는 2015년 민간단체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추진해 그해 전주시에서도 도입했다. 현재까지 시에서 지역서점으로 인증한 서점은 총 94개소다. 그 사이 2017년에는 전북도에서 의미 있는 조례도 나왔다. 국주영은이성현 의원이 공동 발의한 전북도 지역 서점 활성화에 관한 조례안(이하 도지역서점조례안)이다. 조례의 골자는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서점 틈새에서 지역 서점이 경영 안정화를 이뤄 지역문화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5년 전 지역서점 인증제도에서 시작된 지역 서점 활성화 움직임은 전국적으로도 광역 자치단체 조례로 확산되며 본격적인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한해가 다르게 바뀌는 지역서점 생태계에서 어떻게 빨리 제대로 조례가 실행되느냐가 관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광역지자체는 도서를 구입할 때 대상 선별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여기에 중요한 가이드라인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지역서점 인증제다. 때문에 인증제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튼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며 각 지자체에서 의견을 수렴해 수정을 거듭하기도 한다. 지역서점인증제는 얼개는 비슷하지만 들여다보면 지자체마다 그 세세한 결이 다른 경우가 많다. 2017년 광역 단체에서는 처음으로 인증제도를 실시한 경기도가 모범사례로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그 결에 있다. 인증 기준을 살펴보자. △경기도 내 서점으로 실제 일정 규모의 방문용(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할 것 △사업자등록증상 사업의 종류가 소매 서적업으로 등록되어 있고 도서판매를 주종으로 할 것 △경기도에서 사업자등록일 기준 1년 이상 영업을 지속하는 서점일 것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영업(주 40시간 이상)하는 서점일 것 △서적총판, 학원, 납품위주 업체, 종교서적 전문서점, 어린이 전집 할인매장 등은 제외 문체부에서 권고한 유령서점 차단막이 인증기준에 명확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깊다. 또 하나는 인증 유효기간이 단 2년이라는 점도 배울 만하다. 2년 마다 인증을 갱신하며 서점의 사업자 상태와 운영 상황을 점검하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통해 인증제를 수정해나가면서 서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발전할 수 있도록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특히 전주시에서도 도서관과 함께 기록할만한 좋은 사례가 태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도시의 실핏줄인 작은 서점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지역과 상생하며 나아가길 바라본다. 필자는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동안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라는 화두를 통해 서점과 함께 뛰는 지역 이야기를 이어나가려 한다. /임주아 시인물결서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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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4.08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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