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여름나기, 책방에서 보내는 휴가 어때요?
이 시대의 여름, 축제는 없지만 휴가는 있다. 두꺼운 책처럼 막막한 일상을 잠시 접고 떠나고 싶을 때, 조용히 혼자 다정히 둘이 혹은 사이좋게 여럿이 어딘가를 탐색하고 싶을 때, 꼭 가봐야지 찜해뒀던 작고 특별한 공간들 중 빼놓을 수 없는 동네책방이 생각날 때, 수줍은 혹은 수다스러운 책방지기가 기다리고 있는 전주 책방 10곳으로 작은 휴가를 떠나보자.
△혁신도시에도 책방이 생겼다
전주 혁신도시 엽순공원 앞 한 건물 2층에 ‘오래된 새길’이라는 책방이 둥지를 틀었다. 방송기자 출신 정진오 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작은 책방이라는 말이 쏙 들어가게 책이 참 많다. 마치 작은 도서관을 방불케 하는 이곳엔 인문사회과학에서 종교서적까지 8천 권 가량의 새 책과 헌책이 넉넉하게 펼쳐져있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맘껏 책 좀 읽고 싶어서 급기야 책방을 열고 말았다”는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아무리 영상매체가 발달해도 책을 집어 들지 않으면 존재의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우리는 다시 오래된 새 길을 찾는다.
△전라감영 앞엔 에이커와 카프카
전라감영길을 지나면서 이 책방들에 안 들르면 손해다. 바로 앞 편의점 건물 3층 계단을 올라가면 전북 최초 독립출판물 전문책방 ‘에이커북스토어’가 있어서다. 독립출판은 원고부터 제작, 유통, 홍보까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만드는 책을 말한다. 이명규 대표는 “한정판이라 때를 놓치면 더 이상 구하지 못하는 책이 많다”고 말한다. 일반 서점이나 대형 온라인 서점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립출판물이 성실히 진열되어 있는 이곳은 독립출판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책방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명규 대표가 말하는 책방 운영의 짠내 나는 슬픔과 그럼에도 기쁜 이야기를 담은 독립출판물이 곧 출간된다하니 기대해보자.
에이커에서 나와 완산경찰서 옆길로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 왼편에 나무로 만든 계단이 눈에 띈다. 삐그덕삐그덕 한발 한발 올라가면 ‘책은 우리 안의 얼음을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과 정신을 책으로 큐레이션한 ‘서점 카프카’가 있다. 소설가 강성훈 씨가 운영하는 이곳에는 다양한 공부모임과 창작모임이 있어 찾아오는 매니아층이 두텁다. 문학전문서점답게 시, 소설, 산문집 등 충실히 선별된 목록도 돋보인다. 카페도 겸하고 있어 한나절 머물기에도 좋다. 통유리창에 붙은 긴 책상에 앉아 그에게 추천받은 소설 책 한권으로 마음을 보살펴보자.
△청년몰의 뚝심 ‘책방 토닥토닥’
“책으로 몸과 마음을 토닥여주는 작지만 큰 책방을 꿈꿔요!”전직기자 문주현 씨와 인권활동가 김선경 씨가 운영하는 책방 토닥토닥은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 있는 짱짱한 책방이다. 3.5평 작은 ‘우주’로 시작했지만 올가을 12평쯤 되는 좀더 큰 세계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몰 카페 나비였던 자리로 옮겨 책을 읽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안락한 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 뚝딱뚝딱 오늘도 공사 중이다. 3.5평의 원래 책방도 그대로 운영 중. 독립출판물과 인문사회, 철학, 문학, 그림책 등을 판매하며 페미니즘 독서모임을 이끌고 있다.
△송천동의 다정한 두 얼굴
20년차 카피라이터의 위엄과 ‘따수운’ 넉살로 송천동 골목을 휩쓸고 있는 ‘잘 익은 언어들’의 이지선 대표. “책을 읽는 이유는 더 나은 나를 찾기 위해서이자 더 나은 우리를 만들기 위함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오랫동안 읽고 쓰기를 지속하면서 좀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래서일까. 인문사회서적을 포함한 문학, 그림책, 동화, 그래픽노블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이 책방 가득히 꽂혀 있는 책방은 모든 책을 망라한 ‘책 점빵’을 떠올리게 한다. 전주책방 10곳이 모인 ‘전주책방네트워크’의 회장님 아닌 ‘이장님’으로 좀더 나은 전주 책방 생태계를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발로 뛰고 있는 이지선 대표가 펼쳐 보일 잘 익은 책방들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이번엔 송천동의 소소당으로 가보자. ‘노란 불빛의 서점’이라는 책의 그곳처럼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불빛을 따라 들어가면 책장 가득한 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두세 명의 손님과 책 넘기는 소리, 커피와 꽃차 향기가 발길을 붙든다. 김정숙 대표는 “지역주민들의 문화센터가 되길 꿈꾸는 우리 책방은 원데이클래스와 모임장소으로도 계속 공간의 반경을 넓혀가는 중”이라 말한다. 잔정 많은 주인장이 있는 따뜻한 카페이자 근사한 서재가 있는 이곳에서 소소한 휴가를 보내보자.
△하가지구 골목을 살리는 책방
덕일초등학교와 덕일중학교 사잇길에서 마을쪽을 바라보면 흰 바탕에 검정글씨가 정갈하게 박힌 살림책방 간판이 보인다. 전주 객리단길에서 만났을 법한 소품샵 같은 깔끔한 공간인데 들어서면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테이블에 앉아 드립커피를 맛볼 수 있고, 마루에 올라가 그림책을 고를 수도 있다. 전주 책방에서 가장 굿즈(상품)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종이를 만지며 느껴지는 촉감”의 미덕을 아는 홍승현 대표는 대전 출신이지만 전주가 좋아 이곳에 터를 잡고 책방을 열었다. “책으로 지역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싶다”는 그의 의지가 작은 골목을 지나 책방 곳곳 묻어나 있다.
△금암동에 산다면 책방에서 놀지!
“우리들의 지적놀이터로 놀러오세요!”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선후배 5명이 모여 금암동 골목에 카페형 서점 ‘책방놀지’를 만들었다. 한적한 동네에서 음료를 매개로 책을 소개하는 책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곳은 인문사회서적과 문학서적을 갖추고 있다. 책방놀지 운영진은 “지식을 공유하는 오프라인 플랫폼이자 책을 매개로 한 문화공간“이라고 말한다. 아시아 사회·문화를 탐구하는 연구소와 1인 출판사도 겸하고 있다. 책방놀지가 엄선한 제철 음료를 마시며 인문학 책 한권 즐기는 것도 좋겠다.
△그림책은 같이 읽어야 가치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품은 한 권쯤은 있다는 것이 ‘책방 같이[:가치]’ 대표들의 지론. 오랫동안 그림책을 좋아하고 공부해온 특별한 자매가 더 많은 이들과 읽고 보는 기쁨을 나누고자 서학동에 책방을 냈다. 그림책이란 무엇인가부터 제대로 읽는 방법과 다양한 활용법까지 세심하고 촘촘하게 알려주는 북큐레이터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책방을 나오는 길에 본 서학동마을 풍경이 조금 더 그림처럼 보일 것이다.
△선미촌에 새 물결을 부르는 책방
전주에 사는 청년작가 7인이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골목에 작은 예술책방을 열었다. 대안과 답지가 필요한 이곳에 새로운 물결을 부르고 싶어서다. 책방 이름은 물이 좋은 동네라는 서노송동 물왕멀길의 지명을 살린 ‘물결’과 서점을 뜻하는 옛말 ‘서사’를 합쳐 물결서사라 지었다. 문학, 음악, 영화, 사진, 그래픽노블 등 새 책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과 시민들이 기증한 귀한 헌책을 만날 수 있는 ‘공유책방’도 있다. 예술인 워크숍과 시 낭독회, 영화상영회 등 재미있는 일도 자주 꾸민다. 예술인과 시민들이 마음 놓고 찾을 수 있는 꾸준한 책방의 서사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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