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수개월은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살고 있는지 맹렬하게 깨우쳐준 시간이었다. 끝없는 세상에서 드넓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균과 맞닥뜨리고 전에 없던 현실세계를 살게 됐다. ‘세상은 인간이 아니라 균이 지배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어보며. 그러므로 지구는 얼마나 좁은 방인가.
“까똑-.”
저녁 6시 단톡방 알림이 울렸다. 오늘 근무자인 A의 책방일지다. 7명이 돌아가며 하루씩 근무하는 우리 책방은 수요일을 제외한 매일 1인 책방지기 모드로 운영된다. 그래서 책방 퇴근 전후 간단하게라도 단톡방에 올라오는 책방 일지는 일종의 인수인계이자 중요한 알림판이 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1. 청소현황: 책방바닥 및 화장실 2. 다녀가신 분: 옆집 이모, 성악가 B씨, 사진가 C씨. 3. 개선사항: 오늘 날씨 쪄죽는 줄 알았음. 에어컨 꼭 켜기. 4. 판매도서명: 없음. 5. 매출: 0원.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요즘 책방 일지의 매출 항목은 텅 비어있을 때가 많다. 자영업은 늘 어렵고 책방은 매일 어렵다지만 지난해 이맘때쯤과 비교해보면 고개를 들기 힘든 수준이다. 이런 날엔 단톡방도 조용조용하다. 다른 책방들도 사정이 다르지 않으니 앓는 것도 사치인 걸 안다. 그저 조금씩 현실을 바꿔나갈 수밖에. 그러나 착한 악마들은 늘 가까이서 속삭인다. “그러니까 누가 돈 안 되는 거 하래?” “좋아서 하는 건데 어쩌겠어.” “책방도 그냥 자영업이잖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교묘하게 속는 기분이 든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에 일일이 왈가왈부하기 고달파진다. 그러면서도 본다. 재난지원금으로 책을 사려고 책방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응원을, 몇 달 만에 어렵게 열린 시 쓰기 모임인 걸 알고 찾아왔다며 간식을 펼쳐놓는 단골 주민들의 애정을. 코로나 시대의 각자도생 나날 속에서도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낯선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계속 느낀다. 그것이 때ㅤㄸㅒㅤ로 책방과 서가 속에 있다고 믿는다.
△재난지원금으로 책 사러 온 손님
바람 부는 5월 어느 날 30대 손님 두 명이 책방에 왔다. 한 명은 주문한 책을 찾으러 왔고 한 명은 책을 고르러 왔다. “재난지원금 첫 소비를 ‘책’에 쓰고 싶다”는 손님 말에 가만히 웃기만 했다. 책방의 작은 서가를 둘러보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런 이상한 기쁨은 무엇인가 새삼 신비로웠다.
“아끼셔야죠. 제 가방에 담아갈게요.”
손니들이 고른 책을 각각 종이봉투에 담으려하자 모두 손사래를 친다. 카드를 긁으니 휴대폰에서 딩동 소리가 들린다.
“와, 재난지원금 썼다고 문자 왔어요, 완전 신기해!”
우리는 서로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도 처음 재난지원금을 썼고, 책방도 재난지원금 첫 손님을 받았다.
“이것도 기념인데 한 마디 써주세요.”
책방 카운터에 놓인 방명록을 내밀었다. 길이길이 남을 또렷한 글씨가 마음에 들어왔다.
‘재난지원금 1호 사용자 다녀갑니다’
△3개월 만에 열린 시 쓰기 모임의 반가움
“이게 정말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저녁 7시 책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겨우 초면을 벗어난 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았다. 낯선 듯 익숙하게 인사하고, 누군가 가져온 커피와 간식을 먹는다. 오늘은 원두커피에 김밥과 꽈베기가 책상 위에 놓였다. 이때 책방에서 준비한 시인의 시가 프린트물로 김밥 옆에 놓인다. 책방지기의 간단한 설명 이후 한 사람씩 소리내어 시를 읽는다.
이 모임의 이름은 ‘시 읽고 100행 시 쓰기’다. 시인의 시를 읽고 그 시인의 느낌을 한번 걸쳐 100줄이 되어도 좋은, 막힘없는 무언가를 써보는 것이다. 2019년 10월 처음 시작해 코로나로 3개월을 쉬고 지난 5월 다시 시작한 이 모임엔 매번 7명 쯤 모인다. 나이도 동네도 직업도 다양하다. 이 모임의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있다면, 자신의 글을 검열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저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벼운 옷을 걸치는 느낌으로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모두 지금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으로 연필 써내려가는 소리를 들려줄 때 약간 소름이 돋는다. 가르치는 사람 없고 가르침 원하는 사람 없는 느슨한 시(詩) 모임. 이 헐렁한 예술적 연대가 종종 신비롭다. 저녁에 모여 앉기 어려운 전주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 작은 책방에서 시를 읽고 쓰는 일. 3개월 만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이 퍽 반가웠다.
△그럼에도 아직은
최근 전주책방 10곳이 모여 ‘전주책방네트워크’를 결성한 이후 책방들은 이전보다 더 자주 모이고 더 할 일이 많아졌다. 네트워크가 추진할 일들과 전주시 도서관과의 협업을 포함해 함께 논의해야할 사안들, 각자 처리해야할 책방 일까지. 두런두런 치열하게 얘기하다보면 어느덧 밤이다. 어려운 날들 속에서도 함께 모인 힘이 단단해지길 바라며.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책방토닥토닥’ 김선경 대표는 최근 소상공인지원금 60만원과 재난지원금 40만원 덕분에 조금 숨통을 텄다고 말한다. 책방 운영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매일이 재난 상황”이라며 씁쓸해하면서도 한 권이라도 사러 찾아오는 손님이 있을까봐 자리를 뜨지 못하는 상황을 미워하지 않는다.
전북대 대학가에서 책방을 운영하다 전주 중앙동 전라감영 복원지 옆으로 자리를 옮겨 2년째 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에이커북스토어’ 이명규 대표는 책방에서 유일하게 온라인에서도 책을 판다. 온라인 판로가 있어 그럭저럭 운영된다지만 한 명 인건비도 나오기 힘든 실정이다. 뻔한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두 번 오는 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한번 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 두 번 오고, 또 오고 계속 오는 분들 덕분이란다. 모든 책방이 그렇지만 “이곳에 오기 위해 전주에 왔어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코로나 시대, 동네책방의 풍경은 단단하게 또는 아슬아슬하게 계속된다.
/임주아 시인·물결서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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