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마한문화권을 둘러싸고는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역사문화특별법)’ 개정안 포함 여부가 관심사다.
당초 전북에서는 지역 마한문화권을 역사문화특별법의 범주에 넣으려고 했으나 충북중원문화권 추가 의견이 제기되면서 무산됐다. 이후 전북도는 충북의 중원문화권, 강원의 예맥문화권과 ‘병합심사’를 염두에 두고, 지역학계와 마한문화권 포함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 개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에 올라가 있다.
도와 지역 역사학계는 문헌사료와 고고학적인 유물을 근거로 전북 서남북부에 마한 11개의 소국이 존재했고, 이들 소국이 중심부를 형성했다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전국 역사학계에서도 마한이 전라도에 존재했다는 이론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다만 존속했던 기간과 종족의 분포양상, 고조선 준왕의 남쪽 이동 등을 두고는 이견이 존재한다. 전북 마한문화권에 대한 이론과 쟁점, 과제를 짚어본다.
전북 마한문화권 관련 사료·유물유적
중국 문헌사료인 <삼국지> 와 <후한서> , 한국 사료인 <고려사> , <제왕운기> , <동국통감> , <동사강목> 에 따르면, (고)조선왕 준(準)이 위만에 패한 뒤 남쪽으로 내려와 마한을 정복하고, 스스로 한왕에 올랐다고 나와 있다. 동사강목> 동국통감> 제왕운기> 고려사> 후한서> 삼국지>
특히 <제왕운기> , <동국통감> , <동사강목> 에서는 준왕이 내려온 지역을 금마군(익산)으로 지목하고 있다. 동사강목> 동국통감> 제왕운기>
관련 유물유적도 계속 발굴되고 있다. 최근 만경강 이남과 황방산 일대에서는 대형 군집묘와 구상유구(U자 모양 수로)가 발견됐다. 김승옥 전북대 교수는 관련 연구를 통해 “국읍을 중심으로 상당한 규모의 인구가 밀집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익산 영등동과 율촌리에서는 각각 주구묘와 분구묘가 잇달아 발견됐는데, 특히 주구 내에서는 마한 초기 문화권을 보여주는 점토대토기들이 다량으로 발견됐다.
중국-마한-변·진한 왜로 연결되는 국제교역망을 설명해주는 유물도 발굴됐다. 철기, 푸른 유리구슬, 덩주식 동검, 중국산 동경 등이 대표적인데, 이는 만경강 일대와 완주 갈동과 신풍 익산 평장리 등에서 확인된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은 “마한에 대한 기록이 적은 상황에서 각종 고고학 유적과 뮤이 출토돼 역사상을 복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평했다.
전북 역사학계 해석
전북 역사학계는 문헌사료와 유물·유적을 근거로 전북 서북부 지역이 마한의 중심부였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학계는 중국문헌사료 <삼국지> 에 등장하는 54개 마한소국 가운데 11개~12개 정도가 전북에 위치했다고 보고 있다. 익산의 감해국, 고창 모로비리국, 김제 벽비리국, 부안 지반국, 정읍 구소국, 군산 만로국, 익산 건마국, 정읍 초산도비리국, 전주 불사분사국 등이다. 묘제와 토기문화권에서 나타난 공통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한 곳이다. 삼국지>
최 이사장은 “특히 감해국, 벽비리국, 모로비리국은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존속했던 시기도 기원전 3세기 말~기원 후 6세기 중엽까지로 보고 있다. 총 4단계로 나눠진다. 조기(기원전 3세기 말~기원 전후)는 만경강 등 서남해안 일대, 전기(기원전 1세기~3세기 중반) 서울·인천 경기·충청·전라 일대, 중기(3세기 중반~4세기 중·후반) 인천·경기 일부와 전라일대, 후기(4세기 후반~6세기 전후) 고창과 영산강 일대에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전북 마한소국이 사라진 시기도 4~5세기로 보고 있다. 백제가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점차 영역을 확대해가는 과정에서 병합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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