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기문(己文) 삭제 요구’와 ‘반파 장수 가야설’등 소위 전북 가야사와 관련해 지역사회에서 갈등이 지속되는 이유를 두고 자치단체가 역사를 검증 없이 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가 문제라는 진단이 나온다.
유물·유적이 묻혀있는 곳을 지표조사를 하거나 발굴한 뒤, 통설과의 비교·분석, 비판적인 접근이 부족한 상태로 ‘전북 가야의 유물’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 논란이 있는 <일본서기> 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본서기>
전국 고대사학계에서 반대 의견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철저한 검증과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바른 등재를 원하는 남원지역 초중등 교사모임’에 속한 한 중학교 교사는 교육청에 “남원가야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서류에 적힌 ‘기문’ 삭제를 부탁드린다”는 민원을 넣었다.
이를 두고 지역사회에서 계속 갈등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앞서 남원 지역 시민사회 단체는 여러 차례에 걸쳐 “‘기문’이라는 명칭은 <일본서기> 에서 당시 남원 일대를 지배한 정치체를 일컬은 것”이라며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서기>
반면 곽장근 군산대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은 “임나일본부설이 허구라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 알려져 있는 사실”이라며 “가야 소국의 하나인 ‘기문’이란 용어는 일본서기 뿐 아니라 다른 사료에도 나와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역시 비슷한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반파 장수 가야설’을 두고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실학의 비조인 성호 이익은 최초로 가야의 범위를 전북 동부까지 확장했다”며 <일본서기> 와 <양직공도> 에 나온 내용을 토대로 반파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특히 “섬진강 하구는 반파국이 남해로 나가는 수송관문이고, 이와 연계된 운봉고원과 장계분지에서는 막대한 제철 유적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양직공도> 일본서기>
반면 최규영 진안향토사연구소장은 “역사와 고고학은 ‘문헌과 물증’으로 입증해야 한다”며 “봉화망의 실재(實在)도 의문이고, 언제 운용되었는지도 모를 제철지를 놓고 가야 제철지로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섬진강 물길이 반파의 수송로 역할을 했다면 장수와 섬진강 하구는 수로로 연결돼야 하는데, 장수와 장계는 금강수계”라고 부연했다.
자치단체가 ‘국정과제에 따른 전북 가야사 발굴’을 명분으로 검증 없이 지표조사와 발굴만 밀어붙인 게 이같은 갈등의 원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 전북 동부 지역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발견된 제철, 봉수, 고분은 800여개로 알려져 있지만, 전부 가야시대 유물로 보긴 힘들다는 게 고대사학계의 주장이다. 봉수는 조성시기와 간격문제, 제철은 입지 문제가 주요 화두다. 특히 제철은 전근대 제철시기가 망라하는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이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 이후 가야사 관련 예산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급하게 (지표조사, 발굴을) 추진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진안 마령고 이상훈 역사교사는 “역사를 지역 활성화 차원에서 접근한 게 문제”라며 “검증도 안된 상태로 섣부르게 (가야 유물이라는) 결론을 내놓다보니 많은 사람들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역사학자는 “가야사 육성이 국정과제가 되면서 정부가 무분별하게 예산을 투입한 것부터가 문제”라며 “급하게 추진하다보니 조사결과도 오류가 많고 나중에 이를 바로잡는 데도 막대한 예산이 투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료 자체에 문제가 있는 <일본서기> 를 엄정한 비판없이 활용한 탓도 있다”고 부연했다. 일본서기>
이정린 전북도의원은 “가야사 연구는 학계에서도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있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며“전북도가 하반기에 개최할 예정인 ‘전북가야 역사 재정립 학술대회’에서 기문가야 논란을 비롯한 여러 부분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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